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K-바이오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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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욱 기자
입력 2020-11-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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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는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변화와 위기를 겪은 해였으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해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을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시점은 신종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해독돼 세계에 발표된 1월 7일이 아닐까 한다.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 환자의 출현 이후 병원균의 유전체 게놈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불과 2주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게놈 분석을 통해 신종 병원균의 정체가 밝혀졌고,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며 인간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 감염되고 증상을 일으키는지도 알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역 정책, 전파 경로 추적, 진단과 백신 개발 그리고 치료제까지도 모두 게놈 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이민섭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공동대표가 NGS 플랫폼 중 가장 빠르고 대규모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한 노바식을 이용한 전장유전체, 엑솜, 액체생검 등 연구개발과 임상서비스 고도화를 설명하고 있다.[사진=EDGC 제공]



게놈 분석에 의한 첫째 대처는 감염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분자 진단 검사법의 개발이었다. 이 검사는 감염 환자의 진단뿐 아니라 확산을 막는 방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한국의 진단 검사법 개발 성공 원인은 다름 아닌 게놈 정보 분석을 통한 정확한 타깃 유전자 선정과 함께 신속한 개발과 승인 그리고 검사 키트 양산이었다. 게놈 서열이 발표된 지 불과 24일 만인 지난 2월 초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진단 키트의 긴급 승인을 해주면서 본격적인 코비드 감염 진단 및 환자 추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의 진단 회사들이 준비해온 우수한 개발 경험, 뛰어난 생산능력과 함께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만들어낸 훌륭한 성과였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한국보다 한 달 이상 지나서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생산과 품질 및 공정 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한국 진단검사의 우수성과 함께 K-바이오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한편 코로나 치료제로 잘 알려진 '렘데시비르'는 게놈 분석 110일 만에 5월 초 미국 FDA에서 공식적인 코로나 환자 치료제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은 그동안 항바이러스제나 항암제로 잘 알려진 염기 유사체(Nucleoside Analogue) 중의 하나를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방법을 통해 공식적인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 받게 된 것이다. 약물 재창출은 전통적인 신약 개발과는 달리 기존 다른 적용증에 알려져 있거나 승인이 난 약물을 일부 선별해 새로운 증상에 대해 그 효력을 입증하는 방식이다.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라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약물 재창출 후보 물질 선별과정에서 게놈 분석의 역할은 절대적이며 이런 분석을 통해 약물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해당 정보에 따라 차별화된 임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팬데믹에 가장 필요한 대응책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 개발이다. 한국은 그동안 백신의 생산과 제조 분야에서 나름의 역량을 키워오고 있었지만, 초기 개발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에 반해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빠른 개발을 통해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의 승인을 끌어냈다. 이번 백신 개발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통적인 백신 개발 방법으로 바이러스를 변형하거나 불활성화시키는 것보다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를 활용해 조기 개발과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백신은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용하기보다는 게놈 정보를 통해 타깃을 선정하고 디자인하며 항원을 인공 합성하는 3세대의 백신 방식이다. 물론 개발과정에서 충분한 임상 시험을 거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바이러스 게놈 분석 이후 불과 170일 만인 지난 6월 말 최초 승인을 받게 되었고 현재 6개의 백신이 조건부 승인되었으며 11개의 백신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전례 없이 혁신적인 신속 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맞이한 코로나19 팬데믹은 100년 전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됐다. 그 당시 스페인 독감은 환자 숫자로 본다면 지금의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의 대처에 있어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다름 아닌 유전체 정보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을 야기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게놈을 알지도 못했고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응한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 반면 지금 코로나19의 모든 대처는 게놈 분석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이른 시간에 인류 최대의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이 이번 K-방역과 K-바이오의 성공 스토리다. 이러한 한국의 성공 스토리는 두 가지의 핵심 역량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게놈 정보 활용과 강한 추진력에 기반한 빠른 진행 속도다.

외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빨리빨리(Pali Pali)'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급하게 서두르는 부정적인 면과 함께, 이 시대에 꼭 필요로 하는 빠른 추진력과 결단력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한 일부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한국인의 핵심 역량 DNA 코드가 된 것이다.

한국의 게놈 연구와 이에 기반한 정보 활용은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수한 바이오 분야 인재 양성과 함께 다양한 정보 지식 사업이 함께 이루어낸 IT와 BT의 융합 기술의 결정체다. 게놈 정보 활용 역량과 신속하고 과감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K-바이오는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전 세계에 입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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