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눈]'불후의명곡' 전설가수 차중락은, 보디빌더에 미스터코리아였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11-16 23:35
# 엘비스가 왔다면 울고갔을 노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16일 KBS2TV ‘불후의 명곡’은 한국 가요계의 전설 차중락과 배호의 노래를 불러 깊어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돋웠다. 배호의 경우는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나 차중락은 요즘 세대에겐 아주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이 가수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곡 하나로도 가요계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애니씽 댓츠 파로브 유(당신의 모든 자취들)'를 번안한 곡이다.

서울 출신인 가수 차중락은 체육인 집안이었다. 아버지가 보성전문학교 마라톤선수, 어머니는 경성여상의 단거리선수였다. 그리고 시인 김수영은 그의 이종사촌이었다. 공교롭게도 차중락과 김수영은 모두 1968년에 타계한다. 

차중락도 부모의 육상 체질을 타고 났다. 고교(서울 경복고) 시절 육상선수로 활약했고, 대학(한양공대 연극영화과) 시절엔 보디빌더로 당시 미스터코리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체육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했던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소년이었고 포스터 그림을 워낙 잘 그려 나중에 화가가 되겠다는 주위의 칭찬도 들었다. 
 

[가수 차중락]



# 11월에 애인 잃고 히트한 노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그랬던 그가, 뜻밖에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노래를 들은 주위의 칭찬 때문이었다. 그는 그룹 '키보이스' 멤버였던 차도균(그의 사촌 형이었다)을 따라 1963년에 그룹에 합류한다.  미8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는데, 이미지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1966년 스물 네살의 가을, 그는 이화여대 메이퀸이었던 애인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일을 겪는다. 그해 11월10일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그에게 운명이었을까. 정확하게 2년뒤인 11월10일에 서울의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 그는 망우동 공원묘지에 묻혀 있다. 

시인 조병화는 차중락의 묘비에 '낙엽의 뜻'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 없고
나무닢 때마다 떨어짐에 소리 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 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 없다
아, 이 세상 사는 자자, 죽는 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 없다

                    조병화의 '낙엽의 뜻' 


1969년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된 것도,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때문이다. 제1회 낙엽상은 나훈아가 받았다. 1970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란 영화도 개봉됐다.
 

['불후의명곡'에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있는 바버렛츠.]



'불후의 명곡'에서는 2인조 보컬그룹인 바버렛츠가 이 노래를 불렀다. 복고풍의 감성을 살려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이 그룹('시간여행 복고풍 걸그룹'이라 자칭한다)의 장기를 한껏 살린 무대를 보여줬다. 물론 차중락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격조있고 아름다운 맛이다. 이제 차중락의 이 노래를 잠깐 음미하자.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빰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이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 고뇌에도 품격이 있다는 걸 보여준 명곡

스물 네살의 실연에서 불렀던 노래. 스물 여섯 너무 젊은 나이로 무대 위에서 쓰러질 때까지 불렀던 이 노래는 늦가을을 더욱 스산하게 만드는 젊음의 절절한 비창이다. 방송의 한 음악진행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원곡보다 차중락의 이 노래가 훨씬 뛰어나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아마 엘비스가 와서 이 노래를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잘 살려낸 노래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차중락의 윤기있는 목소리가 쇠로 된 긴 파이프 속의 공명을 탄 듯 서늘하게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사랑에 빠진 심장과 노랫말의 열기가 지지직거리며 애타게 끓어오른다. 뚝뚝 끊기는 듯한 술회가 그러나 끊기지 않고 가을 낙엽의 추락하는 동선을 타고 흐르는 듯 하다. 바람이 슬쩍 불어 날아오르는 나뭇잎처럼 때로 가볍게, 그러나 다시 곤두박질치는 나뭇잎처럼 때로 무겁게 노래는 방백처럼, 아니 자기에게 던지는 웅변처럼 비장하고 애절하게 터져서 구른다.

낙엽따라 굴러가는, 이 노래를 쓸쓸한 마음으로 따라 부르며 걷노라면 지나간 사랑은 '어찌하오 어찌하오'라는 고풍의 탄식에 머무르며 한 계절의 비감을 돋운다. 혼자 걷는 조용한 날 한번 불러보시라. 슬픔에도 온기가 인다. 격정과 고뇌에도 품격이 느껴지는, 그런 노래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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