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⑥]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찾은 그곳…“휴식을 소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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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03-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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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라이프쉐어 대표 인터뷰

[편집자주] 성수동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등 초호화 주거시설 반대편에는 수제화 거리‧철물점 등 낡은 흔적이 공존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 뷰티 전문점이 자리했습니다. 여기에 소셜벤처기업이 빈 공간을 채우면서 성수동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이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 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복잡한 세상이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건 사고도 매일 터진다. 세상의 흐름을 쫓다보면 어느새 방전이다. 일과를 벗어난 휴일, 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도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체력은 떨어지고, 마음도 답답하다. 누군가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최재원 라이프쉐어 대표는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화와 명상, 여행을 키워드로 “휴식을 적극적으로 소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조금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쉐어는 '휴식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소셜 벤처다. 또한, 삶에 지친 최 대표가 스스로를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휴식과 소비, 그리고 해소를 말하는 그를 올해 초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대화와 명상, 여행을 키워드로 휴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치유 받는다.[사진=라이프쉐어]



-라이프쉐어는 어떤 곳인가

“인생을 살아가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질문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뮤니티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속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멘탈케어를 받는 거다. 정신과 관련되면 병원과 상담사를 생각하는데, 우리는 게임적이고 팝적이고, 레저에 가까운 장르로 풀어낸다.”


-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나

“휴식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을 쓴다. 사람들에게 휴식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게 해서 나를 조금 더 나은 곳에 둘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면, 라이프쉐어(회사 이름과 동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00가지 인생 질문을 갖고,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나이, 직업, 학력 등은 블라인드로 하고, 오로지 인생의 중요한 질문만 진솔하고 주고받는 대화 게임이다. 라이프쉐어를 중심으로 1박 2일 캠프 프로그램, 10주 인생토론 커뮤니티 다이빙 클럽, 여행 트립 프로그램 등이 있다.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도 있다. 영화와 음악을 결합해 가상 팝업바를 경험하는 노트바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즐기면서 영화 주인공이 느꼈던 갈등과 고민을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참가자들은 그 과정에서 정화를 느낄 수 있다.“


- 왜 이런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나

“과거 내가 잘되기 위해서 욕망대로 살았다. 원하던 직장도 얻었고, 만족도 높은 업무를 하게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생이 무너졌다. 집과 회사, 금전적 문제, 애정 관계가 충족되면 행복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살려고 찾은 게 외국인이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낯선 외국인과 함께 지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유럽 친구들도 속이 엉망진창이더라. ‘헬독일’, ‘헬이탈리아’ 다 있었다. 그게 위안이 됐다. 친구 중에는 독일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있었다. 그 친구가 공부하는 의학분야에는 병원에서 외롭게 치료받지 않고, 가족과 커뮤니티를 통해 치료하는 학문이 있다고 했다. 저는 그 과정은 라이프쉐어라고 이름 붙였다.“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나

“농담으로, 참가자들을 ‘호모 라쉐리언’이라고 부른다. 라이프를 쉐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2017년 처음 시작해 회당 30분씩 거의 매주 진행하고 있는데, 참가자들의 특징이 있다. 첫째, 끊임없이 이동하려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움직이는 분들이다. 둘째, 남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다. 지속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다. 재테크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들이 라이프쉐어를 찾는다.”
 

100가지 질문 카드. 사랑, 가치, 삶 등 나에 관한 질문을 주고 받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사진=라이프쉐어]


- 최근에는 삼성전자에도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업에서도 많이 활용되나

“직원 복지에 대한 생각이 열려 있거나 색다른 콘텐츠 찾고 있는 기업 인사 교육 담당자가 우리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라이프쉐어서는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들이 교류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도 낯선 관계인 경우가 많더라. 사이가 안 좋은 직원들끼리는 감정이 쌓인다. 일로 풀려면 답이 안 나온다. 우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서로의 감정선을 뚫는다. 일이 아닌 여행, 사람, 미래, 죽음,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 저 부장님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막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지냈구나“ 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무선사업부에서 직원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야 하는데, 짧게라도 깊은 휴식을 취하면 좋겠다고 해서 노트바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 보통 휴식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기 쉽다. 휴식의 소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휴식의 소비는 말 그대로 휴식에 관련한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휴식의 소비는 이미 산업화가 됐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 흐름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고도화되고 있다. 시간도 없다. 가만히 있다고 쉴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기본적으로 뇌가 멈추질 않는다. 우리는 명상, 대화, 교감을 통해 빠른 휴식과 교감 테크닉을 개발해 휴식을 질적으로 높게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만족도가 높다. 솔직히 35살만 넘어도 갈 곳이 없다. 술 먹고 노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두려움 많고 스트레스가 커지고, 문제의식이 많아질수록 풀 곳이 없다. 음악적 명상, 춤추는 명상, 뇌를 잠깐 멈추고 사람과 교감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가는, 그래서 건강하게 푸는 것이 대세다. 재이용률은 측정 못 했는데, 대부분 프로그램은 하루면 다 마감된다.”
 

몽골라이프쉐어 캠프. 여행을 통한 회복의 시간.[사진=라이프쉐어]



- 최 대표에게 성수동은 어떤 곳인가

“아주 좋아하는 동네다. 내 삶이 성수동에 와서 크게 안정됐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주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일상에 지친 분들도 많지만,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좇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을 스마트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분들은 사업을 한다. 가치 지향적 사람과 자기 주도적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니 에너지를 받는다. 정보와 기회도 많이 모인다. 성수동에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도 기회가 떨어진다. 나 역시도 외로운 라쉐리언인데, 성수동에는 관계망이 잘 형성돼 있다.


- 성수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많다. 또, 할 수 있는 일과 가치를 조금 더 좋은 곳에 쓰고 싶어 한다. 가치가 있으니, 사람들이 멋지다. 처음에는 변태 같다고 생각했다. “저 학벌에 그렇게 배웠으면서……. 겉멋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인 사람들이었다. 멋을 표현하는 데 있어 누구는 옷을 입고, 다른 누구는 인스타그램을 한다. 성수동 사람들은 가치를 통해 멋있게 사는 법을 표현하고 있다.“


- 최종 목표가 있다면

“풀고 싶고, 놀고 싶고,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고, 그렇게 해소하고 싶을 때 ‘가오’ 안 빠지는 놀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내가 소비하는 것도 나를 표현하는 거다. 이게 디자이너블하면 좋겠다. 그런 놀이터 만드는 것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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