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사 스며든 다산의 고장…팔색조 숨은 매력 찾아낼 남양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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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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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남양주학을 위하여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2000년대들어 팩션(Faction)이 인기다. Faction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를 가미한 새로운 유형의 소설 장르를 말한다. 최근 인기를 끄는 문화콘텐츠가 대부분 이 같은 유형이다.
국내 팩션 가운데 소설가 오세영의 ‘원행(園幸)’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795년 정조의 8일간의 화성 행차. 그 해 음력 윤 2월 9일 묘시(오전 5∼7시) 정조와 신하, 악대, 나인, 군졸 등 6200여명과 말 1400여필로 이뤄진 행렬이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해 수원 화성행궁과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顯隆園)을 향했다. 별기대(別騎隊) 80여명이 북을 두드리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힘차게 나부꼈다. 일대 장관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조의 화성 행차는 2월 16일 한양으로 환어(還御)할 때까지 8일 동안 이어졌다.
‘원행’은 그 8일을 흥미롭고 기발한 시각으로 접근한 소설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핵심은 ‘정조를 시해하려는 세력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였다. 노론벽파(老論僻派) 등 당시 정조 반대세력은 호시탐탐 정조를 노리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정조의 신변 안전을 책임진 인물이 정약용이다. 조선 역사를 향해 승부수를 던진 정조 시해 음모를 막아내는 정약용의 명민한 두뇌, 해박한 지식, 역사와 백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오랫동안 흥미와 감동을 준다.

  다산 묘소에서 내려다본 여유당의 뒷모습.[사진=이광표]

정약용, 하면 단연 남양주다. 그가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 꾸고 고뇌하다 끝내 숨을 거둔 곳, 그의 철학과 사상이 잉태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약용을 스토리화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의외로 부족하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포털 네이버의 지식백과에서 ‘남양주’를 검색해 보았다. 큰 제목이 ‘수도권 으뜸 도농(都農)복합도시’로 나온다. 그리고 내용별로 분류한 항목을 보니 ‘실학의 도시 남양주시’ ‘즐비한 명산들과 천혜의 빼어난 경치’ ‘곳곳이 건강코스, 수도권 대표적 슬로시티’ ‘명실상부한 슬로라이프 도시’ ‘이색적인 몽골 문화를 느끼는 고장’ ‘차 없어도 떠날 수 있는 시티투어’로 구성되어 있다.

 정약용을 스토리화한 콘텐츠 부족

일부 항목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았다. ‘실학의 도시 남양주시’ 항목의 일부 내용은 이러하다. ‘남양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 생가가 남아 있다.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정약용 선생은 57세가 되던 해에 유배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여유당집을 가다듬고 흠흠신서와 아언각비 등을 저술하며 학문적 완성을 이뤘다··· 또 정약용 선생 유적지 옆에는 ‘다산생태공원’이 2012년 5월 문을 열었다. 유적지 남쪽 팔당호반 일대 3만6321㎡에 들어선 생태공원은 신세계가 사회공헌 사업의 하나로 다산 선생 탄생 250주년을 맞아 건설한 뒤 경기도에 기부했다. 총사업비 20억원이 들어갔다···.’

    다산생태공원은 신세계 그룹이 조성해 경기도에 기증했다. [사진=김형섭]


나름대로 남양주를 설명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항목 분류나 내용면에서 허전하고 엉성하다. 가장 큰 원인은 인문학적인 측면이 빠졌기 때문이다. 실학과 정약용의 내용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남양주 설명은 내용도 부족하고 남양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빠져있다. 좀 더 깊이 있고 풍요로운 안목으로, 남양주 땅과 한강 물줄기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 공유하고 축적하고 전승하는 과정이 담겨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남양주학(南楊州學)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남양주학 이끌어갈 거점 연구센터 중요

부산학(釜山學) 인천학(仁川學) 제주학(濟州學) 강원학(江原學) 안동학(安東學) 경주학(慶州學) 천안학(天安學) 수원학(水原學) 군산학(群山學)···. 요즘 지역학이 대세다. 전통 선비문화의 도시 안동이나 천년고도 경주는 물론이고 최근엔 근대유산으로 각광을 받는 군산까지 지역학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국내의 주요 트렌드의 하나가 지역학이다. 최근 들어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경기의 역사 문화와 경기학(京畿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역사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남양주의 콘텐츠는 풍성하다. 양과 질에서 어느 지역에도 밀리지 않는다. 우선 정약용이 있다. 그런데 정약용이 남양주의 전부일 수는 없다. 다산학(茶山學)이 남양주학과 당연히 연결되어야 하지만, 남양주학은 다산학 그 이상이어야 한다.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에서 바라다본 한강의 모습. 이렇게 수량이 풍부해진 것은 팔당댐이 조성된 이후로 다산이 살던 시대와는 풍광이 많이 달라졌다. [사진=김형섭]

남양주의 역사와 문화는 남양주의 미래 자산이다. 고리타분하고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투자 가치가 있고 생동감 넘치는 자원이라는 인식에서 남양주학은 출발한다. 우선, 남양주 지역사의 연구 현황과 아카이빙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저서, 논문과 각종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그 양과 질을 상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분야별 시대별 내용별로 자료를 분류 정리하고 이런 아카이브를 토대로 남양주의 두드러진 특성을 추출해내야 한다. 이는 곧 남양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발굴 연구하고 그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선 연구 기관과 인력이 중요하다. 남양주학을 이끌어 갈 거점 연구센터가 시급한 상황이다. 동시에 연구자를 양성 지원해야 한다. 인력과 유관 기관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조선시대의 역사 문화로 보면 남양주는 단연 독보적이다. 조선시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남양주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남양주는 정약용의 고장이지만 또한 정약용만의 고장도 아니다. 연구와 보존, 활용 등에서 기존의 관성을 과감히 벗어나 깊이 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를 축적하고 나아가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안동 김씨 석실서원과 진경문화, 조선 과학의 최고 이론가 이순지 등을 통해 남양주를 재발견해야 한다. 조선시대를 풍요롭게 다루어 남양주의 문화적 힘을 이끌어 내 자산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석실서원, 진경문화, 이순지··도시 자존심 살리자 

문화재청은 한국의 탈춤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퇴계원 산대놀이 등 국가 및 시·도 무형문화재 18개가 포함된다. 이르면 2022년 12월 등재 여부가 결정이 난다. 퇴계원 산대놀이의 경우, 최근 각광을 받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탈춤에 비해 전문적인 연구가 절대 부족하다. 문화재청에 의존하지 말고 남양주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끌어야 한다. 지역학의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다. 시민이 참여하는 남양주학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역사 철학 문학 민속 등 남양주가 남긴 유·무형 문화 전반을 연구하고 공유하고 활용함으로써 남양주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미래 발전과 문화산업의 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제 지역학은 대세를 넘어 필수다. 도시의 자존심이다. 남양주에는 역사적 문화적 흔적이 참 많다. 특히 조선시대 한양과 한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인문학적 성과로 이어졌고 이는 다른 도시가 따라가기 어려운 매력이다.
 ‘원행’을 펼쳐보면 정약용에 흠뻑 빠지게 된다.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탐정 정약용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서 말이다. ‘원행’은 매력적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약용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것이 바로 남양주학이 존재해야 하는 까닭이다. <杓>
 ※2019년 9월 3일부터 시작한 <역사문화 진경(眞景)산책> 남양주 편은 9개월에 걸쳐 39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6월중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남양주에 이어질 후속 지역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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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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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원행, 오세영, 예담
경기학의 중요성과 활용 방안, 전은경, 주민자치 13호
화성지역학연구 제1집, 화성지역학연구소, 한누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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