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차기 대통령은 '무티(엄마)'와 '페페(아빠)'처럼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력 : 2020-11-23 18:11

[임병식 위원]

최근 페이스북에 올라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이 화제가 됐다. 베를린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모습이다. 수행원 없이 혼자 쇼핑카트를 끄는 그를 누군가 찍어 올렸다. 아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느 시민과 다를 바 없는 소탈한 모습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주지하다시피 독일 경제는 메르켈 집권 이후 순풍이다. 연간 1550억 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EU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메르켈은 2005년 이후 15년째(4선) 재임 중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중요한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다. 가스, 수도, 전기, 전화요금은 물론 요리사 급여까지 스스로 부담한다. 의상도 같은 옷을 번갈아 입는다. 부자 나라, 독일을 이끄는 총리가 보여주는 검소한 행보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기억하세요. 10년 전에도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내 책무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 모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런 메르켈을 독일 국민들은 ‘무티(엄마)’로 부른다. 정치인에게 보내는 최고 찬사다. 국제사회도 환호한다. 우리도 이런 정치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요즘 여의도 국회는 북새통이다. 정기국회 중이라서 정장차림 국회의원과 보좌관, 공무원들로 국회 안팎은 활기차다. 그런데 의원회관 앞에서 내리는 의원들은 하나같이 권위적이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검은색 승용차만큼이나 엄숙하다. 이들에게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유럽 국회를 이야기하는 건 부질없다.

얼마 전 2030 초선의원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국회 등원에 승용차를 이용한다고 했다. 지역구 일정을 소화하려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역행사를 쫓아 다녀야 하는 우리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된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의정활동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 국회도 겸손하고 소탈한 의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권위적인 곳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위임 받은 권력을 착각한 나머지 국민 위에 서려는 행태를 흔히 목도한다.

피감기관에 대한 ‘갑질’은 고전에 속한다. 이번 국정감사 중에도 욕설과 고성 등 볼썽사나운 모습은 여전했다. 자신들을 지원하는 국회사무처 공무원과 보좌진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사무처 공무원을 하급자로 여기고, 보좌진은 ‘파리 목숨’ 취급한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보좌진이 1명이라도 나간 의원실은 130곳이다. 무소속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은 각각 6명, 5명이 그만뒀다. 반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절반 이상 그만둔 셈이다.

보좌진 급여를 돌려받아 사무실 운영비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군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정작 보좌진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면권을 무기로 삼은 전형적인 ‘갑질’이다. 보좌진을 동료라고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다. 독일 교수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여러분과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로서”라고 한다. 이런 탈권위주의가 우리 국회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에도 소개한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 그가 20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소박하고 파격적인 행보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무히카는 재임 기간(2010~2015) 중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패션이다. 취임 당시 재산은 현금 1800달러(약 200만원), 1987년산 폭스바겐 비틀 한 대와 허름한 농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재임 기간 중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또 대통령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과 고아들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대통령 관저까지 낡은 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로 살았다. 재임 기간 중 우루과이는 연 평균 5.7%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무히카를 국민들은 ‘페페(아빠)’라고 부른다. 그는 취임 당시(52%)보다 높은 지지(65%)를 받고 퇴임한 행복한 대통령이다.

무히카는 최근까지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고령(85)에다 코로나19로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려워 정계를 은퇴했다. 그는 우루과이 국민들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과 증오를 되풀이하는 우리에게 메르켈과 무히카는 좋은 거울이다. 무히카는 “수 십년간 내 정원에 증오는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탈권위적이며 검소하고 상대편까지 껴안는 정치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행복하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무티(엄마)’, ‘페페(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 정치는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굳이 들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mont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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