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낙태죄' 유지하며 조건부 허용…여성계·여당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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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기자
입력 2020-10-0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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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임신 24주까지는 조건부로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조처다. 

그러나 여성계는 낙태죄 유지는 헌재 결정과 배치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안전처는 7일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형법 개정안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낙태 허용 요건을 새로 만들었다.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이유와 관계없이 임신부가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

15주∼24주 이내에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선택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은 임부나 배우자에게 유전병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성범죄나 근친관계 임신, 임부 건강이 위험하면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한다.

개정안은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낙태할 경우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치게 했다. 여성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조항으로 지적됐던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요건은 삭제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 방법에 기존 수술 외에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을 추가로 넣었다. 보건소와 비영리법인 등에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을 설치해 임신 유지 여부에 관한 심리 상담도 제공한다.

심신장애가 있으면 임신부 본인이 아닌 법정대리인 동의로도 낙태를 할 수 있다. 보호자 동의가 어려운 미성년자는 상담 사실확인서 등으로도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낙태 거부도 인정했다.

약사법 개정을 통해 형법과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의약품에는 낙태 암시 문구나 도안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자연유산 유도 의약품 신청도 받는다.

정부는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등을 거쳐 이번 개정안을 신속하게 국회에 제출해 연내에 법 개정이 완료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해 4월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형법상 낙태죄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정부에 올해 12월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을 주문했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년 6개월 넘게 숙고한 끝에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성계와 진보단체는 잘못된 법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로 꾸려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번 입법예고안은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자기결정권·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임신주수에 따른 낙태 허용 시기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면서 "임신중지를 국가에 허락받지 못하면 죄인으로 보는 법안은 퇴행적인 개정안"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헌재 결정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권고한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전면 삭제와도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역시 "헌재의 낙태 허용 기간인 22주를 14주로 기간을 단축한 것은 헌재 결정 취지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잘못된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간사인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안은 낙태죄를 그대로 존치시킬뿐 아니라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요건을 형법에 확대 편입했다"며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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