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재건을 묻다-정병국①] “與 180석 인정해야…103석 만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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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0-05-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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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 때 지더라도 국회법 테두리 내에서 싸워야”

  • “새 원내대표, 통합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 “조기 전대 실시땐 패 갈라져…왜 김종인이어야 하나”

20년 국회의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 사무실의 오전은 부산스러웠다. 의정 생활의 기록을 담은 상자들이 사무실 곳곳에 놓여 있었고, 의원회관 보좌진들도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 16대 국회에 첫 입성해 20대 국회까지 5선을 하는 내내 ‘개혁적 소장파’의 대명사였던 정병국 의원에게 ‘보수 재건의 방향’을 묻기 위해 6일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다소 어수선했지만, 인터뷰가 진행된 내실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의 선택과 닮아 있었다.

Q. 20년 몸 담은 국회를 떠나는 심정이 궁금하다.
“미련이 남는다. 국회의원 초선 때부터 끊임없이 정치개혁을 해보겠다고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초선 시절 보다) 오히려 더 국회가 불신받고 혐오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국민들께 면목이 없고 자괴감도 든다. 돈 안 드는 선거, 지금과 같은 정치후원금 제도 등 여러 부분을 변화시켰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를 바꾸지 못했던 것, 특히 공천 제도를 바꾸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운 점이 남는다.”

Q. 4·15총선에서 보수가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통합은 했지만 결국 국민 눈에 비친 것은 통합도 쇼였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전혀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이 없었다. (총선 기간 나온) 막말 논란은 근본적으로 판을 흔들지 못했다고 본다. 보수정당이 축적해 온 나쁜 이미지에 막말 파동이 나오게 되니 보수정당에 대한 혐오감을 리마인드 시켜준 거다. 왜 우리 보수정당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인식들이 그런 것인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게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문제다.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막말로 연결이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 보수 진영이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5·18운동만 해도 YS가 대통령 시절에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5·18묘역을 국립묘지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엔 YS 사진을 걸고 정신은 계승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정부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 분명하게 시인하고 잘못한 사람들이 법적 조치를 받으면 되는 거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딴 소리를 하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겠나.”

Q. 통합당의 공천 과정의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됐다. ‘호떡 공천’이나 ‘막말 공천’ 등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공천관리위원회는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했다고 본다. 가장 큰 사명감은 계파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그건 이뤘다고 본다. 좀 더 젊게 물갈이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달했다.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실패다. 나름대로 컨셉을 갖고 공천을 했지만, (후보를) 치밀하게 세밀하게 걸러내지 못하면서 몇몇 썩은 인자들 때문에 전체가 좋지 않은 물건으로 인식되게 됐다. 내가 불출마를 선언할 땐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천을 나눠먹기 하거나, 뒤에 검은 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판이 되니 어떤 기준에서 공천을 했는지 모호하더라. 그런 결과가 막말 파동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하는데 억지로 후보를 내다보니까 결국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 호떡 공천 등 논란도 욕심이 작용했다고 본다.”

Q. 일각에선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유권자 지형의 근본적 변화가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에 동의하나.
“그렇게 보진 않는다. 청년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 물어본다. ‘내가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거의 들지 않는다. 진보는 상당히 많이 든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보수냐, 진보냐를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해보면 보수가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건 보수를 대변한다고 하는 메신저, 보수정당이 너무 오염이 돼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나쁜 것’으로 규정이 된 거다. 그래서 보수라는 이름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고민해봐야 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구분이 가능해진 것은 YS의 3당 합당부터다.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태생적 한계가 이어지면서 보수가 부정적이라고 하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보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걸 극복해내지 못한 거다. 희석되는 듯 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오면서 회귀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결과적으로 탄핵으로 이어졌다. 탄핵의 이미지, 보수 통합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이런 선거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본다.”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이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정 의원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정당 분당 사태에서 탄생한 바른정당의 초대 당 대표를 지냈다. 당시 바른정당은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를 기치로 내걸었다. 중앙당 당사를 광장처럼 트고, 청년정치학교를 만들어 청년 인재 육성을 하는 등 다양한 정치 실험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대선을 전후로 소속 의원들의 이탈이 있었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다시 보수통합을 했지만 총선 결과는 겨우 개헌저지선 확보였다. 정 의원은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초선 의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Q. 보수정치, 보수정당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모든 것이 정상화돼야 한다. 우리 당뿐만 아니라 국회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03석이다. 180석 대 103석인데 어떤 방법으로 정부여당을 견제할 것인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저는 103석이면 103석 만큼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본다. 국민이 결정해준 거다. 20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120석도 안 되는 의석으로 과반을 넘는 행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오버를 하게 됐다. 힘에 부치니까 하는 게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국회를 보이콧 하고 장외에 나가는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었나. 그런 모습을 국민들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패스트트랙 같은 문제다. 정부여당이 잘못했지만 대응이 더 잘못됐다. 막지도 못했잖느냐. 대안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했다. 대안이 있어야 국민들이 평가를 할 것 아니냐. 우리가 대안을 갖고 싸우다가 수가 모자라서 졌다면 국민들이 ‘다음엔 얘들한테 표를 줘야겠네’라고 생각할 것 아니냐. 20대 국회 내내 거리에서 투쟁했고, 국민들이 그것을 주말 태극기 부대의 연장선으로 봤다. 이런 정당을 대안 있는 대체 세력으로 볼 수 있겠나. 지난 지도부는 극단적인 세력들이 어떻게 될까 중점을 두고 모든 행동을 하고, 정책을 냈고, 투쟁도 거기에 초점을 뒀다. 결국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 103석을 갖고 103석 만큼만 하자. 원칙을 갖고 정상화하자. 대안을 갖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그 이후에 지면 지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쟤네들 얘기가 맞는데 안 됐네, 이러면 너무하잖느냐’, 결과론적으로 정부여당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거리에 나가서 싸우는 것만 투쟁이 아니다. 효율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정상화가 제일 중요하다.”

Q. 김세연 의원 같은 사람은 당 해체를 주장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당의 화학적 결합에 대한 지적도 나오는데.
“그게 제일 좋긴 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과거에 우리가 분당을 해서 당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현실이 녹녹치가 않다. 당을 바꿔야 되는데 참 오죽하면 그런 얘기가 나왔겠나. 참 어려운 일이다. 총선 결과 과거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 친박이냐 비박이냐, 그런 논란을 일으킨 핵심적 사람들이 배제됐다. 더 이상 그런 논쟁이 벌어지진 않으리라고 본다. 다만 새로운 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 방법론적으로 강성인 사람의 목소리와 합리적인 사람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늘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보고, 만들어질 거라고 본다. 여기에서 청년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고, 새로 진출한 초선 의원들의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엔 공천 과정에서 빚을 졌다. 누구 덕에 공천을 받는 그런 일들이다. 최소한 이번에 처음 들어오는 분들은 그런 부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된다. 당당하게 헌법에서 규정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원칙 있게 소신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면 우리 당이 바르게 설 수 있다고 본다.”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정병국 의원 사무실에 집기가 쌓여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다소 거시적인 주제에서 방향을 돌려 현안에 대해 질문을 했다. 당의 지도체제와 관련, 그는 조기 전당대회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비치면서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 대해선 “왜 꼭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해야하느냐”고 반문했다. 비대위 체제가 결정이 된 뒤 그 후에 비대위원장을 모색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Q. 오는 8일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다. 향후 총선 참패 수습을 원내대표가 맡게 될 텐데 당부하고 싶은 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정치를 하면 좋겠고, 모든 것을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 103석의 역할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할 수 있는지 골몰하게 되면 국민들은 다시 우리 통합당을 볼 거다. 우리 지지층들 특히 극우적 지지층들에선 ‘야당이 뭐하는 거냐, 제대로 좀 싸워라’고 하는데 제대로 싸우는 게 뭘까 생각해야 된다. 거기 현혹되거나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휘둘리다가 망한 거다.”

Q. 어떤 상징성을 가진 사람이 원내대표가 되는 게 적당하다고 보나.
“통합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 합리적인 통합. 결국은 정치가 통합 아니겠나. 협의를 통해서 의견을 하나로 만드는 건데, 그렇게 되면 여당도 인정하고 180석도 인정해야지 어떡하겠나. 그러면서 당내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이런 방향으로 가보자.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처절히 깨지는 모습도 보이자. 아스팔트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국회 내에서, 국회법 테두리 내에서 싸우자’ 이런 걸 관철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Q. 지도체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당면 가장 큰 논란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다. 이에 대한 평가는.
“그게 김종인이라는 사람만 놓고 얘길하니까 참 안타깝다. 저는 누구든 간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올 한 해 정도 맡길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패인에 대해 충분한 분석이나 노력을 하지 않고 바로 전대를 하게 되면 결국은 또 패가 갈라진다. 그걸 우려하는 거다. 패가 갈라지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당대표가 돼도 어떤 일을 하건 객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아닌가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걸 좀 유예하자는 거다. 누가 봐도 객관적이고 사심이 있다고 보지 않는 사람이 들어와서 당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서 당을 혁신하고 그 후에 그 틀 속에서 누굴 뽑아야 당이 굴러갈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람이 없다는 등 자존심을 얘기할 부분은 아니다. 일단 비대위를 구성하고, 새로 구성되는 원내 지도부는 원내에서 충실하게 해내야 한다. 결국 여당 견제는 원내에서 할 수밖에 없다. 1년간 치열하게 당을 재정비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옳다.”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이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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