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금이 김 주무관의 비행기 티켓부터 과외비에 쓰인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강지수, 류혜경, 홍승완 기자
입력 2020-03-27 09:3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세금 수 백만 원 쓴 국외출장보고서엔 남의 글 그대로

  • 목적과 다른 연수 장소…나이아가라 폭포엔 왜 갔을까

  • '재외공관'은 감시망 '제외 공간'…통 크고 간 큰 공무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빙하 레스토랑에서 맛봤던 우리나라 컵라면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개인 SNS의 여행 감상평이 아니다. 선진국의 우수 정책 벤치마킹이 목적이었던 공무원의 해외 배낭 연수 보고서다.

2017년 10월 한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3명은 유럽 4개국(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으로 떠났다. 목적은 선진국 체험을 통한 시책 반영. 하지만 보고서 21페이지 중 18페이지는 한 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진과 단순 시설 소개로 채워졌다.

 

왼쪽은 한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작성한 보고서 사진 중 일부. 오른쪽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다. 보고서에는 원본 사진을 좌우 반전한 이미지가 첨부됐다. [사진=홍승완 기자]


이마저도 베낀 내용이다. 주요 견학 시설이라며 첨부한 영국 대영박물관 사진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인 한 해외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다르게 보이기 위해 원본 사진을 좌우로 반전시키기까지 했다. 해당 해외연수를 다녀온 공무원 A씨에게 사진 도용에 대해 묻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참고용으로 올린 거 같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이들만 그랬을까. 다른 해외 출장 보고서들은 어땠을까.

◆연수목적 달성보다 여행목적 달성

공무국외 여행은 연수 목적보다 여행 목적이 우선이었다.

2018년 10월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관광 상품 개발과 시장경제 활성화' 보고서의 연수 일정을 확인한 결과 참가자들은 9일간 노트르담대성당, 나이아가라폭포, 오를레앙 섬 등 대부분 관광지를 거쳤다. 목적은 관광 상품 개발이었지만 발길은 관광지를 향한 셈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두 달 동안 같은 지역을 두 번 다녀오기도 했다.

2018년 6월 A 지자체 공무원 5명이 지역 관광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스페인을 견학 간 데 이어 두 달 뒤인 8월 같은 지자체 공무원 4명도 스페인으로 7박 9일을 떠났다. 내용 역시 관광 선진도시 발전방안 모색이었다.

국가만 같은 게 아니다. 다녀온 도시도 똑같았다.

두 팀 모두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등을 견학했다. 알람브라 궁전, 톨레도 대성당, 프라도 미술관 등 방문 장소도 일치했다. 공무국외 여행 심사 및 허가기준에 따르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목적의 여행은 가능한 한 합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남이 쓴 글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보고서

수 백 만원 세금을 지원받은 공무국외 여행 보고서는 온라인에서 2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대학과제물 내용을 그대로 짜깁기하기도 했다.

공무국외 여행 일환으로 두바이와 스페인, 포루투갈을 다녀온 6급 공무원 2명은 보고서 말미에 배울 점을 작성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한 대학교 연구센터가 작성한 <스페인 관광산업 현황과 전망> 학술지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굳이 현지에 가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베낀 학술지는 공무국외 여행을 떠나기 14년 전인 2004년에 작성됐다. 10년 전 내용을 선진지 탐방 결과물로 내놓은 셈이다.


 

10일 동안 스페인으로 떠난 4명의 공무원이 제출한 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첨부돼 있지 않지만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국외출장보고서로 올라와 있다. [사진=홍승완 기자]



사진을 첨부하지 않은 보고서도 있다.

관광 우수사례 벤치마킹을 위해 10일 동안 스페인으로 떠난 4명의 공무원이 제출한 보고서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사진이 들어가야 할 칸은 비었지만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는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보고서에 사진이 없다면 연수 장소에 실제로 방문했는지, 계획표대로 실시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없다. 특히 '공무국외출장 규정'에 따르면 결과보고서는 출장계획서상의 출장 목적과 결과가 부합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작성한 뒤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등록해야한다. 하지만 '사진' 없는 보고서는 출장계획에 밝힌 목적과 결과를 판단할 수 없고, 방문 여부도 확인할 수 없어 기준 미달인 셈이다.

감사원이 2014~2015년 공무국외 여행 자료를 제출받아 법무부 출입국 기록과 대조·분석한 결과 총 21개 기관에서 모두 63명의 전·현직 공무원의 여행기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실제로 2014년 전남 순천시의 한 공무원은 '시민 행복지수 상승을 위한 일본 해외 연수'로 3일 동안 공무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았지만, 연수 기간 집에 머물렀다. 여행경비도 반납하지 않았다.

◆'재외공관'은 감시망 '제외 공간'

정부 감시망에서 떨어진 재외공관의 공금 횡령도 만만치 않다. 재외공관 예산이 전체 외교부 예산 2조 6172억 원 중 25%(6549억 원)를 차지하는 만큼 공금 부정 사용 씀씀이도 컸다.

주미대사관 행정직원 A씨는 6년간 매년 500만 원씩을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갔다.

지난 1월 감사원이 공개한 '재외공관 및 외교부 본부 운영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현지 보험사에게 받은 환급금을 반납하지 않고 자신 명의로 수표를 발행했다. 일반적으로 환급액 중 국고 지원을 받은 금액은 반납해야 하지만,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 국고를 개인적으로 운용했다. A씨는 이 수법으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총 3398만원을 자녀 사교육비와 치과 진료비 등에 썼다.

중형차 한 대 값을 통 크게 횡령한 공무원도 있다.

한국산업은행 해외주재원 B씨는 본인이 자신의 예산을 직접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악용했다. 2014년 B씨는 중국 시안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오겠다며 가짜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약 764만원을 수령했다. 또 하지도 않은 중국어 과외를 여러 차례 한 것처럼 꾸며 과외비 202만원까지 받아냈다. B씨는 이러한 방식으로 무려 444회에 걸쳐 공금 총 4024만원을 자신의 통장에 입금했다.

외교부는 깜깜이 공무원 행정 시스템을 손 보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이름부터 바꿨다. 외교부는 '공무국외여행규칙' 대신 '공무국외출장규칙'으로 이름부터 수정했다. 외유성·포상성 여행이란 편견을 씻기 위해서다. 또 포상·격려성 여행을 공무국외출장에서 제외하고 전자항공권 등 증빙 자료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외공관도 회계 처리 점검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회계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른 조치를 진행 중이다. 유사한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외공관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해외연수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호택 한국공공행정학회 회장은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 해외연수가 문제점"이라며 "시의원뿐만 아니라 공무원 해외연수도 심사위원회를 두어 목적성을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선진지 답사라는 명목으로 대개 유럽이나 미국 등을 가는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심의 절차 없이 나가는 경우가 있어 전형적인 예산 낭비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어 "포상 차원의 해외 출장이라도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타당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휴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감사원은 재외공관 비위문제에 대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경우 손 봐야 한다고 본다. 감사원도 재외공관의 회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 비위로 인한 횡령은 제도적 허점으로 발생했다고 보기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부분은 제도 연구와 방안을 모색해 보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