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빅테크 新제국주의 심판의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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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전 YTN사장)
입력 2020-10-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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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교수] 


[최남수의 열린 경제] 네이버와 구글이 같은 시기에 논란이 되고 있다. 네이버는 쇼핑과 동영상의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변경해 자사 서비스를 우선 노출하고 경쟁사를 밑으로 내리는 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267억원 규모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검색 결과가 객관적이라고 믿어온 소비자를 기만하고 시장의 경쟁을 왜곡했다고 공정위는 판정했다. 구글은 국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구글플레이 안에서의 결제방식을 내년 1월부터 바꾸기로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인앱(in-app) 결제. 그동안 게임 앱에만 30%의 수수료를 물려왔으나 앞으로는 웹툰과 음원 등 모든 앱의 개발사에 이를 부담시키기로 했다. 구글은 이미 해외에서 시행 중인 제도를 한국에도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개발사들은 구글의 횡포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등 정부 부처는 실태조사에 들어갔고, 국회에서는 이를 막는 법안이 제출되는 등 강경 분위기다.

시장지배력이 큰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국내에서도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는 물론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이 생활 인프라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정보 검색, 뉴스 소비, 쇼핑, 지인과의 소통, 디지털 콘텐츠 구매 등 일상의 일이 이들 기업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플랫폼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빠른 디지털화로 경제의 효율성이 제고됐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도 증대됐다. 하지만 이들 IT 기업이 급속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불공정 거래 등 부작용이 경고음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편이다.

빅테크에 대한 역풍은 미국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그 주 무대는 미국 하원. 1년 6개월 동안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를 조사해온 하원 반독점 소위원회는 지난 6일 449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대응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공화당 측이 별도의 발표를 했지만, 기본적인 문제 인식에는 민주·공화 양당이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빅4 테크 기업이 검색과 스마트폰, 쇼핑, 소셜 네트워킹 등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독점력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소위원회는 그동안 일각에서 거론돼온 빅테크 기업의 분할 같은 강경 입장은 배제하는 대신 현행 반독점법의 대대적인 개정을 미 행정부에 촉구했다. 앞으로 중대한 변수는 11월 3일 치러지는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 결과.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원을 장악하면 GAFA의 독과점에 강력히 제동을 거는 법안이 추진될 공산이 크다. 특히 바이든은 빅테크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집권 시 GAFA에 대한 강공이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법무부는 독과점법 위반 혐의로 구글을 전격 기소했다. 법무부는 소장에서 구글이 스마트폰에 자사 앱이 디폴트로 탑재되도록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에 수십억 달러를 제공해 경쟁사의 진입을 막았다고 밝혔다. 향후 공정거래위원회(FTC)의 조사도 더욱 강도 높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여론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9년 하반기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명 중 2명이 이들 기업의 분할을 지지할 정도로 ‘반 빅테크’ 정서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거대 테크 기업의 과도한 힘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유럽연합(EU)에서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EU가 마련한 보고서가 외부에 유출됐는데 여기에는 이들 플랫폼 기업이 경쟁사와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강제하고 신규 진입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렇듯 역풍을 불러온 빅테크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져 왔을까. 미 하원 소위원회의 조사 내용을 살펴보자. 구글의 경우 자사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경쟁력이 없을 때조차도 검색의 상위 순위에 올려놓았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인수가 문제가 됐다. 페이스북은 이들 앱을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시키기 위해 인수해 왔다고 공표해 왔다. 4만1000쪽에 이르는 이메일과 메모, 그리고 비밀 기록 등에서 드러난 사실은 딴판이다. 경쟁사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사들인 것이었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상품을 파는 판매자들의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했고, 애플은 혁신적인 경쟁 서비스의 특징을 베끼는 행위를 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미 하원의 이번 보고서는 그동안 빅테크 기업에 대해 다양하게 제기돼온 비판을 주로 법 위반이라는 측면에서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GAFA는 정보 고속도로와 온라인 쇼핑 망 구축 등을 통해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생활 편익 제고에 크게 기여해 왔다. 하지만 경쟁과 혁신을 질식시키고 일자리를 파괴하며 세금을 제내로 내지 않는 등 심각한 일탈 행위를 해왔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세계 경제에 혁신의 선물을 안겼던 기업들이 이제는 ‘괴물’이 되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쟁 억제. 반독점 소위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와 같은 경우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빅테크가 큰 문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테크 대기업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자사를 위협할 수 있는 창업 기업들을 사들여 싹을 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거대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내기가 어렵고, 이로 인해 혁신이 고사돼 IT 발달에 따른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각광을 받던 신생 디지털 미디어가 빅테크 탓에 고전하는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버즈피드와 허프포스트 등이 경영난으로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아이러니한 점은 디지털 광고 시장이 호조를 보이는데도 그 혜택이 이들 미디어로 가지 않았다는 것.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3개사가 광고 물량의 62%를 과점한 탓에 전통 매체는 물론 디지털 미디어도 몸살을 앓고 있다.

고용 창출이 최대의 경제 현안인 현 상황에서 빅테크 기업은 얼마나 일자리에 기여하고 있을까?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거나 그다지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존이 2018년 1월에 문을 연 무인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고객이 가지고 나가는 상품의 QR 코드를 읽어 구매 내역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결제는 아마존 앱에서 자동으로 이뤄진다. 사람의 손길이 끼어들 틈이 없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저서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아마존이 로봇 활용 등으로 2017년 한 해에만 소매유통업 일자리 7만6000개를 없앴다고 분석했다. 다른 기업들은 어떨까. 구글은 직원이 11만9000명, 페이스북은 5만2000명에 불과하다. 전통 유통기업인 월마트가 220만명, 홈디포가 4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빅테크는 일자리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더구나 테크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양산해 고용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글의 그림자 노동력’이란 제목의 뉴욕타임스 심층보도가 그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19년 3월 현재 구글이 전 세계적으로 채용한 임시직과 계약직 근로자는 모두 12만1000명으로 정규직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 신문은 대부분 테크 기업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라고 전하고 있다.

현재 테크 대기업들이 새롭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금융이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가 금융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GAFA의 움직임도 공격적이다.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함께 신용카드를 론칭했다. 구글은 은행들과 협조 체제를 구축해 요구불과 저축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한 발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상 화페인 리브라를 만들겠다는 당찬 계획을 내놓았지만, 화폐 주권 훼손 등을 우려하는 미 정부의 제동에 발목이 묶여 있다. 테크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금융시장이라는 ‘방죽’에서 이들 기업이 ‘메기’ 역할을 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폭을 다양화하고 금융서비스를 효율화하는 이점이 있다. 우려되는 점은 본업에서 드러난 독과점의 폐해가 금융업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 점을 경고하고 있다. 테크 대기업들이 시장지배력과 진입장벽을 이용해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BIS는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 기업이 금융을 포함한 데이터까지 독과점하게 되면, 경쟁을 제한하고 향후 고객에게 비싼 상품을 팔 수도 있다고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오래전 국내 테크 대기업 CEO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청중이 질문했다. “상당히 많은 회사를 인수한다. 그런데 두고 보면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는 기업도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이 CEO는 “기업 인수에는 두 기준을 적용한다. 하나는 우리 회사가 키울 기업, 다른 하나는 경쟁사가 가져가면 안 될 기업”이라고 내심을 얘기했다. 바로 이 두 번째 동기에 따른 기업 인수가 경쟁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행위이다.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 같은 경쟁 훼손 사례가 국내에서도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플랫폼이라는 ‘장마당’을 열어 많은 기업을 모아놓고도 자사 상품을 더 돋보이게 표출하는 반칙을 하거나 참여 기업의 데이터를 몰래 이용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앞으로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거대 테크 기업이 산업 생태계의 건강성을 깨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촘촘한 감독과 위법 행위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 기업 스스로 시장지배력을 절제하고 소비자, 스타트업 등 이해관계자와 공생해 나가는 ‘기업시민 의식’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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