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文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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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0-08-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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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네 번째 광복절 경축사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당면한 최대 도전으로 규정하면서 전쟁을 막고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2017년 경축사)는 단호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고,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겠다(2018년 경축사)는 자신감도 없었다.

나아가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로운 한반도’라는 목표를 위해 자유무역 질서와 동아시아의 협력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경제 강국,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통한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겠다는 지난해 경축사 같은 포부 제시도 없었다. 세계적인 코로나 위기 속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OECD 37개국 가운데 성장률 1위를 기록하고, GDP 규모가 세계 10위권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는 어떤 기쁨도 자부심도 느낄 수 없었다.

경축사의 백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인도주의적 협력을 비롯한 남북 협력이야말로 남과 북이 핵이나 군사력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안보정책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부분이다. 청와대가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9·19 남북 군사합의에도 불구하고 2019년 2월 말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은 이에 반하는 행동을 계속해왔다.

북한은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는 하지 않았지만, 2019년 10월 북극성-3형이라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 것 이외에도 전술유도무기와 초대형 방사포 등 다양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10차례 이상 시험 발사했다. 또한, 북한은 2019년 12월, 2020년 5월과 7월에 개최된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 ‘자위적 국방력’과 ‘국가의 핵전쟁억제력’ 강화 방침을 잇따라 천명했다.

반면, 북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전쟁 제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북한의 50배가 넘는 우리의 GDP와 400배가 넘는 무역액을 언급하면서 마치 대북 승리 선언이라도 하듯 의기양양했다.

8월 10일 국방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2021년부터 5년간 30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야심찬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미사일 전력의 양적·질적 고도화와 함께 미사일 탐지 능력 강화와 요격미사일의 증강, 북한 장사정포 위협 방호용의 한국형 아이언돔 개발 착수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해 3만t급의 경함모를 건조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함재기의 운용 즉, 미국제 F35B 전투기 구매 방침을 밝혔다. 이것들이 북한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합한 것인지 의문이다.

북한이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장기적인 정면돌파전을 제시한 이후 올해 들어와 공표한 정치국 회의, 정치국 확대회의,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는 모두 일곱 차례다. 8월 5일에는 제7기 제4차 정무국 회의 개최 사실이 처음으로 공표되었다. 북·미 대화의 중단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미·중 간의 대립 심화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동요라는 정세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를 바탕으로 큰 틀에서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8월 13일 열린 당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 방역전과 수해라는 난관에 직면해 있지만, 어떠한 외부지원도 거부하고 국경 봉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 측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북 협력에 집착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과의 협력에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침체된 남북관계의 장기화로 인한 초조감과 피로감이 악수를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일 간 최대 쟁점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3·1절 기념사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문재인·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에는 메울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던 시간 도쿄에서는 일본정부 주최의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열렸는데,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작년까지 아베 총리의 추도사에 포함되어 있던 ‘과거의 역사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역사와 겸허하게 마주하며’,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라는 표현이 자취를 감추는 대신 ‘적극적인 평화주의’ 아래 국제사회의 과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결의를 강조했다.

애초부터 한·일 양국이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일본과 함께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사법부는 모두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 대법원과 달리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이유로 법적 구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분쟁은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원회, 제3국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도록 동 협정 제3조는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으며, 한국 정부가 불응하자 5월과 7월 각각 중재위원회와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위해 협의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 한·중·일 정상회담의 주최국은 한국이다. 코로나로 대면회의 가능성조차 불투명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조율 없이 아베 총리의 한국 방문은 불가능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 협의를 위해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21일 한국을 방문한다. 미·중, 미·일 대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한국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수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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