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파르헤지아] 백선엽과 박원순을 지키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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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7-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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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주검이 일깨운 '모순의 늪'…그 싸움 속엔 대한민국 미래가 없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명조(共命鳥)를 기억하는가

지난해 말, 2020년을 내다보는 우리 마음속에 공명조(共命鳥)가 날아와 앉았던 것 기억하는가. 옛 경전에 등장하는 이 새는 머리가 두 개다. 한 머리가 다른 머리를 질투하여 독과(毒果)를 먹어 공멸을 택한다. 지금 대한민국 광장이 양두(兩頭)를 쳐들고 무엇을 슬퍼하고 있는지 보라.

장맛비가 추적거리는 월요일, 서울광장에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의 조문객들이 늘어섰고, 광화문광장에는 고 백선엽 장군의 시민분향소에 인파가 줄을 지었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문(弔問)이, 두 사람이 걸어간 삶의 가치에 대한 경배여야 하지만 지금 풍경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누구의 삶이 옳은가, 그래서 지금 그 삶의 입장을 지지하는 지지율은 어느 쪽이 높은가. 그걸 드러내는, 이 나라 분열적 정치역학 속에서의 세(勢) 과시에 가깝다. 

기이한 일이었다. 지난 9일과 10일 두 사람의 죽음이 하루 차이로 이어진 것도 그렇고,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이 이 땅의 치명적인 모순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 점도 강렬하다.

시민정치의 대부를 어이없이 잃다

박원순(1955~2020)이란 이름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상징이다. 인권변호사와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전시대의 민주화 운동인 거친 집단투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시민들의 권익과 권력을 확보하는 깨알 같은 투쟁의 장을 만들었다. 참여연대, 부적격 정치인 낙선운동, 소액주주 운동, 결식 제로 운동, 아름다운 가게 같은 것이 그의 ‘운동’의 이력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 입문을 한 뒤 서울시장 3선을 달렸고 차기 대선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는 민주당 정부의 중대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권력 주류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 독자행보를 걸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이 나라의 ‘시민운동’과 ‘시민정치’를 실천한, 민주화 진영의 대부(代父)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이만한 사람이 다시 어디에 있던가. 이 땅, 진보의 건강성을 증거하는 언덕 같은 존재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은 65년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길이 마지막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죽음 전날 있었던 고소 사건이 그의 치명적 선택을 낳은 100%의 이유가 아닐 수 있지만, 그가 평생 실천해온 삶의 가치들의 심각한 퇴색을 부를 수 있는 사안임은 틀림없다. 거기에다 죽음의 방식 또한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부적절한’ 일이었다. 이 극단적 모순 앞에서, 그를 추앙하거나 지지해온 사람들이나 정파(政派)는 순간적으로 심각한 자기분열을 느꼈을 것이다. 우선, 문제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이 모순의 낙차(落差)를 이겨내려 했다.

이후, 그 낙차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말들이 터져나온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강박이 부른 실언들이다. 진보진영에서 이런 문제와 관련해 그간 강조해왔던 ‘피해자 입장’의 신념을 유지하는 일도 어려웠다.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아직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지켜보자는 방식으로 ‘모순의 충격’을 유예하고자 했다. 이제야 그들은 또 다른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진보의 ‘순결주의’에 또 다른 치명상을 안기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이 진영은 저항이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반듯한 장례’를 통해 상처를 줄이고자 애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고집한 것이 서울 시장(市葬) 5일장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54만명을 넘은 상태다.
 

고 백선엽 장군.



한국전쟁 영웅의 씁쓸한 퇴장

백선엽(1920~2020)이란 이름은 말할 나위 없이 ‘한국전쟁의 영웅’의 표상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구한 최고의 명장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고 전공(戰功)은 1950년 8월의 다부동 전투다. 파죽지세로 낙동강 유역까지 내려온 북한군은 대구를 점령하고 부산까지 내려가기 위해 총공세를 편다. 백선엽 사단장은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고 말하며, 죽기살기로 진격했다. 아군 2300명이 죽은 참혹한 전투였다. 미군들은 그를 살아있는 전설(Living Legend)이라 부르며 존경한다. 2013년 미8군 명예사령관에 임명됐다.

그의 문제는 해방 이전의 삶 때문이다. 그는 1941년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갔고, 1943년 간도특설대에 발령을 받았다. 이때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했는데, 이 부대에 김일성을 비롯한 만주빨치산파 독립운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백선엽은 언론 인터뷰에서 “간도의 항일독립군과 김일성부대는 이미 1940년에 소련 연해주로 망명해 소련군에 배속되었다”고 주장한다. 2005~2009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에서는 간도특설대 활동을 토대로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식민지시대 20대의 ‘일본군인’으로 무공(武功)을 펼쳤던 이력은 100년의 삶을 마친 뒤 죽음에까지 따라왔다.

그의 죽음에 갈등이 일어난 건, 비록 식민지시대였지만 국가의식이 유독 부족했던 젊은 날의 군인 행각을 납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 때문이다. 백선엽에 대해 일각에서 부정적 시선이 키워진 것은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도 있다. 그는 여순사건 이후 남로당 계열의 군인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사형 구형까지 받은 박정희를 무죄방면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집권 이후 백선엽의 군부 영향력을 의식해 유럽과 캐나다 대사로 발령을 내서 멀찌감치 띄워 놓는다. 1969년에야 그를 불러 교통부장관에 임명한다. 그러나 박 정권이 끝나던 1980년까지 그는 독재자가 준 노른자위 직책을 누린다. 이런 기억들이 겹치면서, 이 정부에게는 그를 ‘영웅’으로 추대하는 일이 개운치 않아졌다. 국가보훈처는 서훈 대상을 저울질할 때 전공후과(前功後過)의 경우 엄격하게 취급하지만, 전과후공(前過後功, 허물의 전력이 있지만 나중에 공을 세운 경우)은 가능하면 후하게 쳐준다. 변절(變節)보다 개전(改悛·뉘우침)이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의 늪에 빠진, 두 가지 비극

그의 죽음이 당면한 현실은, 그러나 일각의 당연한 기대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전란의 영웅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정부 들어 그의 ‘친일’의 문제를 비중 있게 보려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얼마 전 6·25기념일에 즈음해 친일부역자의 국립묘지 파묘(破墓)법이 추진됐고,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불가론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뜨거워졌다. 그의 주검이 어디에 묻혀야 하는지에 대한 입씨름은 뜨겁다. 정부는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결정했지만, 야당에서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주장하고, 시민단체에서는 대전현충원도 불가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두 주검은 2020년 이 사회를 찢어놓는 극렬한 모순의 늪에 빠져 소용돌이치고 있다. 한 사람은 진보의 상징이고, 한 사람은 보수의 자부심이다. 둘은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은 민주화세력의 순혈 전통에서 막판에 이탈했고 그 와중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평생 부르짖어온 여성권익 향상에 역주행한 모순을 드러냈으며, 그 피해자에게 공소권 없음으로 영원히 ‘피해’를 홀로 지고 가게 했다. 한 사람은 이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었지만, 한때 민족의 가해자로서 일본의 편에 섰던 전력을 지녔다.

두 장례식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물론 억지주장이 아니다. 저마다 일리가 있으며, 양보할 수 없을 듯한 ‘가치 기준’이 있다. 저마다 옳음을 추구하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도 있다. 며칠 사이 펼쳐진 장면들을 보면 조선시대 당쟁의 재림(再臨) 같다.

그 당쟁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관료들의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이조정랑(행안부 인사과장) 자리를 놓고 자기네 사람들을 쓰겠다고 경쟁하면서였다. 1574년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추천되었는데, 왕가의 외척인 실세 심의겸이 반대를 한다. 김효원이 물러났을 때, 심의겸이 동생 심충겸을 추천했지만 김효원은 자기 파인 이발을 앉힌다.

조선시대 당쟁의 재림

김효원의 집이 한양 동쪽에 있어 그 무리를 동인이라 불렀고,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어 그 패거리를 서인이라 불렀다. 동인은 남인·북인으로 갈라지고 북인은 대북·소북으로, 서인은 노론·소론으로 갈라진다. 처음엔 비교적 사소했던 당파가 살육을 불사하는 패싸움이 된다. 저마다 처음엔 옳음을 주장하고 필연과 당위를 주장했지만, 나중엔 우리 편 남의 편만 있는 광기로 발전한다. 이런 싸움에 위정자와 지식인이 몰입하고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이순신 장군마저 당쟁으로 곤욕을 치를 정도였다.

이번 박원순-백선엽 논쟁에서 확인된 것은 여야로 나뉜 정당들이 일관된 가치 감각이나 정의 기준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편은 보호하고 연계하며 남의 편은 흔들고 제거하는 방식의 ‘정글의 논리’에 모두가 집착하여 국가의 방향이나 이 사회 전체의 참된 진화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놓쳐 버렸다. 고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 고인과 남의 편 고인에 대해 서로 진지를 구축한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을 펼치는 것이다. 이게 조선시대 당쟁과 무엇이 다른가.

이 논쟁에서 이기는 법은 오로지 적을 섬멸하는 방식밖에 없다. 그런데, 적은 섬멸되지 않고 싸움판만 커지고 격해진다. 이 와중에 여야 각 당이 표방하던 가치와 특색들은 모두 흐려지고 비슷해져서 하향평준화로 진흙탕을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서로가 자체 모순에 봉착하고 모순된 논리의 억지봉합에 온 힘을 들이다 보니, 나라를 침공하는 위기까지도 읽지 못했던 조선의 당쟁 패거리들과 한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민생은 엉망이고 전염병은 꺾이지 않는데 경제 그래프는 고개를 들어본 지 오래됐다.

서로를 죽이려다 우리 모두를 통째 죽이고 있는 '공명조(共命鳥)'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하향평준화일망정 정책의 철학이나 지향점이 그리 다르지 않아졌다는 점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갈등은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난 이후 나라의 기본 경제를 일으킨 산업화세력과 그 경제 붐업 속에서 희생되었던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민주화세력이 주도권을 바꿔가는 과정에서 배태된 것이다. 전시대의 ‘투쟁’이 고질화되어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위태롭다고 여기는 무의식이 내장된 셈이다. 그러나 시대도 바뀌었고, 국력과 국제적 위상도 바뀌었다. 아직 낡은 이념에 집착해 과거를 애정(愛情)한 나머지 현실적 동행자를 증오하고 살육의 기억들을 거기에 얹어 적의(敵意)를 돋우는 ‘습관적 진영논리’가 우리의 ‘공명조’다. 이젠 함께 날개를 저어 날아갈 공생조(共生鳥)가 되어야 한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 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운데)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백선엽 모두 포용할 순 없나

돌이켜 생각해보자. 박원순 시장의 ‘시민운동’이 그의 어떤 행위 때문에 일정한 의미 훼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건강한 미래의 뒷덜미를 잡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뼈아프게 반성하면서 시대의 다음 챕터로 나아가면 되지 않는가. 백선엽 장군이 젊은 시절의 ‘친일’ 때문에 국립현충원에 가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보수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거나 한국전쟁에 목숨을 걸었던 그 애국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굳이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시대의 명장이 지닌 한때의 허물이 이렇듯 엄정하게 집행되는 일은, 국가 가치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긍정적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포용은 그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인식하고 그 전체의 ‘가치’를 읽어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차원에서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치열한 진영싸움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승리인가. 나라를 반쪽으로 떼내어갈 심산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슨 평화와 무슨 안정을 낳겠는가. 현재 다투고 있는 그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결국 나라를 잃은 조선의 당쟁을 보면 깨달을 수 있다. 아주경제는 상시분열(常時分裂)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즉 두 분의 죽음으로 모두가 빠져버린 ‘모순의 늪’ 속을 헤매고 있는 이 나라에게, 참으로 지혜롭고 명석하며 입담 좋고 빼어난 상상력을 지닌 지식인들에게, 최진석 교수(건명원 초대원장·서강대 철학과)가 역설해온 작은 팁 하나를 드리고자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논란은 전시대 갈등의 그림자이다. 산업화도 수고했고 민주화도 수고했다. 그간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성과는 탁월한 전술을 확보한 것이다. 전술은 이미 짜여진 판 위에서 경쟁하는 것이라면, 전략은 아직 짜여진 판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이 새 판을 짜본 적이 없는 나라다. 왜 새 판을 짜야 하는가. 국가경영으로 보자면, 우리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진국은 ‘앞서 발전한 나라’ 개념 정도가 아니라 ‘판을 선도할 수 있는 나라’의 의미가 숨어 있다. 판을 선도하려면 우리 내부가 판을 짤 수 있는 창의적인 수준을 지녀야 한다.

사유의 시선을 제대로 높일 때다

이 나라가 시민운동의 대부를 놓고 밀고 당기고, 한국전쟁의 장군을 놓고 밀고 당기는 건 산업화와 민주화 시절에 했던 일의 연장이다.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그토록 치열하게 붙잡고 있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견인하는 일일까. 필요한 일일 수는 있지만 미래를 저당잡힌 채 싸움으로 풀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최 교수는 ‘전략적 시선’을 강조한다.

시선을 바꿔야 나라의 기풍이 바뀌며 나라의 관심이 바뀐다.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견들이 진정한 이견이 아니며, 서로 나뉘어 물어뜯고 조롱하며 저열한 언어를 쏟아내는 이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뒤로 가는 진보, 구태를 지키는 보수로는 희망이 없다. 모순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제 거기서 나오라. 고개를 들고,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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