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샤오캉'만 5번 언급한 리커창 ..흔들리는 中 100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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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0-05-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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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대 개막식서 공작보고하는 리커창 총리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3기 13차 회의가 22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만인대회당에서 개막한 가운데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지난 22일 개막된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공작보고를 하면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샤오캉(小康)’을 다섯 번 언급했다. ‘지난 1년 회고’를 하면서 한 번, ‘올해의 목표’에서 네 번 언급했다.

“시진핑(習近平)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 전국 각 민족과 인민들을 이끌고,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결정적인 기초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한다는 임무를 더욱 단단히 하고….”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위해…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를 충실히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완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겸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도 23일 내몽골 인민대표단과 토론에 나가 연설하면서 한 차례 샤오캉을 언급했다.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에서 완전한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
내년 2021년은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12년 11월에 열린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은 “두 개의 100년”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내걸었다. ‘하나의 100년’은 “1921년 창당된 중국공산당이 100주년을 맞는 2021년까지는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100년’은 “1949년에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샤오캉 사회의 건설은 원래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에 처음 제시한 개념이었다. 그해 12월 6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중국식 4대 현대화를 추진할 것이며, 20세기 말까지는 샤오캉 사회를 이룰 것“이라고 말해, 처음으로 샤오캉을 목표로 경제발전을 하겠다는 전략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샤오캉 사회의 개념에 대해 오히라 총리에게 “제3세계 중에서 비교적 부유한 국가의 수준, 예를 들면 1인당 국민총생산이 1000달러 정도 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DP는 270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니 20세기 말에 1000달러가 되려면 4배로 만들어야 했다. 1979년 말 우리의 1인 GDP는 3823달러로 중국의 14배 수준이었다. 덩샤오핑이 오히라 총리와 회담에서 제시한 ‘샤오캉’은 3년 뒤인 1982년 9월에 열린 제12차 중국공산당 당 대회에서 경제발전 목표로 채택됐다. “먼저 원바오(溫飽·등 따뜻하고 배부른)를 달성하고, 20세기 말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판량판(翻兩番 · 2배의 2배)한다”는 덩샤오핑의 말을 그대로 국가전략으로 채택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1949년 10월부터 1976년 9월까지 27년간 중국을 통치한 마오쩌둥(毛澤東)이 추구한 국가전략 목표는 샤오캉이 아니라 ‘다퉁(大同)’이었다. 마오는 1949년에 쓴 ‘인민민주주의의 전정(專政 · 전제정치)을 논함’이란 글에서 다퉁에 대한 견해를 발표했다. “청말에 변법자강을 추구한 캉유웨이(康有爲)는 다퉁을 추구하기는 했으나, 개량주의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다퉁을 이룰 수 없었다. 중국과 전 세계가 다퉁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노동자 계급이 이끄는 인민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인민공화국을 거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이르러야만 계급이 소멸된 세계의 다퉁을 이룩할 수 있다.”

마오는 다퉁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958년 중국의 전통적인 농촌을 해체하고 공동노동과 공동분배를 통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농촌 마을을 ‘인민공사(人民公社)’로 개편했다. 가정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게 하고 각 인민공사에 공동식당(大辦食堂)을 만들어 공동취사, 공동취식을 하는 혁명을 시도했다. 인민공사 체제의 구축과 함께 강철생산량을 선진국인 영국이나 미국을 짧은 시간 내에 앞서기 위해 마을마다 제철용 고로를 설치하는 대약진(大躍進) 운동을 추진했다. 역사는 마오가 다퉁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추진한 인민공사 조직과 대약진 운동의 결과가, 생산력의 급격한 저하로 인해 몇 천만인지 정확히 통계가 잡히지 않는 엄청난 아사자를 낸 대참사로 기록했다. 마오는 인민공사와 대약진 운동의 참담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중고생과 대학생들을 동원해서 정적(政敵)을 공격하는 문화혁명을 1966년부터 10년간 진행했으나 이 혁명의 결과는 1976년 9월 마오의 병사(病死)로 끝을 맺는다.

마오 사후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통해 당권을 확보한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이 당과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제시한 개념이 바로 샤오캉이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이상주의자 마오쩌둥이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기 위해 채택한 다퉁사회의 건설 전략을 중산층이 충분히 확보되는 샤오캉 사회의 건설 전략으로 현실화했다.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하기 전에 후임 장쩌민(江澤民)에게 후계자로 지목해준 시진핑(習近平)은 15년 뒤인 2012년 11월 샤오캉 사회의 건설 목표에 “전면적인”을 추가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 건설”을 새로운 발전전략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 목표를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 개념에 대해 “농촌과 도시 빈곤지역도 예외없이 모두 샤오캉을 달성하는 것이 전면적인 샤오캉”이라고 제시했다.

마오의 다퉁이나, 덩샤오핑의 샤오캉이나 원래는 유교가 달성하려는 이상국가의 개념이었다. 다퉁은 기원전 202년에서 기원후 8년까지 유지된 서한(西漢)시대에 만들어진 예기(禮記)라는 책에 나오는 개념으로, “천하에 대도(大道)와 공(公)이 잘 시행돼 각 개인이 남녀 구분할 것 없이 각자의 본분을 다해 도둑이 없고 문을 열어놓고 사는 사회”를 말하는 개념이었다. 샤오캉 역시 예기에 나오는 개념으로 성곽과 연못이 튼튼한 가운데 군신과 가족들이 각자의 관계를 잘 지키는 가운데 하은주(夏殷周) 3대와 마찬가지로 관리가 잘 되는 국가”를 말하는 개념이었다.

2300여년간 지속된 중국왕조시대는 1차 산업혁명으로 인류 최초로 발명된 동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침공한 영국 해군과 1840년부터 두 차례 벌인 아편전쟁 패배로 종결됐다. 마오쩌둥의 표현대로 이른바 혁명이나 개혁이 아닌 개량주의를 추구하던 캉유웨이를 비롯한 변법자강(變法自疆) 주의자들의 시대가 100년 계속됐다. 그 혼란을 정리한 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이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을 다퉁의 나라로 만들려다가 참담한 실패를 한 것이 마오쩌둥이었다. 실패로 귀결된 다퉁이라는 전략을 수정하고 현실화 한 것이 바로 샤오캉이며 2012년부터 시진핑이 추구해온 것이 ‘전면적인 샤오캉’이었다. 캉유웨이를 비롯한 개량주의자들의 실패를 딛고 1921년 창당된 중국공산당이 마오의 다퉁에 이어 덩샤오핑의 샤오캉에서 시진핑의 전면적인 샤오캉으로 전략을 수정해가며 100년의 꿈을 달성하려던 것이 바로 내년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100년의 꿈을 흔들어 놓은 것이 신관병독폐렴(新冠病毒肺炎), 즉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만연으로 인한 경제위기인 것이다.

덩샤오핑이 샤오캉 사회의 건설을 제시한 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일에 하는 정부공작보고에서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채 “방역과 경제무역 형세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국가의 발전에 예상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 많다”고 고백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바이러스의 위력이었다. 물론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 건설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일단 올해는 취업률을 안정시키고, 민생을 보호하는 ‘온취업 보민생(穩就業 保民生)’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리커창 총리의 정부공작보고는 제시한 것이다. 내년의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은 오는 가을에 발표될 ‘제14차 5개년 경제계획’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100년의 꿈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100주년에 전 세계 GDP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는 1810년대의 청(淸)을 재현한다는 꿈을 향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마오쩌둥의 다퉁사회 건설 전략에서 덩샤오핑의 샤오캉 사회 건설 전략으로, 다시 시진핑의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 전략으로 현실화해 온 흐름은 물론 시간적으로 다소 연기되더라도 큰 흐름은 달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광주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는 광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동세상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물론 마오가 추구하던 다퉁(大同) 사회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며, 이상주의자 마오가 추구하다가 실패한 다퉁을 의식한 언급이 아니라, 한대(漢代)의 유교경전 예기가 추구하던 대동사회, 198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축제 대동제(大同祭)가 뜻하는 화합과 단결의 의미인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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