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탈위기-디지털-대타협…‘코로나 개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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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4-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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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은 끝이 아니다. 방역과 경제, 코로나19 총력전의 새로운 시작이다. 동시에 '코로나 개헌'의 출발점이다. 경제의 시간이면서 새 정치의 장(場)을 여는 시점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전부 개정, 이듬해인 1988년 2월 25일 시행됐다. 우리 헌정 사상 가장 오래된 헌법이다. 올해로 33년 된 노후 헌법이다. 전문과 각 조항 구구절절이 지금 이 시대, 우리 삶터인 지구의 위기와 대한민국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1987년 이전에는 평균 5년 정도에 한 번 개헌을 했다. 국가의 기본 틀이 낡아도 너무 낡았다.

총선 결과가 나오자 참패한 야당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하나같이 “개헌 저지선은 지켰다”고 말한다. 개헌은 국회의원 300명 중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헌 저지선은 딱 100석이다.

그런데 왜 개헌이 저지돼야 하는가. 극우보수 진영이 주창하는 ‘빨갱이 나라 만드는 인민사회주의, 공산주의 개헌’이라서?

범여권은 머지않아 정권 교체를 끌어낸 촛불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나설 것이다. 야권은 “개헌은 여당의 영구집권 야욕”이라며 들고 일어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공학적 개헌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 뉴노멀을 맞이하는 개헌이 절실하다. 위기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경제성장과 공정한 분배를 지향하고, 국민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개헌 말이다.

◆탈(脫)위기 세계 협력··· 한반도 비핵·평화
지금 전 세계는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올 대격변의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뀌는 우리의 삶,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세계 역사는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고 썼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 말에 동의하며, 코로나 이후 세계와 대한민국이 겪게 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완전한 새판 짜기’다. 언제, 어떤 일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전 지구적 위기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핵심. 기후·환경-식량-전염병 위기 대응, 글로벌 경제시스템 재구성, ‘따로 또 같이’ 개인화 및 사회적 연대의 강화, 각국 정부의 개방성과 투명성 확보, 언택트(비접촉) 디지털 산업 재편 등이다.

이런 위기의 일상화와 그 변화에 우리는 ‘코로나 개헌’을 통해 국가의 기본 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우선 어떤 위기가 와도 이를 슬기롭게,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헌법에 새겨야 한다.

식량 자급자족에 문제가 생기거나, ‘코로나22’가 엄습하거나,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급격하게 높아져 영토가 줄어들 수 있다. 위기에 강한 권력구조를 따져봐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또 한 번 "개헌은 블랙홀"이란 말로 얼버무려선 안 된다. 

아울러 지구적 위기를 미리 대비하고 사후 대응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역량을 세계와 나누겠다는 선언이 우리 새 헌법 전문에 포함되면 좋을 듯싶다.

식량, 기후, 전염병 외에 한반도는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가 상존해 있는 세계 유일의 지역이다. 핵전쟁 말고 전 국민의 생명이 걸린 위기는 없다. 남과 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비핵·평화 헌법은 ‘탈위기 개헌’의 핵심이다. 개헌은 우리의 생명과 생존을 위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직통 민주주의’ 디지털 개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과 정치권의 ‘직거래’를 자주 언급한다. 그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는 국민과 정치사회 간 직접소통의 길을 열었다. 적잖은 국민들은 신문·방송의 기성 공론장을 기득권 권력의 하나로 인식했고, 그 결과 기성 공론장을 건너뛰어 정치사회와의 직거래를 활성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기존의 직접민주주의 개념을 뛰어넘는 쌍방향 직접소통 민주주의인 셈이다. 정치권,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진영 논리와 국가 정책에 대해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 받으며 정치 직거래를 한다. 즉, 정강 혹은 정책 입안-공론화-최종 확정 각 과정에서 양자가 서로 선순환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개념이다. 직통민주주의다.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직통민주주의는 4차 산업혁명의 ‘정치 버전’이다. 시민이 법안, 정책을 발의하는 형태의 국민투표는 스위스식 직접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로, 현재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위스와 스웨덴,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은 매년 3~5차례, 혹은 선거 때마다 주요 정책 사안별 국민투표를 치른다. 대만은 2018년 원전 가동 중단 철회를 포함한 9개의 어젠다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

재래식 국민투표는 국가적 에너지 소모,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모바일 디지털 전자투표를 통해 국력 낭비, 예산을 절감하면 된다. 무엇보다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익명화를 극대화한 비밀투표가 충분히 가능하다. 전자투표와 디지털 직통민주주의를 더욱 확대하는 디지털 개헌을 그려 본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 국민-정부 간 온라인 소통 플랫폼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다.

◆야당이 이니셔티브 갖는 ‘대타협 개헌’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 주도의 밀어붙이기 개헌은 곤란하다. 대타협 개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와중에 각계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여야 의원들이 함께한 개헌안이 발의된 걸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모른다. 지난 3월 6일 헌법개정안이 국회의원 148명(이 중 22명은 통합당)의 참여로 발의됐고, 국무회의를 통과해 지난 3월 11일 공고됐다. 이번 안은 헌법 개정 발의 권한을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대통령에서 나아가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명을 추가하자는 ‘원 포인트’ 개헌안이다. 이른바 ‘국민 개헌 발안제’로,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원할 때 개헌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유야무야됐음에도 이 개헌안 발의는 개헌을 위한 ‘대타협’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개헌안을 공동 발의한 김무성, 정진석 등 통합당 중진 의원들은 21대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했다.

이번 총선 결과가 지역색의 고착화라는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개헌안에 포함시켜야 하는 지방분권 확대 역시 ‘대타협 개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개헌'의 최대 수혜자가 될 젊은 층이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이 지난해 12월 20~21일 전국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남녀 1017명에게 ‘21대 국회 개헌 관련해 어떤 통치구조가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의 40.1%가 ‘4년 중임제’를 꼽았고 내각책임제(8.4%), 7년 단임제(6.0%), 이원집정제(2.2%) 순이었다. ‘개헌이 필요없다’는 24.6%에 그쳤고 ‘잘 모름·무응답’은 18.7%였다.

전 세계가 쓰는 연도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 올해는 A.D.(Anno Domimi, ‘신의 해’라는 뜻) 2020년이다. B.C.(Before Christ)는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 그렇다면 예수가 태어난 해-과학자들은 B.C. 3년이라고 추정하지만-는 A.D. 몇 년일까. A.D. 1년이다. A.D. 0년은 없다. 코로나 이후 A.C. 역시 그렇다. A.C. 0년은 없다. 2020년 올해가 A.C. 1년이다. ‘코로나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때다.

2016~17년 촛불혁명 이후 "제2의 박근혜를 막으려면 반드시 개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20년엔 "제2의 문재인을 막으려면 개헌을 막아야 한다"면서 '태극기 호헌세력'의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릴 거다.

‘팬데믹 총선’을 연기하자고 주장했을 때 "여당에 도와줄 일 있냐"며 일축했던 이들이다.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적극 검토하자고 쓰자 "문재인 정부의 돈 선거에 도움을 주려는 거냐"며 반박했던 사람들이다.

대안 없이 오로지 ‘반문’만을 외치는 세력에게 민심은 이번 총선을 통해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개헌은 야당이 반대하면 절대 불가능이다. 개헌 저지선? 아니다. 개헌의 캐스팅 보트를 움켜쥔 야당이 먼저 개헌 주도권을 갖고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또다시 무조건 반대만을 외칠 때 2년 뒤 대선, 4년 뒤 총선 결과가 두렵지 않은가. 야당은 개헌 저지선이 아닌 ‘대타협 개헌’ 주도권을 가졌다. 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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