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뜨는 中. 떠는 美, 이 싸움 20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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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0-01-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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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합의 서명 전 발언하는 트럼프 (워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미·중 1단계 무역 합의안에 서명하기 앞서 발언하고 있다.



2020년의 세계는 하나의 나쁜(bad) 뉴스와 하나의 좋은(good) 뉴스로 시작됐다. 1월 3일 미국의 정밀 드론 공습으로 이란혁명수비대의 주요 간부인 솔레이마니를 폭살함으로써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중동정세가 급전직하로 악화된 것이 전자다. 후자는 1월 15일 미·중 간의 무역전쟁 타개를 향한 제1단계의 무역합의 문서 서명으로 올 세계경제에 가장 큰 호재로 간주되는 매우 좋은 뉴스다. IMF(국제통화기구)가 20일 올해 세계경제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은 대중 관세를 인하하고, 중국은 미국산 농산품 등의 수입을 2년간 2000억 달러 (약 220조원) 늘리기로 했다. 무역전쟁의 일시적인 휴전으로 세계 경제의 감속 우려가 다소 수그러졌지만 중국의 국영기업 개혁 등 구조문제는 ‘제2단계’ 과제로 미뤄졌다. 지난 2018년 7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관세 합전(合戰)에서 미국이 대중 관세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평하고 호혜적인 무역을 위한 역사적인 일보(一步)”라며 그 성과를 강조했다. 서명에 참석한 중국의 류허 부총리는 “양국의 의견 차이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서한을 읽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겨냥해 대중 수출을 늘리는 통상정책의 성과로 지지기반인 농가의 지지를 확보하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공약실현을 어필하려는 생각이다. 중국 측은 무역전쟁의 휴전으로 국내의 경기악화를 저지하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은 2019년 6.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천안문 사태의 여파가 있었던 1990년 이래 29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거래는 전년비 14.6% 감소한 5412억 달러(약 600조원)에 그쳤다. 대미수출은 12.5%, 수입은 20.9% 각각 줄었다. 성장률 저하와 무역 위축은 모두 미·중 무역마찰 의 탓이 크다.
미·중 양국의 제1단계 합의 서명에 이어 미국은 2월에 제재관세의 일부를 인하한다. 무역전쟁이 일시 휴전하게 되면 올해는 냉각됐던 개인소비와 설비투자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 정권은 2020년의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의 두 배로 늘리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목표 달성에는 올해 6% 정도의 성장이 필요하다. 이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 감세와 공공투자, 금융완화 등으로 일정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은 시진핑 지도부가 ‘소강(小康)사회’의 전면적 실현을 내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해다. 2010년 대비 실질 GDP 배증이란 국가목표의 달성기한이며, ‘제1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경기 진작에 강한 의욕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제2 단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 합의문서 서명이 미·중 대립의 ‘시작의 끝’이지 ‘끝의 시작’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즉, 관세분쟁의 부분적 해결은 미·중 마찰의 전주곡으로 경제패권을 둘러싼 본격적인 대립의 서장(序章)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이번 합의 내용을 보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 미·일의 경제 마찰 때 수치목표를 도입한 관리무역과 국내규제에 나선 경제구조 협의와 닮았다. 관리무역은 국가가 직접적으로 무역을 통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수단으로는 수출입 허가제, 상대국과 수량 제한 및 할당, 결제수단의 규제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관세제도는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이 당시 자동차 등 ‘수출 자율규제’를 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전문가들은 당시 뉴욕의 부동산왕으로 대일 강경파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적자를 1980년대의 대일 무역적자와 같이 최대의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정권은 11월 대선까지 추가 관세 발동의 카드를 남긴 채 제1 단계의 합의 이행과 제2 단계의 협의를 중국에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화와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공급사슬(서플라이 체인)이 세계로 확대된 21세기는 20세기형의 양국간 관리무역형 협의로는 수습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경제뿐 아니라 21세기의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중 관계는 복합냉전(複合冷戰)의 양상이 강하며, 그 전선(戰線)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우선 경제만을 봐도 농산물 등 상품무역 중심의 전선뿐 아니라 화웨이 문제로 상징되는 차세대 통신규격(5G)을 둘러싼 ‘하이테크 전선’, 디지털 위안화와 미·중 자본거래 등을 둘러싼 ‘금융전선’ 등 폭넓은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영기업과 산업보조금 등 경제구조 문제로 들어가면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라는 정치체제의 변혁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지난해 중국의 민간 상장기업 44개사가 국영기업으로 전환됐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는 하이테크 분야의 민간기업을 정부자금으로 사들인 것이다. 이들 회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트럼프 정권은 중국이 첨단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정부지원을 못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 측은 미국과의 대립 장기화에 대비해 중점산업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정치외교 분야에서도 대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내정문제로 안고 있는 홍콩과 대만의 장래에 관한 정치·외교 문제를 먼저 꼽을 수 있다. 더욱이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중국의 해양진출, 우주공간, 사이버 공간에서의 안전보장 대결로 전선이 넓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선여부에 상관없이 미국의 대중 자세가 누그러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속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현재 미국의 3분의 2 정도에 이르고 있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30년대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다는 전망도 미국인들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2019년 GDP는 명목 기준으로 99조865억 위안( 약 1경6000조원)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3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의 2.8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중 패권싸움은 향후 10년, 20년 계속될 것이다. 지난 1년 반에 걸친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본 것은 많은 약점을 드러내며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진보하는 중국, 아직도 압도적인 위력을 구사하며 패권을 누리고 있지만 정체된 미국의 모습이다.

이처럼 미·중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 대립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미·중의 이번 제1막 ‘미니합의’(1단계 합의)의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때다. 양국의 디커플링 속에서 한국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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