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전염병을 '정치'로 풀려고 했던, 아베의 비극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0-04-13 18:2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조진구 교수]


4월 9일 일본리서치센터가 공표한 코로나19 국제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일본 국내 하루 신규 감염자가 50명도 되지 않았던 3월 중순에 실시된 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응답한 일본 국민은 23%에 지나지 않아 29개국 가운데 28위였다. 요코하마 항에 정박해있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한국을 비롯한 외국과 비교해 일본의 검사 수가 현저하게 적었던 것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이 불신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인권을 어느 정도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32%로 최하위였다는 점이다(전 세계 평균은 75%였으며 한국은 80%였다). 반면, 응답자의 48%는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자신의 인권이 희생되는 것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보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손목밴드를 착용하게 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3.2%만이 반대하고 80.2%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이유 가운데 ‘인권침해 소지’가 42.4%로 가장 많았지만, ‘감염 확산 방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47.1%의 응답자는 찬성했다.

우리 정부는 감염자의 진술만이 아니라 휴대전화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 CCTV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잠재적인 감염자를 찾아내고 검사하는 데 활용했다. 이러한 한국의 방식에 대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고 감염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됐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면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지만, 국내에서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고려가 있었는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최장수 총리로서 자신의 임기 최고의 무대를 장식하고 싶었던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1년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 연기는 120년의 근대올림픽 역사상 처음이다. 도쿄도와 수도권 4개 현의 지사들은 26일 감염자의 폭발적인 증가와 록다운(도시봉쇄) 회피를 위한 외출 자제를 시민들에게 요청했지만, 27일 하루 동안의 감염자는 백명을 넘었으며 28일에는 200명을 넘었다.

29일 밤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높았던 탤런트 시무라 켄이 코로나19에 의한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일본 국민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4월 1일 세대별로 면 마스크 2장씩 배포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발표에 국민들은 냉소했다. 4일과 5일 도쿄도에서만 하루에 100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이 가운데 70%가 감염경로를 알 수 없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결국 아베 총리는 7일 도쿄도와 오사카부를 비롯한 7개 지역에 처음으로 긴급사태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4월 12일까지 5일 동안 크루즈선을 제외한 일본 국내 확진자가 4257명에서 6748명으로 늘고 사망자도 81명에서 98명으로 증가한 것을 보면 일본 정부의 기대와 달리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다.

4월 12일 현재 한국의 확진자수(1만512명)와 사망자수(214명)와 비교해보면 적은 편이지만, 한국의 검진건수가 50만 건을 넘어선 데 비해 일본의 검진건수가 8만 건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급격하게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방역의 논리보다 정치적 고려가 앞서고 정책결정과정에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견해가 반영되지 못한 탓이 크다.

긴급사태 선언 후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GDP(국내총생산)의 20%에 해당하는 108조엔 규모의 긴급경제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가구별로 30만엔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 이외에 개인사업자에게 100만엔, 중소기업에게 최대 200만엔을 지급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청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해 닛산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조차 메카뱅크의 융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면서 얼마나 버텨낼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런 것은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라야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일본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팔아 먹고사는 나라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차단되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오랜 정체의 늪에 빠질 우려조차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와 지도자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제 곧 국회의원 선거다. 정치학자조차 이해하기 힘든 선거제도를 만들어놓고도 반성은커녕 해괴한 논리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면 온갖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이 엄중한 위기 속에서도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투표장으로 갈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