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 아프리카 홀대정책에 중국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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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3-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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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마이크 폼페이오 美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순 아프리카 3개국 (세네갈, 앙골라, 에티오피아)을 순방했다. 그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한 것은 취임 후 2년 만에 처음이다. 방문 목적은 분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아프리카 홀대 정책에 대한 워싱턴 조야의 우려를 완화시키고,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갈수록  '차이나 머니'의 위력을 뽐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 순방국인 에티오피아에서 폼페이오는 중국을 향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폼페이오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행한 연설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권위적인 정권과 그들의 허황된 약속을 경계해야 한다"며 "그들은 부패와 종속을 사육하고, 현지인을 고용하지 않으며 교육도 시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나라를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중국을 지칭한 발언이다. 중국이 오로지 글로벌 패권 장악 차원에서 아프리카를 착취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美 주요 언론조차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발언으로 평가했다. 

사실 에티오피아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2번째로 큰 투자국이다. 지난 15년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것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쌓아온 덕분이었다. 이 나라의 인프라 건설에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되었다. 그 결과 폼페이오는 중국 자본으로 지어진 에티오피아의 볼(Bole) 국제 공항에 내려 중국의 자본으로 건설된 고속도로로 이동해 중국이 건설한 공장과 지하철, 철도를 보게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꼬집었다.

아디스아바바에는 중국이 2억 달러를 들여 2016년 완공한 55개 회원국의 아프리카 연합(AU) 본부 건물도 자리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중국어 인사말이 있고, 플라스틱 야자나무들에는 중국 개발은행의 로고도 찍혀있다. 화웨이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의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초현대식 건물로 중국과 아프리카의 긴밀한 경제 협력과 유대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폼페이오는 이곳에서 AU 의장도 만났다.

과거 대통령과 비교할 때 아프리카는 트럼프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막말로 유명한 트럼프는 아프리카 대륙을 '거지소굴 국가들(shithole countries)'이 넘치는 곳이라고 표현하며 조롱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아프리카 담당 국무차관보를 임명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주요 외교 포스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에는 외교 문외한으로 자신과 친분이 있는 핸드백 디자이너 라나 마크스를 임명하기도 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겨우 2개국(나이지리아, 케냐)의 아프리카 국가 정상을 백악관에서 맞이했다.최근 미국은 아프리카 최대 국가인 나이지리아를 비롯 수단, 탄자니아 등에 이민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는가 하면 케냐와는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의 대(對)아프리카 정책을 종잡을 수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백악관 내 대외정책 강경파이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 보좌관은 트럼프의 아프리카 전략인 'Prospser Africa'를 수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핵심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이고, 아프리카 대륙 자체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미국의 접근방식은 없다. 특히 중국은 뇌물과 부채를 이용하여 아프리카 국가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고 착취해 글로벌 패권 장악이라는 궁극적인 국가의 목표를 앞당기려 한다는 것이 볼턴의 주장이다. 이는 과거 행정부가 아프리카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강조한 것과도 거리가 있다. 이에 못마땅한 美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삭감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무산 시키기도 했다.  

폼페이오의 이번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고압적인 아프리카 정책에 대한 국내외 비판적인 여론과도 연결된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격분자들의 폭력과 빈번한 종족간 충돌로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군의 철수나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내 동맹국들뿐 아니라 자국내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반발과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 2월 초 발표된 美 입국금지확대 행정명령은  12억 아프리카 인구의 거의 1/4에 해당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그와 반대로 원조와 개발 프로그램을 줄이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축소에 대한 우려도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리카 전력 지원 정책이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에이즈 퇴치 계획, 빌 클린턴 대통령의 아프리카 성장과 기회법(AGOA)을 통한 관세혜택 등 미국이 도입했던 아프리카 지원 정책의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의 대대적인 투자에 힘입어 경제 발전과 개혁·개방의 피치를 올리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라 불리는 동북아프리카 지역 안보에서 미국의 전략적 동맹이다. 아비 아머드 알리 엘리 총리(43)는 지난해 국경분쟁을 겪던 이웃나라 에리트레와의 화해를 끌어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젊은 지도자이다. 2018년 4월 취임 이후 정치범 대규모 석방, 언론의 자유 허용 등 개혁 행보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11년부터 경제발전과 전력 에너지 확보를 위해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젖줄' 나일강 상류에 아프리카 최대인 6천MW급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댐을 건설 중이다. 이와 관련, 이집트와 수단이 자국의 식수와 전기 공급이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강력 반발하자 미국이 중재로 3국이 수년째 협상에 나서고 있다. 생존권이 걸린 댐 분쟁 문제가 악화되면서 한때 전쟁으로까지 비화 될 위기도 있었지만 지난 1월 3국이 댐의 운영 방식 초안에 잠정 합의한 이후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 중에 있다.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과 사바나의 경계지역인 사헬(Sahel) 지대는 자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등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거점이다.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이던 사헬 지대를 유럽으로 유입되는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으로 보고 이 지역에 2013년부터 4500명의 병력을 파견해 최대 동맹국인 미군의 지원아래 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방부가 서아프리카 배치 미군을 줄여 미국 본토나 태평양에 배치할 계획을 검토하자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서도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목소리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성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후 얼마 안되어 폼페이오 장관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매년 중국 외교부 장관은 첫 해외순방국으로 아프리카 국가를 택한다.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케냐 등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의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했다. 2017년 8월부터 아프리카 동부 아덴만과 홍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 지부티에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를 가동하고 있다. 미국의 아프리카 최대 기지인 르모니에 기지와 불과 13㎞ 떨진 곳이다. 또 남수단과 라이베리아에는 평화유지군까지 파견하는 등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에서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 정상들도 중국에서 수시로 회동하며 중국과의 우호 협력을 맹세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를 전세계에 확산시킨 장본인인데도 '중국 감싸기'를 펼친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에티오피아 국적이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개발은행 등을 통해 120억 달러의 정책자금을 에티오피아에 지원했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미국의 교역 규모(2018년 410억 달러)는 중국의 1/4 수준도 안된다. 경제적으로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투자 대신 중국 때리기를 통해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기도는 부작용이 크며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대규모 여신 제공으로 '부채의 함정'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은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이 중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공자학원을 아프리카 지역 곳곳에 세워 중국어가 아프리카 공용어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지만, 미국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 위력도 만만치 않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이 진출한 미 프로농구(NBA)와 지구를 구하는 흑인 영웅을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 '블랙팬서' 등은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반대급부 없는 아프리카 정책에 소극적이었지만, 미국의 아프리카 지원은 결국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폼페이오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도 트럼프 행정부 내 태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다시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아디수 래시투( Addisu Lashitew) 연구원은 이번 폼페이오의 순방이 트럼프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재설정 하려는 신호로 보인다고 뉴욕 타임스에 밝혔다. 그는 "미국이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한 진정한 파트너라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와도 경제 성장을 위해 손을 잡을 권리가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중국 대신 미국을 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못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화만 돋우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이다. 

아프리카 하면 우리에게 두개의 상반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는 가난과 가뭄, 내전, 질병으로 고통을 한몸으로 겪고 있는 ‘절망의 대륙’이다. 또 하나는 금과 다이아몬드 석유 등 각종 ‘자원의 보고‘이며 ’미래의 거대 소비 시장’으로 떠오르는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다. 최근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있는 한국 경제는 중국과 미국의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속한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에 힘입어 내수시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아프리카는 언젠가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뿐 아니라 터키, 인도, 브라질 등의 민간 기업들도 정부의 적극 지원 정책 아래 아프리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도 이번 폼페이오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아프리카 홀대 정책에 변화를 줄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은 다른 주요 경쟁국가에 비해 아프리카 진출이 너무 늦었고 미약한 수준이라 기대하는 성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진출을 모색하는 많은 한국 기업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정 불안과 취약한 금융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 꾸준하게 기반을 먼저 다지는 기업들에게 기회는 먼저 찾아올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프리카연합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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