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억대 철밥통 깨지나] 정부 밀어붙이는 '직무급제' 금융권 도입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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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0-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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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 공공기관 노조 반발···교보생명도 도입까지 내홍 겪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 도입이 금융권에서만큼은 지지부진하다. 대다수 노동조합이 결사반대하고 있는 탓에 도입 논의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권 직무급제 도입이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는 금융노조 정기전국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이날 금융노조 집행부는 올해 주요 사업계획 중 하나로 직무급제 강제도입 저지를 꼽았다.

같은 날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이 어느 수준에서 제도를 도입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직후 수출입은행 노조는 사측에 강하게 항의한 결과 노조 협의 없이 직무급제를 도입치 않겠다는 합의를 거치고서 일단락됐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다.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급여와 성과의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힘든 일을 맡은 사람에게 더 확실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혁신 과제 중 하나로 직무급제 도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확산 지원 방향'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직무급제 도입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과 달리 금융권에서 직무급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반대로 한달 가까이 본점 출근이 어려웠던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노조의 동의가 없다면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산업은행에서도 노조의 반대의사가 강하다. 조윤승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직무급제는 성과연봉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내로남불식 정책"이라며 "직무급제 도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코트라 등 대형 공공기관이 잇따라 직무급제 도입을 선언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다.

민간 금융회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보생명이 올해부터 직무급제를 시행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민간 금융회사가 과거의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교보생명 역시 직무급제 도입에서 내홍이 적지 않았다.

당초 교보생명은 2018년 노사합의를 진행해 지난해 직무급제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한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3차례 조정 끝에 1년 유예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교보생명이 직무급제로 조정되는 성과급을 전체 급여의 3% 수준에서 운영하기로 했음에도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했다는 의미다.

금융사 노조에서는 직무급제의 핵심인 업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대한 결정이 아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론적으로 직무급제가 공평해보이지만 그 평가 기준을 정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무의 난이도에 대한 결정이 임금과 직결되는 탓에 평가에 대한 불만이 심화되기 쉽다.

이 탓에 직무급제가 자칫 손쉬운 해고용 도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루아침에 선후임 직무를 뒤바꿔 자진퇴사를 유도하거나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금융권 노조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손쉬운 영업직이 아니라 어떤 업무가 다른 업무보다 어려운지 중요한지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직무 가치를 산정할 경우 직원들 사이에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조의 반대 의견을 꺾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직무급제 도입이 늦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은 그동안 호봉제가 강력하게 자리매김된 상태라 직무급제에 대한 저항이 다른 산업권보다 심한 것 같다"며 "노조에서 결사반대하는 탓에 대부분 금융 공공기관이나 금융사가 도입을 추진하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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