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숙하지 않으면 내가 처단"…日 '코로나 자경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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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0-04-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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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배우 골프 여행서 감염 "죽어라" 비난 쏟아져

  • 폭력 수위 점점 높아져…일본 내 불안한 상황 반영

지난 3일 일본 교토부 조요시 주택가에 '코로나19 감염자 명단'이라는 제목의 벽보가 여러 장 나붙었다. 게시물엔 특정 개인들의 실명과 연령이 적혀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이들과) 밀접 접촉은 삼가달라"는 당부를 함께한 벽보의 발간 주체는 '교토부 후생노동국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본부장'. 그러나 이런 직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명부에 올라온 이들이 실제 감염자인지도 불분명하다.

지방 정부는 벽보 사건을 '악질적인 인권침해'라고 규정하고 비방과 중상을 멈춰달라는 호소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에선 조요시 벽보 사태와 비슷한 혐오·폭력 사태가 양상만 달리한 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일에도 43살의 한 남성이 영업 중인 스포츠클럽의 문을 파손해 경찰에 체포됐다. 해당 남성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영업하는 데 화가 난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스포츠클럽 전체 매장은 다음 날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직접 폭력이 아니더라도 온라인·민원 등을 통한 고발과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오사카부 지방정부엔 지난 20일까지 영업 중인 가게들을 신고하는 전화가 500건이 넘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가게 주인의 판단에 따른 영업은 불법이 아님에도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해 문을 연 가게들을 처벌하라는 민원이 이어진 것이다. 

오사카부의 한 레스토랑 역시 매출 악화를 견디다 못해 최근 온라인에 영업 재개를 고지했다. 그러나 비난 이메일이 쏟아지는 바람에 휴업일을 다시 6일까지 연장했다. 가게 주인은 쏟아지는 비난에 "정신적으로 지쳐버렸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미타테라 게이는 최근 온라인 매체인 프레지던트에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정부 권고를 어기는 이들을 '악'으로 보고 공격하고 있다"면서 "규범 위반자를 때리면서 안도감을 얻는, 이른바 '코로나 자경단'이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경단이란 전쟁, 폭동 혹은 범죄의 만연 등으로 기존 공공치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등장하는 자생적 조직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비협조적인 이들을 처단하겠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이런 사람들의 응징 수위는 최근 폭력 형태로 번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코로나 자경단'의 등장은 일본의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달 초 일본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폭증했다. 게다가 병원 곳곳엔 의료시스템 붕괴를 호소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일각에선 코로나 감염자에 대한 집단 따돌림까지 발생하고 있다.

에히메현의 한 초등학교는 학부모가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는 장거리 트럭운전기사라는 이유만으로 학생 2명의 등교를 막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일본 유명 배우인 이시다 준이치의 경우 오키나와 여행에서 골프를 즐긴 뒤 코로나19에 감염돼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온라인에서 이시다의 이름을 검색할 경우 '죽어라'라는 단어가 자동 생성이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온라인에서는 경솔한 행동으로 병을 퍼뜨렸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극도로 높아지면서 병원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가족들마저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끼고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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