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신격호의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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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유통팀장(차장)
입력 2020-01-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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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서울 롯데월드몰에서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오른쪽부터)과 신동빈 롯데 회장,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장남 신정열씨가 운구차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지난 19일 오후 국립현충원에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임종이 초읽기란 전갈을 들었다. 내겐 할머니 같은 존재였던 큰이모의 묘비 앞에서였다. 뿌연 하늘 뒤로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롯데그룹의 공식 부고가 문자로 왔다.

장례식장에 당도한 언론사는 통신사를 제외하고 우리가 일착이었다. 이내 빈소가 꾸려졌고, 고인의 영정 사진과 상부, 상주의 이름이 장례식장 일층 LED 전광판에 뜨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현해탄의 사나이’ ‘유통 거인’이 영면에 든 것이다. 향년 99세.

사실상 한 세기를 살면서, 맨손으로 롯데를 유력 대기업으로 만든 고인에게 회한은 단 하나였을 것이다. 두 아들 신동주-동빈 형제의 불화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불린 롯데 경영권 분쟁을 창업주는 끝내 매듭짓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형제는 여전히 화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다.

그런 아버지의 회한을 잘 아는 신동주-동빈 형제도 고인의 마지막 길에 창업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지켰고 빈소를 내내 지켰다. 22일 발인과 영결식, 울산 울주군 선영까지 각자의 장남(신정열, 신유열)을 앞세워 함께했다. 롯데그룹 측에 따르면, 형제는 빈소에서 곧잘 대화하며 ‘교감’을 했다고 한다.

그런 형제를 빈소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롯데지주의 두 수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황각규 부회장과 송용덕 부회장이 그들이다. 황 부회장은 빈소를 찾은 외부 정·재계 인사를, 송 부회장은 내부 롯데 임직원을 각각 살뜰히 챙기며 4일간의 장례 일정을 환상의 콤비처럼 잘 마무리했다.

지난해 롯데 임원 인사에서 송 부회장이 황 부회장과 함께 롯데지주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는 본지의 단독 보도가 나간 직후, 실제로 롯데지주는 ‘투톱’ 체제가 구축됐다. 황 부회장은 그룹의 미래 사업 및 글로벌 사업 전략과 재무·커뮤니케이션 업무와 그동안 맡아온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 역할을, 송 회장은 인사·노무·경영개선 업무 등을 각각 맡게 됐다. 두 부회장이 양 날개처럼 신동빈 회장을 보좌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향후 롯데는 계속 ‘흥할 것’이란 게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신동주-동빈 형제도 아버지의 별세를 기점으로 황-송 부회장처럼 시너지를 낼 수는 없을까. 한·일 롯데 이사회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 능력을 절대 신뢰한다. 향후 신격호 명예회장의 자산과 지분을 처리하더라도, 신 회장의 ‘원 리더’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조심스레 경영 복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결국 소모전일 뿐이다. 영결식에서 더듬더듬 어렵게 한국말로 인사말을 하던 신 전 부회장이 재계 5위 롯데를 이끌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제 신 전 부회장은 조용히 동생을 보좌하고 그룹 전체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누나 신영자 전 이사장이 맡았던 장학재단이나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 나선다면 동생 신동빈 회장도 반길 것이다.

롯데는 2017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심볼을 바꾸는 동시에 캐치프레이즈도 ‘함께 가는 친구, 롯데’로 변경했다. 고객의 생애 주기를 잘 살피며 평생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신격호의 두 아들 스스로, 이젠 서로에게 ‘함께 가는 친구’가 되어봄이 어떨까.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고개 숙여 함께 절을 하던 불효자의 마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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