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벌점 제도, 피(被)규제자가 수용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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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관 기자
입력 2020-03-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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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에서 벌점 산정방식을 개편한다고 해서 건설업계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부실공사 방지 차원에서 그동안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온 벌점제도를 개선하여 불이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벌점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온 이유가 역설적으로 위반 행위에 비해 처벌이 과도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벌점 크기별로 선분양 시기에 제한을 받는다. 공공공사는 사전자격심사(PQ)에서 최대 5점을 감점받아 사실상 PQ 대상 공사의 입찰이 금지된다. 따라서 지금보다 페널티를 더 높인다면 부작용이 훨씬 더 커지고, 각종 소송이나 분쟁이 급증할 우려가 높다.

더구나 정부의 개선안을 보면, 점검 현장 수를 고려한 평균점수가 아니라 회사별로 부과된 벌점을 그대로 합산하여 반영할 예정이다. 이 경우, 건설현장이 많거나 규모가 큰 업체일수록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높다. 2019년 자료를 보면 시공능력평가 1위 업체와 100위권 업체의 매출 규모는 50배 이상 차이가 있다. 즉, 벌점이 공평하게 부과되더라도 대형사의 벌점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결국, 정부안대로 변경되면, 주택분양사업을 하는 대형 업체는 대부분 선분양에 제한을 받게 된다. 공공공사 입찰도 대부분 금지될 것이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다.

일부에서는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벌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대 재해나 과도한 부실공사에 대해서는 건축법이나 건설산업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영업정지, 건설업 등록 말소, 입찰 제한 등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또한 처벌 강도가 과도하여 기술자들로부터 원성이 높은 상태이다.

근본적으로 벌점이란 공사수행 중에 지적받은 사항을 점수로 누적한 것이다. 그런데 벌점의 부과 항목을 보면, 건설자재의 관리상태가 불량하거나, 콘크리트 타설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경우, 거푸집 해체 시기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 등과 같이 다소 경미한 사항에 부과할 수 있는 벌점이 다수이다.

즉, 구조물이 붕괴 우려가 있는 경우 등 중대한 부실공사를 대상으로 벌점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또, 벌점은 주로 품질관리가 불량할 경우에 부과되며, 불법 하도급이나 임금 체불·안전사고·산업재해 등을 포함하여 건설사를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다.

따라서 벌점제도는 위반행위에 따른 처벌의 경중(輕重)을 고려하고, 피규제자가 수용(受容)할 수 있는 제도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고려하면 시공과정에서 발견되는 부실사항에 대하여 손쉽게 벌점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시공평가(performance evaluation)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벌점제도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획일성이다. 현재 운영 실태를 보면, 국토교통부에서 각 업체별로 1년간 부과된 벌점을 통합하여 점수를 공표한다. 이 방식은 공사유형별로 기술력이나 부실을 측정하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려면, 예를 들어 건축·주택·토목·수자원·플랜트 등으로 구분하여 벌점을 관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건축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토목에서는 기술력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에서는 연도별 및 공사유형별 벌점 통계만을 공표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개별 발주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청 발주 공사에서 벌점이 과도했다면, 향후 경기도청 입찰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끝으로 벌점제도 운영이 잘못되어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다면 이는 시장 실패로 귀착된다. 특히 민간공사는 시장 메커니즘이 명확히 작동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건설사가 받은 벌점 크기에 따라 분양시기를 제한하는 규제는 지나친 비약이며, 조속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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