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이유도 방향도 모른 채 ‘깜깜이 투자’
  • 암호화폐 법정화폐 인정 요구에 앞서 자정해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상장된 ‘텐엑스’라는 종목은 오는 17일 거래 정지를 앞두고 있다. 거래 정지가 되면 투자자들은 정해진 기한 내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해야 한다. 지난 6일 오후 4시 55분 거래 가격은 58.29원이었다. 2200원가량에 거래됐던 상장 초기보다 97%정도 줄은 금액이다.

7일 빗썸 홈페이지에 고시된 내용에 따르면 텐엑스의 거래 정지 사유는 ‘투자유의종목 지정사유가 해소되지 않아서’다. 공지만 있을 뿐 뚜렷한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구체적 이유도 모른 채 빗썸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빗썸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상장 기준을 공개하고 있고 지난해 8월부터는 심의위원회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며 “내·외부 고문으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지정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고 말했다. 또 “유의 종목은 공지사항으로 안내 후 빨간 느낌표 아이콘을 붙여서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빗썸 홈페이지에는 △거래소 내 일 거래량이 미미하고, 그 기간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블록체인 또는 암호화폐에 연관된 기술에 효용성이 없어지거나 결함이 발견된 경우 △형사상 범죄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기타 형 연관성이 명확한 경우 등이 거래 지원 정지 대상 요건으로 명시돼 있다.

이런 기준으로 빗썸은 최근 한 달 동안 5개 종목에 대해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현재 상장된 암호화폐103개 중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암호화폐도 9개나 된다. 거래소 측은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장 심사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은 빗썸 만이 아니다. 또 다른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에서도 지난해 거래정지 된 종목이 30종목이 넘는다.

문제는 빗썸과 업비트의 경우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거래소로 그나마 양호한 수준에서 종목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감에서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내은행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개설 현황'에 따르면 2015년 159개였던 가상화폐 거래소의 법인계좌는 지난해 10월 기준 800개를 넘어섰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2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암호화폐 상장과 거래 정지를 결정한다.

암호화폐와 거래 형태가 비슷한 주식이 거래되는 곳은 한국거래소가 유일하다. 주식은 한국거래소의 기준에 따라 상장규정과 상장폐지가 이뤄지고 투명하게 공개된다.

반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통일된 규정이 없어 사실상 무법지대에 있다.

◆ 상장이유도 방향도 모른 채 ‘깜깜이 투자’

“사람들은 등락 이유도 모른 채 투자해요…흐름만 보고”

제멋대로 상장되고 사라지는 암호화폐 종목에 투자자조차 암호화폐의 ‘투자’라는 말에 회의감을 드러낸다.

익명을 요구한 암호화폐 투자자 A씨는 “암호화폐는 심리투자가 대부분이다”며 “대부분 큰손들이 움직여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에 코인을 거래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B 씨는 “작년, 재작년에 샀던 코인이 거래가 완전히 멈춘 경우도 있었는데 (코인을 만든) 회사가 코인의 거래기능 등을 더 강화하거나 홍보를 하지 않고 손을 놓아버린 것”이라며 “화폐기능이 아니라 포인트제도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투자자들이다.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암호화폐를 이용한 사기에도 쉽게 휘말린다.

암호화폐 발행업체 ‘코인업’은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2~3개월만 투자하면 200%가량의 수입을 보장한다며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모인 돈이 4500억원대에 달한다. 코인업은 다단계 조직을 두고 나중에 투자에 들어온 이들이 낸 돈으로 앞서 투자한 이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돌려막기'식 운영을 했다. 결국 사기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대표는 최근 징역 16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8월에는 고객 예치금 1700억을 가로챈 가상화폐 거래소 임직원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경품 이벤트를 이용해 고객을 유인했다. 가상화폐 시세나 거래량을 조작하기도 했다. 피해자 중에는 1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해당 거래소에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거래소의 문제로 투자한 금액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트래빗’은 2019년 5월 7일 폐업을 공식 발표하며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 암호화폐 법정화폐 인정 요구에 앞서 자정해야

늘어가는 피해자에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블록체인 협회 관계자는 “현재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행위규제에 대한 법률이 없다”며 “(현재는) 거래소 회원사에게 자정적인 측면에서의 보안강화와 상장과 거래정지에 관한 판단을 공정하게 해달라고 독려 중이다”라고 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 계류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은 (거래소를) 규제하는 법이지만 협회 차원에서는 찬성한다”며 “보안강화 등을 제도화해 공정하게 시장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의무 등을 거래소에 부과해 거래소의 자정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는 법안이다. 이를 통해 자격이 되지 않는 거래소와의 차별을 둘 수 있다.

한 가상화폐 업계관계자는 “특금법이 담고 있는 목표는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 방지이다.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의무화 등으로 최소한의 규제 테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라며 “국가가 개인투자자의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에 대한 일정한 가이드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권 편입은 아직 먼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특히 정부에서 여러 차례 ‘암호화폐 투자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정부가 먼저 나서 상황을 개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지난해 5월 국무조절실장 주재로 열린 '가상통화 시장 동향' 점검회의에서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가상통화는 법정화폐가 아니다”며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국내외 규제환경 변화 등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하여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제도권 편입 요구 앞서 암호화폐 업계 스스로 자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찬식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암호화폐를 제도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이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거래소들이 함께 상장 폐지 기준 등 업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리하는 것이 암호화폐로 인한 문제를 줄이고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표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거래소 입장에서도 책임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소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고, 기준을 마련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법적인 논의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들어온 스위스나 유럽 등도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왔다”고 덧붙였다.
 

[사진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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