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의 군과 법]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법원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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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기자
입력 2020-04-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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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심·2심의 엇갈린 판단...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실관계

한국전쟁이 계속 중이던 1950년 8월. 당시는 북한군이 포항 인근까지 밀고 내려와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이를 가까스로 사수하고 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러던 1950년 8월 29일 낮 12시경 미군 폭격기는 포항 칠포리 해변과 마을에 네이팜탄과 폭탄을 투하하고 오후에는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폭격하였다. 이로 인해 칠포리의 주민 약 30명이 사망하고 200여 가구가 전소됐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9월 1일 오후 2시경에는 포항시 북구 환여동 앞바다에서 미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헤이븐호(DD 727 Haven)가 10여분 동안 함포 15발을 지상으로 발사했고, 포격으로 인해 모래사장에 있던 피란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됐다. 미군은 칠포리에서 인근의 산에 인민군 점령지역이 있었고 추후 마을이 인민군의 배후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마을을 폭격했다. 헤이븐호는 피란민 중에 북한군이 섞여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함포사격을 하였다.

◆유족들 손해배상 청구... 1심·2심 판단 엇갈려

2010년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위 사건들을 조사해 주민 및 피란민들의 희생을 확인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망인들이 희생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제헌헌법상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 생명권 등이 침해됐다면 국가는 이로 인해 국민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었다. '사실관계'처럼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희생자가 발생했다면 이는 국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 있었다.

헤이븐호 사건에서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쟁 상황에서 북한군이 피란민으로 위장했을 수 있고 생존자 중 일부도 북한군을 목격했다고 진술해 피란민 중에 북한군이 섞여 있다는 국군의 정보가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함포사격을 명령한 것은 미군이어서 국군이 이를 방조하거나 가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은 "미군의 포격에는 피란민 사이에 북한군이 섞여 있으므로 포격을 해 달라는 국군의 요청이 결정적인 계기였고, 따라서 국군은 포격을 요청함에 있어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고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국제인도법과 전쟁법의 근본 취지를 위반해 중대한 과실로 미군과 공동으로 국민의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고 유족들의 손해를 인정했다.

◆대법원 파기환송... "국군 아닌 미군의 가해행위"

그러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군이 아닌 미군의 가해행위에 의해 망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취지로 진실규명 결정을 한 것"이라며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가에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해 전시에 국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국가는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 내에서 전쟁의 성공적인 수행과 국민 안전 보장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가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려면 국가의 조치가 매우 부적합하다고 인정돼야 한다"고 대법원 의견과 궤를 같이했다.

이한웅 법무법인유한대륙아주 변호사는 "헌법상 '국가에게는 국민의 신체의 안전과 생명권 등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기본원칙에 비춰 보면 국가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법원이 갈팡질팡하는 등 최종적인 결정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전쟁에서 충돌하는 국가의 의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당시 폭탄을 투하하는 유엔군 폭격기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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