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국가연구데이터, 이제 전략자산입니다

  • 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데이터 관리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국가연구데이터법)’이 6월 9일 공포되었다. 공포 1년 후 시행될 이 법은, 국가연구개발과제에서 생산된 연구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공개·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국가 연구개발 투자의 산출물이 연구실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연구와 산업 혁신,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데이터는 개별 연구실과 과제 안에 흩어져 있었다. 같은 장비로 다시 측정하고, 이미 생산된 데이터를 찾지 못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후속 연구자는 선행 연구를 검증하거나 확장하기 어려웠다. 논문이나 특허와 달리 명확한 관리 기준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활용 가능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진다.
 
첫째, 국가 R&D에서 생산되는 연구데이터의 관리 책임이 분명해진다. 국가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한 연구개발기관은 생산된 연구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의무를 가진다. 연구자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가 만든 데이터를 기관과 국가가 함께 보존하고, 필요한 표준과 절차를 갖춰 다음 연구자가 신뢰하고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연구자는 연구 종료 후 연구데이터의 보존·제출·공개 기준을 예측할 수 있고, 연구데이터 관리는 일회성 행정이 아니라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된다.
 
둘째, 공개 원칙이 명확해진다. 연구데이터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영업비밀, 제3자 권리, 국가안보 등 보호가 필요한 데이터는 기간을 정해 비공개할 수 있다. 연구자는 어떤 연구데이터를 공개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 보호받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고, 데이터 이용자는 출처 표시와 비용 부담 기준에 따라 연구데이터를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연구데이터를 찾는 길이 열린다. 공개되는 연구데이터는 통합플랫폼 또는 분야별 전문플랫폼에 등록·연계되어 연구자가 소재를 확인하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 못 쓰는 데이터”를 줄이고, 기업은 연구데이터를 활용해 신제품·서비스 개발의 출발점을 넓힐 수 있다. 특히 대형 장비, 장기 관측, 우주, 지구과학 분야처럼 재생산 비용이 큰 데이터일수록 공유의 효과는 커진다.
 
이 법은 논문이나 특허로 이어진 ‘성공한 성과’의 연구데이터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를 검증하고 재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라면, 시행착오와 실패의 과정에서 생산된 데이터도 중요한 연구 자산으로 관리함으로써, 후속 연구자가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데이터가 후속 연구와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다면, 국가 R&D 투자의 효율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세계는 이미 연구데이터를 AI 시대의 핵심 연구 인프라로 보고 있다. 미국은 2025년 11월 행정명령으로 ‘제네시스 미션’을 출범시키고, 에너지부(DOE) 주도로 연방정부의 과학 데이터셋과 슈퍼컴퓨팅 자원, AI 모델을 연계하는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미국 과학·공학 분야의 생산성과 영향력을 10년 내 2배로 높이고, 에너지·보건·첨단소재·핵융합·우주·양자 등 전략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연합(EU)도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약 955억 유로를 투입하는 ‘호라이즌 유럽’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데이터 관리계획 수립과 데이터의 발견·접근·상호운용·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연구데이터는 신뢰할 수 있는 저장소에 기탁하고, “가능한 한 개방하고, 필요한 만큼 보호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관리된다. 세계적 흐름은 분명하다. 연구데이터는 AI 시대 연구혁신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
 
국가연구데이터법은 연구자가 생산한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게 하고, 정당한 권리와 보호를 전제로 더 넓게 쓰이도록 하는 법이다. 연구자는 더 빨리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고, 국가는 이미 투자한 연구데이터의 가치를 더 오래, 더 넓게 확산시킬 수 있다. 연구데이터를 잘 모으고 잘 쓰는 나라는 AI 시대의 연구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 이번 법은 그 출발선이다. 
 
법 시행까지 남은 1년은 현장의 의견을 제도에 충실히 반영해야 할 시간이다. 연구자가 신뢰할 수 있는 규칙, 기관이 실행할 수 있는 절차,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겠다. 분야별 데이터 특성과 연구 현장의 부담을 함께 고려해, 과도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연구를 돕는 관리 체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데이터가 연구의 부산물에 머물지 않고 다음 발견을 여는 공공의 과학 자산이 되도록, 변화하는 과학기술 환경에 맞춰 제도를 발전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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