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81)] "아바디 아바디" 깨끗과 거룩을 산 류영모, 제자 김흥호의 증언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11-18 04:50
인생은 감격이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스승

[영화 '왕중의 왕(The King of Kings, 1927년작)'의 한 장면.]


그리스도교인은 한 사람뿐이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안티크리스트'에서 한 이 말은 충격적이다.

"그리스도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 말해 보겠다.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가 벌써 오해이며, 근본적으로는 오직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 그 순간부터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미 그 유일한 그리스도교인이 체험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나쁜 소식, 즉 화음(禍音)이었다. 신앙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스도교인의 표지를 찾는 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삶은 가능하며, 특정인들을 위해서는 심지어 필요하기까지 하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근원적인 그리스도교는 어느 시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도교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스도교인이라고, 2천년 동안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불리어온 것은 한갓 심리적인 자기 오해에 불과하다. 좀 더 상세히 관찰해보면 그 모든 신앙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능들만이 그리스도교인을 지배해왔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앙은 특정한 본능들의 지배를 가리는 교활한 눈가림이었다."


                   니체 <안티크리스트> 중에서.

진정한 기독교도는 예수뿐이었으며, 예수 이후 아무도 없었다는 니체의 단언은 그의 화법(話法)의 강렬함을 증거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신(神)과의 일치를 이루는 기적은 교육되거나 전승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해온 다석 류영모의 입장을 니체가 거의 완전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듯한 대목이다. 예수와 같은 기독교인이 되려면, 예수가 했던 것처럼 신과 스스로 직접 소통해야 한다. 그밖에는 모두 시늉이거나 착각이거나 집단 최면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나 석가의 제자들이 그 스승의 영적인 성취나 깨달음을 얼마나 제대로 얻었을까.

제자들의 역량 부족이나 태만이나 신념 부족 때문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지닌 가차없는 자율적 면모 때문이다. 그 제자들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과연 예수나 석가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완전한 팁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곤란을 느낀다면, 니체의 저 직설적 문장들에 일정하게 수긍하는 길이 된다.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최초의 신성(神性)으로 다가갔던 그 밀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교리들과 교의들을 형식화하면서 종교적 대중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니체의 말처럼 교활한 눈가림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령의 본질 때문일 수 있다. 거기에 인간의 권력과 위선이 개입되면서 상호 공생관계의 종교적 생태계를 이루며 본연의 신앙이 지녔던 단순하고 고결한 복음마저 덧칠하고 왜곡하는 역사를 거듭해왔던 것도 부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석 류영모]

류영모의 제자들, 그리고 단사(斷辭)

류영모에게도 가르침을 받은 여러 제자가 있었고, 그중에는 출중하고 충직하고 영민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류영모가 지녔던 기대나 믿음과는 상관없이, 제자들이 류영모의 영성(靈性)이 도달한 그 자리에까지 가는 일은 류영모의 뜻에 있지 않고 오로지 그 제자들의 뜻에 있었다. 제자들은 류영모의 삶이 보여준 파격적 형식을 지키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열심이었으나 오히려, 그 파사일진(破私一進)을 향한 집요하고 단호한, 스스로의 영적 전진에 있어서는 '이론적 이해'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류영모는 '자율신앙'을 역설했다. 신과 대면하고 합일하는 일에 있어서는 무엇 하나 도울 수도 충고할 수도 없음을 말한 것이 '단사(斷辭, 스승 제자가 서로의 말을 끊고 각자의 길을 감)정신'이라 할 수 있다. 제자는 있었으나, '류영모의 영적인 자식'은 아직도 온전히 얻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믿음과 실천의 길이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류영모의 길을 스승 이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가외자(可畏子)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사상이 후생의 복(福)을 아직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1964년 10월 3일 개천절. 류영모는 그를 찾아온 제자 박영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조직이란 자꾸 끌어붙이잔 것인데, 실은 풀어헤치는(分散) 것만큼 시원한 것은 없어요. 우리는 시원한 자리에 가자는 것입니다. 거래란 귀찮은 것이지요. 다 흩어져 제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단사를 해야 해요. 만나고 싶은 생각도 편지할 생각도 안 나야 합니다." 이렇게 그는 제자에게 자율신앙의 길을 권면(勸勉)한 셈이었다.

그러나 제자에 대한 기대를 접은 적은 없었다. 특히 함석헌과 김흥호에 대한 시선은 각별했다. 80이 되었을 때 함석헌은 퀘이커교도로 마음을 옮겨 갔고, 김흥호는 늦깎이로 신학공부를 결심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다. 깊이 아꼈던 제자 함석헌을 잃은 마음의 공동(空洞)이 있었던 차에, 김흥호의 선택 또한 그를 어이없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교회의 목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그 길은 류영모가 생각하는 신앙의 길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김흥호(1919~2012)는 누구인가. 그는 황해도 서흥 사람으로, 부친이 기독교 목사였다. 평양고보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해방 뒤인 1947년 정인보가 세운 국학대 교수로 지냈고, 1955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를 시작해 1984년까지 29년간 강의를 했다. 이후 1998년까지 감리교 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로 지냈다.

1965년부터 2009년까지 44년간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일요 연경반(硏經班) 강의를 했다. 기독교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 서양철학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류영모 버전'의 동서양 사상 강좌를 새롭게 펼친 것이다. 2008년 폐암 수술을 받고 미처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연을 다시 열었을 정도로 이 수업에 깊은 열정을 보였다.

선생님, 하나 둘 셋이 무엇입니까

1946년 서울역 철도 관사 현동완(YMCA 총무)의 집에서 열린 류영모 강좌에, 김흥호가 처음 들어와 앉았다. 와세다 법대 출신의 27세 김흥호가 56세의 류영모 강의를 듣는 풍경이다. 모임이 끝난 뒤 이 낯선 제자는 류영모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하나 둘 셋이 무엇입니까." 류영모는 진지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뭐라고 대답했을까. 도덕경 42장을 얘기한 것이라면 이것이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즉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는다. 셋은 만물을 낳는다.

천부경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대목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즉 하늘은 하나이면서 첫째이고 땅은 하나이면서 둘째이며 사람은 하나이면서 셋째이다.

어느 대목이거나, 낯선 얼굴의 젊은이에게서 범상치 않은 질문을 받은 류영모는, 아마도 반문(反問)으로 그의 생각을 먼저 들었을 것이다. 이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날 이후, 김흥호는 류영모 강좌를 자주 찾았다. 이듬해 국학대 교수가 된 이후에도 이 수업에 열심이었다. 류영모는 김흥호가 지어온 한시를 YMCA모임에서 소개하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류영모와 김흥호, 그리고 함석헌.(왼쪽부터)]



김흥호는 스승의 사상에 관한 다양한 책을 냈다. 그 중에 생명론을 다룬 부분을 인용한다.

숨쉬는 일과 팽이처럼 중심잡기

<어느 날 류영모는 '생명'이란 도장을 새겨 가지고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찍어주신 일이 있다. 크기는 옛날 엽전만 하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어 더욱 엽전을 연상하게 한다. 구멍은 떳떳할 상(常)자의 입 구(口)에 해당한다. 상 위에는 없을 무(無), 아래는 날 생(生), 상 왼편에는 아닐 비(非), 오른 편에는 목숨 명(命)이라고 새겼다. (세로로 읽으면) 무상생(無常生) (가로로 읽으면) 비상명(非常命)이다. 생필무상(生必無常, 사는 것은 결코 한결같음이 없다)이며 명시비상(命是非常, 죽음은 바로 한결같음이 아닌 그것)이다.

류영모는 언제나 삶이 덧없어도 목숨같이만이라고 하셨다. 목숨은 지성불식(至誠不息, 지극히 정성들여 쉬지 않고 숨쉬는 것)이다. 자면서도 숨은 쉬고 깨면서도 숨은 쉰다. 마찬가지로 말씀은 살아서도 말숨 쉬고 죽어서도 말숨 쉰다. 말숨은 유의식, 무의식, 유무를 초월하고 말숨은 생사를 초월한다. 대괴(대자연)는 계속 변하고 발전해야 언제나 살아있고 늘 건강하다. 그런데 사람은 계속 변하여 발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아에 집착하여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갑자기 죽어서 봉변을 당하면 괴상하고 허무하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멸망이지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우선 육체의 생명부터 헤아려 보자. 사람은 백년을 산다 해도 삼만육천일, 숨은 9억번 쉬고 끝이 난다.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죽음에의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생명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을 힘차게 쉴 수 있어야 한다. 한껏 들이쉬며 살기 시작하고 힘껏 내쉬며 죽어간다. 9억번 숨도 한번 숨이나 마찬가지다. 한번 잘 쉬면 9억번 쉰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끝에 숨을 들이쉬어 폐에 바람이 차면 그것으로 끝이고, 또다시 그 숨을 내쉴 수 없다. 이것이 숨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면 더 들이쉴 수 없으니 기가 막히고 내쉬면 더 내쉴 수 없으니 아찔하다.

기가 막히고 아찔한 것이 호흡이다. 세상에 나오면 기막힌 일생이요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찔한 일이다. 그러나 호흡은 들이쉬고 내쉬면서 몸 전체를 살리고 있으며 사람은 나고 죽어가면서 인류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호흡이나 사생은 들어갔다 나갔다 살았다 죽었다 마치 문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집 전체를 살려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짝은 언제나 꼭 맞고 돌쩌귀는 잘 돌아가야 한다.

잘 돌아가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꼭 맞는 것을 정(正)이라 한다. 그래야 집안 사람은 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꼭 맞고 잘 열리는 중정이 되어야 아무 문제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 아무 걸림 없이 잘 통해야 길이 될 수 있다. 한번은 밝고 한번은 어두운 것이 해와 달의 길이다. 생명 도장의 내용을 해석하면, 산다는 것은 한없이 위험하고 죽는다는 것은 한없이 고귀하다. 언제나 위험은 멀리할 줄 알고 존귀를 보존하고 살아가면 어디서 살든지 행복할 수 있다.

류영모는 중정을 팽이에 비유했다. 팽이는 바로 서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서서 돌아가지 않으면 쓰러지고 무너진다. 언제까지나 바로 서서 돌아가게 하려면(知常處中, 한결같음을 알아서 그 알맞음에 처신함) 채찍으로 쳐서 돌려야 한다. 하느님의 채찍이 도(道)라는 것이고 자기가 자기를 쳐서 바로잡는 것이 자중정(自中正)이다. 자기가 자기를 바로잡는 것이 수신이며 자치(自治)다. 자기 속에 자기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 자유다.>
 

[김흥호]


김흥호는 스승의 삶을 이렇게 증언했다.

아바디 아바디

< 그는 저녁 8시에 자서 밤 12시에 깼다. 4시간이면 수면은 충분했다. 그만큼 깊은 잠을 잤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잠 속에서 하느님 말씀도 듣고 인생의 근본 문제도 풀었다. 잠 속에서 지은 시를 읊기도 하였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때다. 선생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정좌하고 깊이 생각하였다.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푸는 것이다. 풀어지는 대로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는 YMCA에 들고 나가 그것을 몇 시간이고 풀이했다.
너무도 엉뚱한 소리라 듣는 사람이 몇 안 되었다. 어떤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혼자 20리 길을 걸어와서 한 시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또 20리를 걸어서 집으로 갔다. YMCA 간사 가운데는 선생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현동완이 간 뒤 류영모 선생은 YMCA에서 쫓겨났다. (그는) 이집 저집을 헤매고 다녔다. 나중에는 집에서 사람 오기를 기다렸다. 한 사람이라도 오면 몇 시간이고 말씀을 퍼부었다.
류 선생은 언제나 “아바디 아바디”하고 소리내서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소리만이 아니다. ‘아’는 감탄사요 ‘바’는 밝은 빛이요 ‘디’는 실천이다. 인생은 하나의 감격이다.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삶은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선생의 삶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뒤에는 하느님의 빛이 비치고 있다. 그 기쁨은 진리에서 솟아나오는 기쁨이요 그리스도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법열이요 참이었다. 진리의 충만이요 영광의 충만이다. 그래서 선생은 아바디라고 했다.
아바디는 단순히 진리의 충만뿐이 아니다. 그뒤에는 생명의 충만이 있고 힘의 충만이 있다. 그 힘으로 선생은 이 세상을 이기고 높은 하늘로 올라갈 수가 있다. 선생은 욕심과 정욕을 끊어버리고 오로지 깨끗과 거룩을 살았다. 그것이 선생의 실천이다. 선생은 죄악을 소멸하고 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며 살았다. 그것이 도다. 도는 억지로 하는 율법이 아니다. 성령의 부음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는 하느님의 힘이다. 그것은 하나의 유희다.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노는 것이다. (류영모, 기독교의 동양적 이해-다석 탄생 101주기, 서거 10주기 김흥호의 기념강연 ) 중에서 >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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