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범'이 사람에게 이어질 텐데…갈 길 먼 동물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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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경 기자
입력 2020-01-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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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지난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첫 실형 선고가 나왔다. 울서부지법 형사 7단독(유창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경의선 숲길에 살던 '자두'를 살해했던 40대 남성 정씨에게 징역 6개월 선고했다.

이후 잇따라 동물학대범에 대한 실형 선고가 이어졌다. 지난 18일에는 이틀 동안 고양이 두 마리를 살해한 50대 남성 김씨가 4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최혜승 부장판사)은 "피고인은 연달아 두 마리의 고양이를 죽게 했는데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피고인에게서 생명존중의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주인과 산책하던 반려견 '토순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20대 남성에게 지난 22일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이승원 부장판사)은 동물보호법 위반·재물손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모 씨에게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범행 동기도 비난의 여지가 크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10월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주택가에서 주인을 잃은 반려견 '토순이'를 발견해 쫓아간 뒤 머리를 짓밟아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후 그 사체를 유기해 재물손괴·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 겨우 발걸음 뗀 동물학대 처벌 더 강화돼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법조계와 동물보호단체 등은 잇따른 동물학대 사건 실형 선고를 반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변주은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아직 판례가 확립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면서도 “과거 대부분의 학대 사건들이 벌금형이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데 따른 유의미한 판결이다”고 했다.

앞선 동물학대 관련 재판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벌금형을, 극히 일부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는 동안 동물학대 사건은 꾸준히 늘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병관 의원에게 제출한 '동물보호법 위반 기소 송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 송치된 인원은 모두 1908명으로 지난 5년 새 동물학대 기소 송치는 2.2배 증가했다.

2014년에는 262명에서 2015년 264명, 2016년 331명, 2017년 459명, 2018년 592명까지 늘었다. 이중 구속 기소된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앞서 자두 항소심에 참관했던 망원동에 사는 한 캣맘(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은 “처벌을 잘 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동물학대가 결국 사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동물학대범에 대한 실형선고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행 동물보호법 8조 ‘동물학대 등의 금지’ 1~3항에서는 동물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동물을 학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8년 3월 동물학대의 범위를 확대하고 행위자의 벌칙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처벌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 경의선 숲길 사건이 발생한 뒤 동물보호법 처벌 강화를 요구하며 올라왔던 국민청원 게시물에는 21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게시자는 "처벌이 약하니 또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거 아니겠느냐"며 "이런 흉악범죄를 그냥 두고만 본다면 과연 시민들의 삶이라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복지 종합계획 수립 추진 방안을 통해 동물학대 처벌 수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동물학대 행위를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상해를 입히는 행위·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과 같이 유형별로 차등화하겠다고 했다.

◆ 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함께 가야…동물권 논의 시작할 단계

동물보호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동물을 생명이 아닌 ‘재산’으로 정의하고 있는 법이다. 현행 민법 98조에서는 동물은 유체물, 즉 물건으로 간주한다.

앞서 실형을 선고받은 동물학대 사건 재판은 모두 동물보호법 위반과 함께 재물손괴 혐의가 포함됐다. 사실상 재물손괴죄 혐의가 없었다면 앞선 재판들에서도 실형 선고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살해범이 재판 내내 “주인이 있는지 몰랐다”며 주장한 이유다.

이렇다보니 주인이 반려동물을 학대할 때는 사실상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 대부분 벌금형에 그칠 뿐만 아니라 소유권 분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 변호사는 "법에서 동물에 대한 정의를 바꾼다면 동물을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생명권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표창원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누구나 학대행위자로부터 동물을 긴급 격리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동물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상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민법 제98조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수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동물보호법 제 1조에서는 그 취지를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동물보호법은 인간과 동물 모두가 더불어 잘 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이뤄진 판결이나 반려인들이 많아진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동물들의 권리에 관한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가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의선 숲길 자두 살해 가해자가 농약을 뿌리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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