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투키디데스 덫' 유혹 ..충돌 앞에 선 美.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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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0-06-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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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5년 전인 2015년 국가주석으로서는 첫 미국 방문길에 나선 9월 22일 시애틀에서 중국과 미국 관계에 대한 연설을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이 연설에서 두 나라 관계를 설명하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했다.

“양국은 서로간의 전략적 의도를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신형 대국(大國) 관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대항하지도 않으며,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윈윈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 중국 외교정책의 우선 방향입니다. ···서로 전략적인 오해와 오판을 방지하고, ···색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관찰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계에는 원래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국 사이에 전략적인 오판이 발생하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BC(기원전) 431년에서 BC 404년까지 27년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2500년 전에 일어난 그 전쟁의 발생 원인부터 종결까지 상세하게 기록해서 인류 최초의 전쟁사를 남긴 사람이 투키디데스(Thucydides·修昔底德)이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군인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다가 명령 불복종으로 전선에서 추방당한 실패한 군인이었으나, 전쟁 자료를 수집해서 인류 최초의 과학적 전쟁기록을 남겼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에 대해 투키디데스는 “급성장한 도시국가 아테네와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 도시국가인 스파르타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다가 아테네가 공격에 나설까봐 불안해하던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전쟁”이라고 진단했다. 아테네는 강한 해군력을 이용해서 스타르타에 반격을 가했으나, 스파르타는 페르시아를 끌어들여 아테네의 해군력을 무너뜨렸고, 결국 아테네가 항복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30년 전쟁은 그리스 세계의 경제를 무너뜨렸으며, 결국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가 종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 첫 방문에서 언급했던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修昔底德 陷穽)’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시대가 시작된 2017년 4월 다시 주목을 받았다. 시진핑과 트럼프의 첫 회담 직후 미 뉴욕타임스 북 리뷰에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교수가 쓴 ‘피할 수 없는 전쟁(Destined For War)-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 Trap)‘라는 광고가 실려 미국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의 제1장은 ‘중국의 굴기(崛起·Rise)’이고, 제2장은 ‘역사의 교훈’이었다. 제1장 첫머리에 앨리슨 교수는 나폴레옹이 1817년에 한 말 “중국을 잠들어 있게 하라. 중국이 잠에서 깨면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를 인용해 놓았다. 제2장 ‘역사의 교훈’ 제일 첫 부분은 ‘아테네 대(對) 스파르타’였고, 그 앞부분에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써놓았던 말 “아테네가 강해지자 스파르타에서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는 부분을 글머리에 인용해 놓았다. 앨리슨 교수는 패권국과 신흥 패권 추구 국가들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전쟁을 벌인 케이스를 정리해 놓았다. “15세기 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패권을 놓고 대결을 벌인 이후 현재까지 세계사에는 모두 16차례의 패권 경쟁이 벌어져 12차례는 전쟁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20세기 중반 해양지배국인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강국 일본 사이의 태평양 전쟁, 20세기 초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1차대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국·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모두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전쟁이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의 불꽃이 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양국 분위기다. 중국 내 최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온·오프 라인 신문 ‘참고소식(參考消息)’은 지난 6일 프랑스 르 피가로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를 인터뷰해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가 중국과 미국의 충돌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을 전재했다. 앨리슨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실패한 사실이 두 나라 사이의 적대감을 극대화시켜 놓았다”고 진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발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질식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대되자,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전쟁 감행 이외의 출구는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 화교들이 신뢰하는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은 6월 14일자 최신호에서 “바이러스19 확산으로 재선의 길이 막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은 중국과의 긴장을 더욱 높이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팬데믹 책임이 중국에 있다고 비난해오던 중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확산 상황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 세계 대상 중국어방송인 관영 TV 채널4는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이 미국의 대만 분리 정책에 대한 외곽 때리기 전략으로 중국 남부 샤먼(廈門) 인근의 대만 관할 섬 진먼다오(金門島)에 포격을 가한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진먼다오 포격 사건은 62년 전 10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먼다오에 포격을 가해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벌인 한국전쟁이 끝난 지 5년밖에 안 되는 시점에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중국 관영TV가 이 진먼다오 포격을 지난 5월 29일부터 다큐멘터리로 매일 방영함으로써 트럼프의 미국을 외곽에서 때리는 전략을 재현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관영 중앙TV는 지난 4일에는 “중국군 육군 제73집단군이 10일까지 1주일간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보하이(渤海)만 일원에서 수륙 양용 탱크를 동원한 상륙 훈련을 실시한다”는 랴오닝(遼寧) 해사국의 발표를 방송했다. 밍바오(明報)를 비롯한 홍콩 미디어들은 이 훈련이 대만을 겨냥한 상륙 훈련이며, 보하이만 일원에서는 지난 5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80일간 예정으로 실탄 사격훈련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남중국해 일원의 통항권을 놓고 긴장이 빚어져 왔다. 중국은 남중국해 산호초에 활주로와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미국은 이에 대해 남중국해는 중국의 영해가 아니라 공해라고 주장하며 구축함이나 항모를 산호초에 건설된 중국의 해양 군사기지 부근으로 항해시켜 일촉즉발의 긴장이 빚어져 왔다. 여기에 진먼다오 포격과 보하이만 실탄 상륙훈련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언제든 불꽃이 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트럼프가 '최고의 중국전문가‘라고 공언한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가 쓴 ’100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에 그 배경이 설명돼 있다. 보수적인 싱크 탱크 허드슨(Hudson) 연구소 소속의 필스버리는 '글로벌 슈퍼파워로서 미국을 대체하겠다는 중국의 비밀 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중국의 전술·전략 교과서인 손자병법의 제1장은 황제를 속이고 바다를 건너는 '만천과해(瞞天過海)'라는 기만전술”이라고 소개하면서 “미국은 멀리는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이후, 가까이는 1983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 100년 동안 줄곧 속아만 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018년 10월 4일에는 허드슨 연구소에서 한 연설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관세와 환율 조작,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절도행위 등을 통해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무역적자를 안겨주었다”고 비난했다. 이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절도(theft)'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사용해 중국외교부 대변인들을 흥분시켰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영국으로부터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넘겨받은 미국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온 후에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미국의 패권에 중국이 1980년 덩샤오핑이 이끄는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발전으로 2010년 이후 GDP 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G2로 떠올라 도전장을 낸 형세였다.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로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바다 건너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 사이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불꽃이 튈 경우,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도 지역적으로는 중국에 인접해 있는 우리의 운명은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한국전쟁에 이은 또 한 차례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외교당국의 충분한 심사숙고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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