“마오가 물라고 하면 물었다”…김종인, 추미애 ‘장칭’에 빗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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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0-11-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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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오쩌둥 네 번째 부인, 문혁 4인방 가운데 한 사람 "마오가 물라고 하면 물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최근 행동을 볼 것 같으면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장칭(江青)의 얼굴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요청한 것을 두고, 중국 문혁을 이끈 4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장칭에 빗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제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과정을 보니까 정말 선출된 권력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해 기본적인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저런 행위를 통해서 뭘 추구하려고 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장칭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네 번째 부인으로, 중국의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혁 당시 홍위병을 이끌었던 4인방(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여배우 출신으로 마오와 결혼한 장칭은 문혁이 절정기이던 당시 150만 홍위병을 천안문 광장에서 사열하는 등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문혁 당시 홍위병들은 중국의 각종 사회문화적 유산을 파괴하고, 정치‧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탄압했다. 공자의 묘를 파괴하고, 유교 경전을 태우는가 하면, 영원한 2인자로 불린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수양딸이 살해당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의 아들이 반신불수가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장칭은 1976년 마오가 사망한 뒤 실각, 1981년 사형 선고를 받고 199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장칭은 사형 선고를 받을 당시 “나는 마오의 개였다. 그가 물라 하면 물었다”고 울부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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