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이용수 할머니가 우리에게 던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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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0-05-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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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지난 5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이용당했다고 비판하면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계속해온 수요시위에도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정대협의 독선적인 운영과 불투명한 회계처리도 문제를 삼았는데, 정대협이 흡수·통합돼 만들어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전 상임대표의 해명은 의혹 해소는커녕 정치적 공방만 불러왔다.

“위안부 피해자가 역사의 피해자에서 주체로 당당히 일어서기까지 그들의 중요한 동반자”(<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 215쪽)로서 정대협이 커다란 역할을 했지만, 어느새 정대협 식의 문제해결 방식이 성역화해 이와 다른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기부금 횡령이나 부정사용 등의 의혹에 관해서는 검찰의 수사에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번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된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위안부 합의와 정대협에 관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필자는 2015년의 마지막 날 한 신문에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면 한·일 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표명도 간접적이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을 제공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하기로 합의했던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전개된 상황을 보면 양국 정부의 상황 인식은 안이했고, 합의의 성실한 이행에도 태만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 치유를 위한 구체적 사업을 양국이 협력해 착실히 실시하는 것을 전제로 한 합의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 될 것을 확인했을 뿐인데도 일본 내에서는 10억엔 거출로 일본의 책무는 끝나는 것처럼 호도되었다. 일본에서는 합의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소녀상 이전을 위한 노력이나 국제사회에서의 비난 자제, 일본군 성노예 호칭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이 더 클로즈업되었다.

이 합의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되고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돈은 일본군의 관여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의 증표로서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에게 제공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외상은 합의 당일 일본 기자와의 회견에서 10억엔은 배상이 아니라면서, 청구권문제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아베 총리는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했으며, 자신의 입으로 직접 사죄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해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를 샀다. 이러한 태도는 일본이 합의 이행을 한국에 요구할 때 사용했던 ‘합의 정신’에 명백하게 반한 것이다.

합의에 반하는 언행들이 계속되면 합의 파기를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항의가 필요했지만, 한국 정부는 방관으로 일관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지도 않았다.

12·28 합의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갈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한·일 양국 정부나 지도자들이 성의를 다해 실행하려고 했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민간업자에 의한 것이라면서 국가와 군의 관여를 부정했던 일본 정부는 새로운 자료 발굴과 관련 연구가 진전을 보이면서 관여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인식이 일본 국민 사이에 널리 침투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가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가혹한 인권침해였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우리 사회에 “20만명의 소녀가 끌려가 238명만이 돌아왔다”(영화 ‘귀향’의 예고편)는 일종의 신화가 존재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 일본의 반발을 초래하고 그것이 다시 한국 측의 비판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들어 왔다.

법적 책임과 배상을 주장했던 정대협이 배상금이 아닌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피해자들을 직접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2·28 합의에 입각해 생존피해자의 약 70%가 1억원의 현금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 반관반민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61명의 피해자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본 총리의 편지와 함께 500만엔씩 받았다. 일본 국민으로부터 모금한 재원에서 200만엔의 보상금(償い金)과 일본 정부 예산에서 300만엔의 의료복지비를 받았는데, 당시 정대협은 아시아여성기금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술책이며, 이 돈을 받으면 스스로 매춘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반대했었다. 아시아여성기금 측은 한국 정부가 지급하는 돈과 이 기금의 자금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정대협의 강력한 반대로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대협이나 윤미향 전 상임대표에 대한 비판을 친일세력의 부당한 공세로 치부해서도 안 되며, 지금까지 축적해온 정대협과 윤미향 전 상임대표의 역할을 폄훼해서도 안 된다. 이용수 할머니는 어두운 골방에 갇혀 있던 위안부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했던 정대협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중대한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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