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평화의 소녀상’ 모독...오늘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

장용진 사회부 부장입력 : 2020-04-01 20:00
차라리 만우절 이벤트였으면 좋겠다. 21세기 백주대낮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참혹하고 부끄러워 통곡을 해야 할지 길길이 뛰며 분노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 땅 위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이 거의 매일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수요집회장에서도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지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자리에서는 ‘수요집회’가 열린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듯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위안부 강제동원을 규탄하고 정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다.

수요집회는 20년 넘게 계속돼 왔고 벌써 1400회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수요집회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고, 총칼로도 짓밟을 수 없는 인권이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수요집회가 최근 수난을 당하고 있다. 당장 1일도 수요집회가 열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위안부는 성매매다”, “평양기생이 위안부로 가서 성매매하고 돈을 벌었다”는 내용의 피켓을 든 중년 남성은 수요집회가 열리는 내내 바로 옆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그 옆에는 그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는 "정대협이 위안부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즉각 사과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그 모습은 고스란히 인터넷을 통해 송출됐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수요시위가 끝날 무렵에는 일부러 시비라도 걸려는 듯 소녀상 가까이 접근해 경찰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갈듯 말듯 방향을 바꿔가면서 경찰들을 놀려먹기도 했다. 

참다 못한 경찰관이 앞을 막아서자 “그냥 지나가는 건데 왜 그러냐”고 이죽거렸다.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반일행동’ 소속 학생들이 노려보자 조롱하듯 깔깔거렸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태도였고 막을테면 막아보라는 도발이었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도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민들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람뿐만이 아니다. 한 중년여성은 수요집회를 위해 가져다 놓은 의자 등이 "불법 적치물이어서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주변의 시민들이 항의하자 "왜 못 찍게 하느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심지어 한 40m 떨어진 곳에서는 일본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대놓고 수요시위와 평화의 소녀상을 조롱하는 자도 있었고, ‘공산당이 싫다’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또 다른 중년남자도 있었다. 그에게는 수요집회와 평화의 소녀상이 ‘공산당’으로 보이기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한결같이 셀카봉을 들고 인터넷 생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방해꾼들과 수요시위를 번갈아 촬영하면서 재밌다는 듯 낄낄대기도 했다. 스스로를 ‘애국우파’라고 부르는 것으로 볼 때, 수요집회를 방해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조롱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모두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리 짜두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제멋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거리와 방향을 달리해 배치된 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흔적이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오든 이들을 마주치지 않고는 소녀상을 지나갈 수 없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요집회 참석자들이 애써 이들을 무시하며 집회를 진행하려 했지만 이들은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거나 느닷없이 시비를 걸면서 집회를 방해했다. 조금이라도 소란이 커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셀카봉’들이 모여들어 인터넷 방송을 찍어댔다.

마치 '제발 시비를 걸어달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수요집회 측에 따르면 이런 일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생겨났다. 그전에도 전혀 없던 일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조직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더 심해졌고, 3월 이후에는 숫자가 부쩍 늘었다.

급기야 3월 말에 열린 수요집회에서는 일장기를 든 사람까지 나타나 집회를 방해했다.

그는 경찰이 제지하기 전에는 고성능 앰프를 틀어놓고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방해했고, 심지어 "위안부는 창녀다", "정대협은 거짓말하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부활하라’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하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세워놓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것도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이 바로 바라다 보이고 길 건너 대한민국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행정의 중심부에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계승한 나라다. 우리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찬양하면서 그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다. 달리 말해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찬양할 자유는 없다.

그러니까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그렇다.

어떤 이들은 이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나라 팔아먹는 짓이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용인하는 곳은 없다. 

[사진=장용진 ]


아주경제와 컴패션의 따뜻한 동행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