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못 잡나, 안 잡나…文정부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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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부국장
입력 2019-12-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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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동본 부국장]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진보진영으로부터 공격받기 시작했다.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와 사람이 그 공격에 앞장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현 정권에 땅값 역대 최고 상승 정권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것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함께 했다.
정동영 대표는 한 때 현 여권 주요 인사들과 같은 정당의 동지 관계였다.

경실련과 정동영 대표 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꼬집는데 가세했다.
“정부가 집값 잡을 방법이 있는데 안 잡고 있다”며 보유세 강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 시장은 3선 중 현 여권 소속으로 재선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김수현 전 정책실장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김 전 실장이 사석에서 현 부동산 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진보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해온 장본인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의 반환점을 겨우 돈 시점이다. 벌써부터 정권 내부 균열 또는 지지층 이탈 조짐을 보이는 신호다.
경제 정책, 특히 재산목록 1호인 집 관련 정책 불신 또는 실패가 직접 계기였다.
먹고 사는 문제, 개인 자산 불리는 문제엔 이념도, 진영도, 여야도 따로 없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12월 첫 주 내놓은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 조사 결과를 보자.
서울 아파트 값은 23주 연속 상승세다. 상승 폭은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회심의 카드라며 내놓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도 소용없다.
오히려 상한제 시행을 비웃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줄줄이 신고가를 다시 쓰고 있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문재인 정부의 2년 6개월 임기 동안 무려 44.3%나 올랐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이 각종 규제에도 거침 없는 상승세를 보일 거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연간 단위 기준의 최장기 상승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소식이다.

집값이 너무 오르니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한 '국민과의 대화' 때 확인됐다.
대통령 앞에서 부동산 정책 관련 참석자들의 한탄과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집 가진 사람은 노심초사다.
서로를 비교하며 시기하는 위화감,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 우려에 괴로워한다.
집 없는 사람도 밤잠을 설친다.
앞으로 집을 장만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졌고 대책엔 알맹이가 없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 들어 대부분 기간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부동산에 대해선 자신 있다"고 장담했다.
국민의 불만이 높고 각종 수치가 명확한데도 굳이 외면한 것이다. 집값 안정과 관련해선 "여러 방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집값 잡을 뾰족한 방법이 있는데 왜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있었냐는 지적이 당연히 나온다.
정말 집값 상승의 고리를 끊을 날카로운 칼이 있긴 한 건가란 의구심만 불러왔다.
문 대통령은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시장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다짐할 순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두 번이다.
말만 가지고 집값 잡혔다면 진작에 잡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15년 전 이보다 훨씬 세게 말했다.
"부동산 투기 결코 용납 않을 것",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 등 잇단 '말 폭탄'으로 처음엔 기대감을 높였다.
심지어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사서 기분 좋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웃을지 의문"이라고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과연 집값이 잡혔나.

이러니 정부의 거미줄 규제에도 약발은 안 받고 내성만 기른 것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은 백약이 무효란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사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부동산 대책이 무려 17차례나 쏟아졌다.
그럼에도 결과를 보면 변죽만 울리는 백화점식 땜질 정책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집값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관측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을 너무 세게 죄어 집값 떨어지면 여권에서 곡소리 난다는 이유에서다.
선거 때 표 떨어진다는 소리 만큼 정치 권력층에 민감한 게 없다.

거시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정부가 집값 잡는데 운신의 폭을 좁힌다.
효과조차 불투명한 저금리 기조 유지에 부동산 시장 말고 갈 곳 없어 넘쳐나는 유동성,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가슴 졸이게 만드는 1600조원 규모 가계부채 등등.

이런 한계에도 길은 있다.
정부 규제의 타깃은 폭넓은 수요층을 가진 강남권 등 고가주택에 맞춰져야 한다.
핀셋 규제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분양가 상한제가 아니라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서울 일반 아파트 수요는 3기 신도시 조성이나 도심 콤팩트 개발 등으로 흡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가 아파트는 대체 불가능하다.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 없다.
고가 아파트로부터 전이되는 집값 상승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방법은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함께 수요 억제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 수요 억제책 대상은 신규 분양 고가 아파트다.
이 고가 아파트를 로또 분양받는 사람들의 과도한 수익 차단 또는 환수다.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로또 분양 수익의 차단 방법을 내놨다.
분양받은 아파트를 5~10년 전매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방법은 경기 판교신도시에서 실패했다.
공공 택지에서 공급돼 10년 전매 제한된 판교 아파트 값은 10년간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런 전매제한 만으로 강남권 신규 분양 아파트의 매력과 인기가 사라질까.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돼 청약 당첨만 돼도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두 배 분양 차익을 얻는다.
막대한 돈이 빤히 보이는데 10년쯤이야 팔지 않고 기다리는 게 대수겠는가.

로또 분양 수익 차단 또는 환수는 재건축 사업자와 형평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재건축 사업자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 등이 적용된다. 재건축 사업자들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일부 이해할만 하다.
그들 주장대로 재건축 사업자 수익은 줄이면서 로또 당첨 수분양자엔 불로소득을 허용한다.
자신들의 수익 일부를 빼앗아 청약 당첨자에 로또 혜택을 준다는 이들 주장도 이에 근거한다.

정권이 표 계산만 하다간 더 큰 화(禍)를 부른다.
정권 지지층 제방 붕괴가 본격화하기 전에 부동산 관련 특단의 충격요법이 나와야 한다.
자꾸 구두선이나 미봉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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