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잇단 무죄...아직 '빙산의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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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주 기자
입력 2020-0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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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근, 신광렬·조의연·성창호, 유해용 무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들에게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 이태종 전 서울서부법원장 등이다.

이 중 1심 재판을 마친 임성근, 신광렬·조의연·성창호, 유해용이 무죄를 받았다.

◆ ‘재판 개입’ 임성근 무죄...“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 아냐”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1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56·사법연수원 17기·서울고법 부장판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헌적 불법행위로 징계 등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가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사실은 인정했다.

그의 혐의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재판 개입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오승환을 정신재판에 넘기려는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종결토록 종용한 것 등이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위험이 있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형사수석부장에게는 재판에 관여할 직무 권한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즉 직권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

◆ ‘수사기밀 누설’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무죄...“공무상 비밀 아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55·19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였던 조의연(54·24기), 성창호(48·25기) 부장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6년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가 사법부로 번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고 영장재판 등을 통해 입수한 검찰 수사 상황과 향후 계획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등 수사기밀을 유출했다고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법원 내부의 조직적 공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수사 관련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것을 ‘직무상 행위’로 규정해 죄가 안 된다고 봤다. 검찰이 언론 등을 통해 수사 정보를 외부에 흘리고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게도 구체적인 수사 상황을 여러 차례 알려준 점 등에 비춰볼 때 유출된 정보를 ‘공무상 비밀’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 ‘재판 누설’ 유해용 무죄...“증거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재판장 박남천)는 지난달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54·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수석은 2016년 임종헌 전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토록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임 전 차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개입한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소송 상황을 유 전 수석을 통해 알아본 뒤, 이 내용을 청와대에 누설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 전 수석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등 외부에 제공하는 등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아직 ‘빙산의 일각’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1·2·3호 판결이 나왔다. 특히 임 부장판사 사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사·재판 정보 유출 혐의와는 달리 이 사건은 재판개입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를 다루고 있다. 임 부장판사 재판 결과가 재판 개입으로 인한 직권남용 혐의를 다수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의 가늠자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번 무죄 판결들로 현재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전체를 예측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의혹의 범위와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각종 재판 개입, ‘사법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47개에 달한다. 임 전 차장의 혐의도 30여개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범위와 규모가 다른 만큼 지금까지 내려진 판결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다. 판결이 하나 둘씩 나오면서 “당초 무리한 기소였다”, “아니다.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다” 등 의견도 분분하다. 시간이 지나면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임성근 판사, '재판개입 혐의' 무죄 (서울=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14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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