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윤석열, ‘조국 거울’로 2013년을 보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6-24 16:3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2013년 10월 21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채 1년도 안 된 ‘서슬 퍼런’ 시기, 현직 고위 검사가 살아 있는 권력을 들이받은 대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찰 국정감사가 열린 이날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증언대에 섰다.

이 사건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정보원 심리정보국 소속 요원들이 국가정보원 계획과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게시글, 댓글을 남겨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 범죄다.

국감 증인으로 나선 윤 지청장은 국정감사 4일 전 ‘보고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윤 지청장은 비장한 표정, 결기 어린 눈빛, 단호한 어조로 검찰 상층부의 외압을 증언했다.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하던 중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직원들을 빨리 석방하고 압수물을 돌려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국정원 직원) 체포와 압수수색, 향후 수사계획까지 적어서 검사장님 댁으로 보고를 드리러 갔다···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정 하려거든 내가 사표 쓰면 하라’는 답을 들었다.”

"(검찰)조직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도 이날 나왔다.
 

[2013년 10월 21일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날 이후 윤 지청장은 일약 ‘정의로운 스타 검사’가 됐다. ‘항명(抗命)'으로 뜬 거다. 이후 징계를 받고 박근혜 정부 내내 한직을 전전한 그는 다 알다시피 정권이 바뀌고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항명으로 뜬 그가 요즘 다시 항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징계로 넘어가고 버텼지만, 이번에는 여당의 사퇴 요구를 받을 정도로 간단치 않다.

검찰총장 사퇴 논란을 알기 위해선 검찰청법 중 검찰총장 관련 조항을 살펴봐야 한다.

6조,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한다. 7조,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 12조,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즉, 대한민국 검사는 단 두 종류다. 검사와, 검사 모두를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뿐이다. 검찰총장은 법으로써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의 수장, 유일무이한 사령탑이다.

그런데 이런 '무소불위' 검찰총장 견제는 법무부장관 몫이다. 검찰청법 8조,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요즘 윤석열 총장 사퇴가 거론되는 '제2의 항명'은 이 조항에 해당한다. 추미애 장관은 이 8조에 따라 윤 총장에게 구체적 사건을 지휘했다. 추 장관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 조작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이 아닌 대검 감찰부가 직접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지휘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감찰 사안이 아닌 인권 문제라는 논리다. 그런데 그 인권이 수사를 잘못한 검사의 인권을 말하는지,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증인의 그것인지 헷갈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다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쨌든 검찰청법에는 총장의 지휘 거부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 법무부 장관 지시를 거부하거나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근거가 없다. 검찰총장 임기 2년 조항의 원인이자 결과다. 결국 검찰총장 중도 퇴진은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발동 때는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졌다. 2005년 천정배 장관 당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두고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을 발동하자, 김 총장은 지시를 이행한 직후 스스로 물러났다.

이번 항명 파동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해 여당 정치인들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이 ‘장관 지휘 불이행’만을 이유로 윤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건 관심 있는 국민은 누구나 다 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일가 수사와 기소, 재판 과정 등 이후 줄곧 윤석열 검찰은 정권의 눈엣가시다.

반면 보수 야권은 '버티라'고 응원한다. 정부여당의 기대와 전혀 다른 행보에 보수 진영은 환호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변에는 윤 총장 호위 부대를 자처한 극우 시위꾼들이 상주하고 있다. 공산당을 무찌르자는 군가를 틀어놓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윤 총장은 사퇴를 고민할 때 항명이 아닌 총장 취임 이후 검찰 역량을 총동원했던 조국 관련 수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윤 총장 스스로 ‘조국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라는 말이다.

윤 총장 장모인 최모씨 은행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수사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 수사를 어떻게 했는지 자문하면 된다. 또 아내 김건희씨 관련 주가조작, 대기업 후원 의혹 등도 조국 일가의 뇌물 및 불법 투자 의혹과 견줘보라.

법무부 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그 가족들이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같은 법과 원칙, 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상식이다. 윤 총장은 ‘조국 거울’을 통해 그 자신을 비춰봐야 한다. 법무부장관 조국과 검찰총장 윤석열에 다른 잣대가 적용될 이유는 없다.

장모와 아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윤 총장 취임 이전에 있었던 ‘잡범’의 사건, 즉 사위이자 남편인 윤석열 검사가 개입한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 윤 총장 말대로 가족 의혹이 검찰총장의 업무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역시 조국 전 장관과 같은 잣대를 대보면 된다. 윤 총장 스스로.

무엇보다 조국 사태 와중에 별건 수사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뤄졌던 감찰 무마, 하명수사 의혹도 비교 대상이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압수수색 등 거침없이 이뤄졌던 조국 수사의 전례를 '검언유착', '한명숙 사건 배당' 등 윤 총장 본인에게 적용해야 한다.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휴대전화만 압수수색하면 간단하게 풀릴 조사를 인권 운운하며 질질 끌게 한 ‘무마’의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수사 무마’, '하명 배당'을 했다면 이는 정말 위중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가족과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이나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윤 총장은 직을 계속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2013년 윤석열 검사가 했던 항명을 2020년 국정감사장에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못하리란 법은 없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 조국의 거울에 2013년의 자신을 비춰보는 ‘윤석열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번 칼럼은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방영되는 아래 '아주3D'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