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의 운명과 한국당의 정치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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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논설고문
입력 2019-12-1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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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교안 대표 투쟁방식 보면 '반대'뿐...'시대의 가치'를 잡는게 실력

주한 헝가리문화원 개원에 맞춰 30년 만에 내한한 헝가리 혼성그룹 ‘뉴튼 패밀리’의 리드 보컬 에바 선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찍이 한국을 철의 장막 너머로 알렸던 ‘코리아(Korea)’란 팝송이 있는 줄 몰랐다. 독일 6인조 혼성그룹 ‘징기스칸’에서 리더로 활동한 헝가리 뮤지션 레슬리 만도키와 에바 선은 1986년 열린 제8회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연인이 됐다. 이들은 자신들을 맺어준 한국을 특별하게 기억하고자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코리아’를 만들어 음반을 발매했다. 마침 서울올림픽을 1년여 앞둔 시점이라 ‘코리아’는 자연스럽게 서울올림픽과 한국을 홍보하는 음악으로 자리잡게 된다.
“태양이 달콤한 감정을 불태우네요 (중략) 멀리 있는 나의 남자친구여/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바다는 넓지만 우린 그 위에 다리를 놓고 있지요/한국에 태양이 뜰 때/미국의 태양은 지지요/한국에 태양이 뜰 때/게임은 영원하지요···”
전주 부분이 아리랑 선율로 되어 있는 경쾌한 디스코풍의 이 노래는 이후 코리아나의 ’Hand in Hand‘와 함께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한국을 알리는 시그널 송으로 전파를 탔으나 정작 서울올림픽 주제가는 되지 못했다.
“하늘 높이 솟는 불/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이제 모두 다 일어나/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나서자/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손잡고.”
1988년 1월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탈리아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에 의뢰해 만들어진 ‘손에 손잡고’가 주제가로 결정됐으며,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그룹 코리아나가 주제가를 부르게 됐다고 발표했다. ‘손에 손잡고’는 아레나록의 요소를 간직해 장엄함을 풍기면서 세련미가 있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북한, 쿠바 등 5개국을 제외하고 160개국이 모두 참가한 동서화합의 축제를 표현하는 데는 연인들의 러브송보다 인류애를 담은 ‘손에 손잡고’가 적합했다.
전성철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은 최근 칼럼에서 한국 정치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는 이른바 진보 정권이 실정(失政)을 거듭해도 임기 반환점을 지난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와 여당의 총체적 정책 실패에도 보수 야당의 인기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핵 이후 정국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였다는 이른바 ‘조국 대전(大戰)’을 거치고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히려 반등했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반짝 상승하는가 싶더니 ‘셀프 시상’에 박찬주 대장 영입 논란을 거치면서 이전의 지지율로 복귀했다. 황교안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으로도 지지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이중적 미스터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성철 회장의 설명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국민이 한쪽으로부터는 ‘영혼’을 느끼고 있고, 다른 쪽으로부터는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여당은 집권 이래로 ‘더불어 잘 살자’는 진보의 이념과 공평과 평등이란 가치의 냄새를 일관되게 풍겨온 반면, 야당은 보수적 가치의 냄새를 거의 풍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가치의 냄새’가 그 모든 정책 실패에도 진보를 콘크리트처럼 뭉치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필자는 마케팅 전략의 차이가 이 이중적 수수께끼를 푸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레토릭과 정치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던 586 좌파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 마케팅 전략으로 민심을 광장으로 끌어내 촛불의 도움으로 권좌에 올랐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온갖 미사여구는 좌파의 독보적 자산이었다. ‘사람이 먼저다’로부터 시작해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 ‘평범한 사람들이 정의로운 국가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등의 레토릭으로 지지세력은 물론,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좌파정권의 실제 정책 성적표는 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친노조 정책, 보편적 복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같은 사회경제 정책은 청년실업률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 중소기업들의 줄도산과 해외 탈출 러시를 불러왔다. 그뿐인가. 좌파정권이 추구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어떤 공산국가도 실현하지 못한 결과의 평등, 경제적 평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각 가정의 가장과 기업 CEO, 국정책임자의 최고 덕목은 ‘성과의 실현’이다. 가장은 돈을 벌어야 하고, 최고경영자는 이익을 내야 하며, 국정책임자는 국민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국정책임자는 성과 말고도 추가로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영혼의 냄새만 풍기고 성과 없이 국민들에게 헛된 희망만 심어주는 ‘신기루 마케팅’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보수야당은 어떠한가? 보수의 냄새를 풍기기는커녕, 아예 마케팅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정권을 빼앗긴 지난 2년 반 내내 보수 야당은 정부 여당의 정책에 반대만 하는 듯한 인상을 남겨왔을 뿐, 보수의 이념과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과연 보수의 이념은 무엇인가. 전성철 회장은 신작 ‘보수의 영혼’에서 보수의 영혼은 곧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치’라고 단언한다. 국민에게 최대한 많은 자유를 주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선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보수의 가장 핵심적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필자는 “좋은 나라는 국민에게 다양한 선택을 주는 나라다. 선택의 다양성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자유와 선택’ 마케팅이라고 본다. ‘자유와 선택’ 마케팅의 핵심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기도 한, ‘준법영역 내에서 자기만족과 개성의 극대화’를 염두에 두고 정치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은 자유롭게 다양한 선택지가운데 한가지를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기준은 각자의 몫,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31년 전 서울올림픽의 주제가는 인류애에 호소하는 ‘손에 손잡고’였지만 만일 지금 올림픽이 열린다면 연인 간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 한국과 올림픽을 홍보하는 ‘코리아’로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손에 손잡고’가 정부가 지정한 작곡가에게 의뢰해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된 주제가였다면, ‘코리아’는 헝가리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맺어진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자발적으로 만든 러브송이었기에 말이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

[사진=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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