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위령제' 두나라가 합창하다 ..헝가리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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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논설고문
입력 2019-11-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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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닮은꼴 형제같은 나라

[사진=한헝가리친선협회]

 

[사진=김세원 논설고문]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야경[사진=김세원논설고문]

부다페스트= 김세원 논설고문

11월 6일 아침 4박 6일 동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하기 위해 LOT폴란드 항공의 보잉787 드림라이너에 올랐다. 9월 하순부터 월·수·토 주 3회 인천~부다페스트 직항 운항을 시작한 부다페스트행 LOT폴란드 항공의 기내는 완전히 만석이었다. 헝가리 외교부가 한국과 헝가리 수교 3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한·헝가리친선협회 회원들을 초청했다.

헝가리가 공산권국가로서는 가장 먼저 서울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되어 공산권국가 최초로 한국과 수교한 역사적 사건을 보도했던 기자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냉전이 한창이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 등 서방 60여개 국가들이 불참했고, 1984년 LA올림픽은 소련과 동유럽 18개 국가가 불참하는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서울올림픽은 160개국 1만3000여 선수단이 참가하여 이념의 벽을 넘어 동서 양 진영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올림픽 때 시각 장애를 딛고 개인 혼영 400m에서 우승하여 36년 만에 헝가리에 수영 금메달을 안겨주고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토마시 다르니 선수를 인터뷰하고 외무부와 통일원을 출입하며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를 보도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9년 2월 1일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공산권국가인 헝가리와 수교했고, 유고슬라비아·구소련·불가리아 등 동구권 국가들의 무역사무소가 잇따라 설치됐으며, 11월에는 폴란드와 수교했다. 헝가리와의 수교를 기폭제로, 체코·소련·베트남·라오스·중국 등 공산권 38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전방위 외교시대를 열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최규식 주헝가리 한국대사의 만찬 초대를 받아 한국대사관저를 방문했다. 이 건물은 1988년 수교 교섭 당시 박철언 한국 측 대표와 헝가리 대표가 비밀 협상을 가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만찬 석상에서 박철언 전 장관은 “북방정책은 북한의 위협과 4강에 둘러싸인 약소국이 최초로 펼친 자주외교였으며 헝가리와의 수교는 첫째 성공사례였다”고 회고했다. 헝가리를 선택한 이유는 “헝가리 민족이 아시아계 마자르족이라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고 당시 동구권에서 개혁·개방 선두주자였으며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으로부터 가장 독립적인 위치에 있어서였다”고 말했다.

최 대사는 “1989년 수교 이후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 오다 최근 3년 동안 한국 기업의 헝가리 진출이 급속히 늘어나 2016년만 해도 60여개였던 헝가리 진출 한국 기업이 2018년 상반기에는 114개로 늘어나 독일을 제치고 대 헝가리 투자 총액 1위 국가로 등극했다”고 밝혔다.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의 진출이 부품 공급회사들의 2차, 3차 진출로 연결돼 현재는 13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드라마 ‘대장금’을 국영방송을 통해 방영해 시작된 한류 붐이 현지인들로 이뤄진 무궁화 전통무용단·바둑동호회·한글서예클럽 등으로 확산돼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한국영화제의 유료관객 점유율은 80%가 넘으며, 최근에는 K뷰티 메이크업이 헝가리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7일 오전 헝가리 외교통상부 산하 외교통상연구소를 방문해 MOU 협약식을 갖고 상호협력과 경제사절단 교환방문 추진 등을 논의했다. 노재헌 한·헝가리 친선협회 회장은 “지난 30년간 다져진 양국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오늘 MOU 체결을 통해 앞으로 민간 외교 차원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니메트 졸트 외교위원장과 환담했다. 국회의사당은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영국의 웨스트민스터궁을 모델로 1902년 다뉴브 강변에 건립된 건물로, 유럽에서 둘째로 큰 의회 건물이다. 건물 지붕에 역대 왕, 전쟁영웅 등 88명의 동상을 세우고 내부의 중앙 로비에도 민족 지도자 16명의 동상을 세워 민족정신을 표현했다. 총리집무실, 본회의장, 국회도서관 등 40㎏의 금과 카펫으로 꾸며진 691개의 홀과 365개의 첨탑이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루마니아까지 아울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1867~1918)의 영화를 보여준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슈트반 1세가 교황 실베스테르 2세로부터 선물받아 서기 1000년 대관식 때 썼다는 십자가 황금왕관이 건물 1층에 영구 전시 중이다. 이 왕관은 지금까지도 헝가리의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다.

니메트 위원장은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헝가리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성을 앞에, 이름을 뒤에 쓰고 건물 주소를 표기할 때 국명에서 시작해 점차 작은 행정단위 순으로 기재하며 날짜를 표시할 때도 연·월·일·시의 순으로 쓴다”고 설명했다. 또 “헝가리의 민속음악도 5음계이고 손기술이 뛰어나 자수와 도자기가 발달했으며 교육열이 뜨거운 것도 한국사람들과 비슷하다”며 한국과 헝가리의 민족적·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했다.

헝가리는 인구수 대비 가장 많은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12명이 물리·화학·의학 같은 과학분야에서 수상했다. 비타민C를 파프리카에서 대량 추출하는 데 성공해 1937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토 센트죄르지라든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폰 노이만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다.
8일 친선협회 일행을 외교통상부 청사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안드라스 바라니 외교통상부 차관보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특별한 교육시스템이나 탈무드 같은 전래 교육법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헝가리는 약 1200년 전 우랄산맥 남동쪽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마자르족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인들과 생활하면서 외모는 서구화됐지만 아시아가 기원인 만큼 서구와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과학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안드라스 차관보는 메뉴를 중심으로 헝가리의 음식 문화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소고기와 감자를 주재료로 양파와 파프리카를 넣어 매콤하게 끓인 헝가리 대표음식 굴라시 스튜를 한국타이어 공장 근처의 한국식당에 들러 자주 먹는다는 한국의 육개장과 비교했다. 디저트는 케이크 명인 제르보가 하이든이 악장으로 30년간 봉직했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헌정한 초콜릿 케이크에서 유래한 ‘에스테르하지 토르타’, 아이스와인의 일종인 토카이 ‘aszu’6가 디저트 와인으로 곁들여졌다. 커피잔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왕실에 납품되었던 헤렌드 도자기였다. 안드라스 차관보는 40대 초반, 페테르 씨야르토 외교장관은 30대후반, 마저르 르반트 차관은 30대 초반으로 민주화이후 내각에 입성한 고위관료들은 젊은피 일색이다. 

9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영웅광장’에 임시로 마련한 가설무대에서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고 유람선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헝가리 친선협회 공연단의 공연이 열렸다. 박철언 전 장관의 추모시를 소설 ‘목민심서’의 황인경 작가가 낭독하고, 박소은 소프라노의 '오 솔레미오', 김영석 탤런트의 '지도아리랑', 정효민교수의 태평무, 이동숙교수의 살풀이춤 등이 이어졌으며, 공연을 보러온 헝가리인과 한국교민들이 다 함께 부르는 ‘아리랑’으로 행사는 막을 내렸다.

한국보다 약간 적은 면적에 인구는 한국의 5분의1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헝가리는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제정한 조셉 퓰리처,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사를 설립한 아돌프 주코르, 폭스영화사를 설립한 윌리엄 폭스가 모두 헝가리 이민자 출신이다. 돌아오는 길, 헝가리인의 원류인 마자르족이 7세기경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던 퉁구스계 말갈족이며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을 계기로 헝가리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통역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다페스트= 김세원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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