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강경화 장관의 베트남 방문과 '다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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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
입력 2020-09-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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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9일 베트남 총리·외교장관 예방...'신속통로' 간소화 집중협의

  • 강 장관,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서 신남방정책 업그레이드할 것”

  • 특파원 간담회서 문 대통령 11월 베트남 방문 가능성도 언급

  • 다자주의 무용론에...“핵심 중견국들의 새로운 역량 모을 때”

강경화 장관이 베트남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사진=베트남 특파원 공동취재단]


‘1.2.3.4.5...’

수초 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강경화 장관이 탄 차량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강 장관의 한국대표단 일행이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손사래를 보냈지만, 총리는 움직이지 않고 공관 정문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윽고 대표단 차량이 공관 정문에서 떠나기까지 총리는 계속해서 손 인사를 이어 나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각국의 방문이 끊어진 지 수개월째. 올해 하반기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한 외교사절단을 맞이하는 베트남 행정부 수장의 모습이었다.

강경화 장관이 지난 18일 양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장관은 이번 일정에서 베트남 총리와의 면담, 한국·베트남 외교장관 회의, 교민간담회, 특파원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강 장관의 이번 방문은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베트남 정부가 공무원, 기업인,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소위 패스트트랙(입국철자 간소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외국 대표단으로선 사실상 처음으로 시설격리 면제가 적용된 탓이다. 외교가 후문으로는 일본 외무성도 캄보디아 등 메콩지역 국가를 방문한 터에 베트남까지 방문하려고 했으나 베트남 정부가 난색을 표해 한국이 가장 먼저 방문단이 됐다는 애기도 나왔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강경화 장관과 팜빈밍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의 회담은 18일, 3시간여 걸쳐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 직후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양국의 인적교류 활성화 방안이 거의 합의 수준에 도달했다며 세부적인 부분에서의 논의만이 남았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합의안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양국의 외교부 차원에서는 이를 동의하며 베트남 보건부, 항공국 등 관련 부서에 대한 설득작업이 남았다는 설명이다.

향후 베트남 입국은 단기입국과 장기입국으로 구분될 전망이다. 단기입국에 대해서는 신속입국 절차인 패스트트랙을 적용하고 장기입국은 현행 14일 의무시설격리에서 점차 이 기간을 대폭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전례가 없던 사례인 만큼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의 제안을 베트남 정부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협의해 새로운 입국 모델을 만들어가겠다는 복안이다.

강 장관은 외교장관 회담 직후 특파원 간담회를 통해 이번 방문을 통해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다며 아세안 대화 이후 신남방정책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공식 방문을 통해 고위급간 교류의 물꼬가 트인 만큼 “이번 방문이 한국·베트남 관계, 나아가 신남방정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과 아세안+3의 정상회의의 정상적인 개최 가능성도 거론됐다. 강경화 장관은 간담회 자리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언급하며 베트남 정부가 장관급 인사는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지만 국빈방문만큼은 직접 방문을 통해 대면 회의를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관은 이번 아세안 대화가 한국과 베트남의 양자회담이 아닌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국이 동참하는 다자회의인 만큼 각국의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뒤따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여파로 비대면 정상회의가 열린 것이라는 당초 관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베트남을 방문해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추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강 장관의 지적처럼 두 달 후인 아세안+3 정상회의가 정상적으로 개최되기에는 난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가 한국과 베트남의 양자 회담이 아닌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국이 동참하는 다자회의인 만큼 각국의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베트남 정부가 정상회의 개최 의지를 강력히 밝힌 만큼 오는 11월 정상회의가 불발되더라도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어찌됐든 장관의 방문 이후 차관급 논의가 이어지고 실무진들의 협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고위급 간 교류는 빠른 시일내로 예전 수준을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영빈관에서 한베 외교장담회의가 열리고 있다.[사진=베트남 특파원 공동취재단]


지난 6개월.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두고 걱정과 우려 섞인 말들이 참 많았다. 거침없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양국관계가 코로나 이후 다낭 빵쪼가리 보도, 아시아나 항공기 회항 등으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외교부도 당시 베트남대사를 불러 조치하고 강력한 항의서한을 베트남 정부에게 전달하는 등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 장관은 베트남은 여전히 신남방정책의 핵심국가라며 베트남과 양자 관계를 축으로 아세안과 다자주의적 모델을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자주의 무용론에 대해서는 다자협의체 핵심(코어) 중견국들이 힘을 모은다면 이를 잘 타파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작금의 국제정세는 미·중 갈등 속에 양자주의가 강화되고 다자주의 쇠퇴 현상이 뚜렷하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적인 시민의식을 보수화시켜 자국의 국가주의를 더욱더 공고히 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제관계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의 지적처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계적인 대립 현상을 두고 21세기는 단연코 힘의 논리로만 설명되는 현실주의 시각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20세기는 전후 국제연합(UN)이 창설되고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지는 등 다자적인 협의를 중시해온 전통이 있었다. 이를 통해 자유무역이 확산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등 많은 성과도 있었다. 강 장관 또한 UN에 오랜 기간 몸담으면서 다자협의체 중요성을 목도한 산 증인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각국의 대립에서 국제연합(UN)과 G20 같은 협의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현실이다. 어찌됐든 중견국인 한국의 외교가 다자주의·상호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베트남 방문 전 독일을 방문했다. 다자주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은 유럽연합(EU) 예산의 최대공여국이고 베트남은 아세안협의체 핵심 회원국이자 의장국이다. 다자주의 협의체에 핵심이 될 수 있는 두 국가인 셈이다. 특히 아세안은 다자주의 블록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협의체로 꼽힌다. 강대국이 없는 개도국들의 모임에도 불구하고 남미공동체(USAN )처럼 분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정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국제정세는 새로운 변화와 또 다른 관계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신남방정책의 모델은 기존의 인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정책이 아닌 10국(國) 10색(色)이라는 다채로운 아세안을 이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좀 더 고도화된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국이 베트남과 양자관계를 토대로 어떠한 아세안과 새로운 다자주의 모델을 형성해나갈지 아직은 미지수다. 주목할건 베트남의 국력이 신장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이제 경제적 협력관계를 넘어 정치·안보적으로도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과의 수교 30주년에 맞춰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코로나 이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양국 간의 심화된 소프트파워(사회문화)의 교류는 하드파워(정치안보)를 지탱하는 든든한 자양분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신남방정책이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와 패시픽(해양) 국가로 나눠 아세안과 관계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싱가포르를 제외한 실질적 주요국인 아세안 5개국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방안 등 여러 방향이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명쾌한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준다. 완전하고 평등한 다자주의는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협의체 내 각국의 관계가 모두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자주의 안에서도 결국 코어가 되는 양자관계의 역설이다.

이제 민간이 바탕이 되지 않은 국가 관계의 심화발전은 사실상 답보하기 어렵다. 신남방정책이 새롭게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우리기업이 많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아세안 국가에서 우리의 경제와 외교력이 어느정도 발휘될지는 의문이 든다. 일본의 아세안 진출 반세기 역사에 우리는 채 20년이 안됐다.

무엇보다 국내 비판여론에만 매몰된 채 청와대와 외교부가 기존의 신남방정책에 대한 너무 큰 조바심을 내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급격한 정책의 변화를 위해 기존의 쌓아왔던 토대를 그대로 두고 다른 토대를 쌓는 무리수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진화는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가를 하나의 생물체(리바이어던)에 비유하자면 각국은 서로 간의 변화를 통해 시시각각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강경화 장관이 베트남 방문 기간 중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사진=베트남 특파원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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