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하이브리드角] 신종 코로나와 선거…‘팬데믹 총선’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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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20-02-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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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기준으로 21대 총선(4월 15일)이 72일 남았다. 이번 총선을 예정대로 치른다면 그 ‘시간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신종 코로나) 사태 발생, 확산 추이와 딱 들어맞고 있다. 걱정이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첫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한 때는 지난해 12월 12일. 이로부터 5일 뒤인 17일 대한민국 총선 예비후보자등록이 시작됐다. 4·15 총선 도전을 선언한 예비후보자들이 여기저기 출현하던 이즈음, 신종 코로나는 스멀스멀 우한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12월 28일 국회에서 선거법이 통과돼 총선의 ‘게임 룰’이 마련되자, 우한 보건 당국은 31일 “원인 불명의 폐렴이 돌고 있다”며 처음 신종 코로나 환자 27명 발생을 공식 인정했다.

해를 넘겨 1월 9일 우한시는 질병 원인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특정했고, 바로 이날 첫 사망자도 나왔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6일은 총선 D-90, 여야는 총선 공약과 인재 영입을 발표하며 총선 체제에 착착 돌입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이제 2월 들어 여야는 본격적으로 ‘총선 전쟁’에 나섰고,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총선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 절정에 오를 때쯤 신종 코로나 역시 극성기에 도달할 전망이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월 3일 “신종 코로나 확산이 향후 10일에서 14일 사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2월 중·하순 절정이면 대한민국은 바로 2월 말, 3월 초다.

2월 말 이후 3월 내내 대한민국 정치권은 새로 만들어지는 정당, 기존 정당 할 것 없이 전국 각지를 돌며 시·도당, 선거구 당협위원회(옛 지구당)별로 각종 행사를 줄줄이 열어야‘만’ 한다. 그래야 총선에 나설 후보를 최종 확정한다. 만약 5개 당이 이런 행사를 연다면 동·리→구·면·군→시·도 단위별로 지역구 253개, 기초지방자치단체 226개, 광역지자체 14개 등 최대 500여개 지역에서 2500여개 이벤트가 열리는 셈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253개 지역구 구석구석 사람들의 이동량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각종 향우회, 직능단체 모임 등도 지역 단위별로 빡빡하게 열린다. 

3~4월은 그야말로 ‘팬데믹(pandemic·글로벌 전염병 최고 단계)'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국제 전염병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기자회견 중인 가브리엘 렁 교수. [사진=뉴스업데이트 캡처]


지난달 말 CNN과 홍콩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대 전염병역학통제센터를 이끄는 가브리엘 렁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전염병의 절정은 4~5월경이며 6~7월에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우리 총선은 3월 중 후보가 대부분 확정되고 24~28일 선거인명부 작성, 26~27일 후보자 등록이다. 4월 2일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되고 10~11일 사전투표, 15일 본투표가 이어진다.

신종 코로나의 기세가 기적적으로 꺾이지 않을 경우 4월 총선 선거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직접 만나 판단할 기회는 확 줄어들게 된다. 나이 들고 병약한 어르신들 상당수가 투표장으로 가지 못할 거다. 젊은이들 관심도 더욱 떨어져 당연히 투표율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할 거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총선이 제대로 진행되기 힘든 상황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선거에 앞서 그 무엇보다 국가와 공무원, 정치인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 총선 연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에도 '연기할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공직선거법 제196조에는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는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협의하여 선거를 연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인 천재(天災), 각종 자연재해를 말하는 지변(地變), 그리고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하여야 한다’고 적시했다.
 
단,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자체장과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 조항을 눈여겨본다. 총선 연기를 대통령이 법으로 보장된 권한이라며 일방적으로 연기 선언하는 건 옳지 않고 그리할 수도 없다.

사실 1월 말 중앙선관위 관계자가 총선 연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이 반발했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 정부의 무능력을 규탄하는 총선 프레임인 ‘정권 심판론’을 희석하려는 저의라는 거다. 선관위가 ‘비례한국당’ 명칭 불허 등 현 여권에 유리한 결정을 내려왔다는 의심도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박근혜 대통령-황교안 총리 당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36명이 숨지는 등 사태가 커졌던 것에 비해 현재 사망자가 ‘0’인 상황은 과연 자유한국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종 코로나가 4월 총선에서 어느 당에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니 총선을 연기할 명분이 더 생긴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총선 연기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나아가 경제까지 다 집어삼킬 기세인 ‘악마 바이러스’와 싸우는 게 최우선이다.

신종 코로나는 국가안보 일정도 이미 바꿨다. 국방부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 예비군 훈련 시작일을 3월 2일에서 4월 17일 이후로 연기했다.

게다가 국회는 아직 253개 지역구 선거구도 정하지 못했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졸속으로 선거구를 정할 때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특정 정당,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것)이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다.
 

1월 18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만가연 모습. [대만TV 유튜브 캡처]


사실, 신종 코로나의 첫째 결정적 갈림길은 잔치·축제였다. 우한시는 지난 1월 18일 신종 코로나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급증하고 확진 환자만 100명이 넘어섰는데도 대규모 축제를 열었다.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를 앞두고 4만여 가정이 참여하는 초대형 잔치 ‘만가연(萬家宴)’을 개최한 거다.

선거는 민주주의 축제다. 특히 총선은 우리 삶과 미래를 좌우하는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중요한 축제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사태 와중에 총선을 여는 건 축제를 재앙의 출발점으로 만든 우한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은 원탁에 앉아 총선 2개월 연기를 합의하고, 여야는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을 꼼꼼히 마무리짓고 난 뒤 제대로 된 선거운동을 펼쳐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 생명이 위협받는 데다 민의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총선을 강행해야 하나.  '팬데믹 총선'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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