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홍콩 대체재 선전, '선진시민 만들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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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10-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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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첫 전자담배 흡연 단속 등 다양한 시도

  • 홍콩 넘으려면 글로벌 수준 시민의식 필요

  • 규제·감시기술로는 근본적 인식전환 어려워

지난 14일 광둥성 선전에서 중국 최초로 전자담배 흡연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는 광경. [사진=인민일보]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0월 광둥성 선전으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파란색 전기차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자 안전벨트를 매란다. 택시 기사는 뒷좌석에 앉은 동행 2명이 모두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 출발하지 않았다.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을 시행 중이라 뒷좌석도 매지 않으면 적발 대상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한국도 시행 중이지만 일상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정책이다.

선전은 중국 최초로 개혁·개방이 시작된 데다 상주 인구 연령도 가장 낮은 젊은 도시라 새로운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

이번에는 고강도 흡연 규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모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게 골자로, '흡연 천국'인 중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내용이다.

운전 중 휴대폰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도시답게 그에 걸맞은 시민 의식을 갖출 때가 됐다는 것이다.

1978년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이후 중국은 경제·사회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선전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해 왔다. 선전에서 우선적으로 시행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다른 지역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최근 들어 선전을 상대로 새롭게 시도 중인 프로젝트명은 '선진 시민 만들기'다.

특히 중국이 선전을 홍콩을 뛰어넘는 국제도시로 키우겠다고 공언한 만큼 선진국에 버금가는 시민 의식 배양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엿보인다.

◆중국 첫 전자담배 흡연 단속

지난 14일 오후 선전시 난산(南山)구 첨단기술산업원 인근의 버스 정류장에서 구청 단속반원이 흡연 중이던 6명의 남성에게 벌금 고지서를 발급했다.

단속된 모두가 억울해하는 가운데 한 남성이 구청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전자담배까지 금연의 범위에 속하는지 몰랐다"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새로 시행된 흡연 규제에 따르면 전자담배도 단속 대상이다. 결국 그는 현장에서 50위안(약 8300원)의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전자담배 흡연자에게 최초로 부과된 벌금이다. 시 당국은 지역 방송사 등을 동원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공산당 광둥성 위원회의 기관지인 남방일보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으로 전자담배 흡연자를 처벌하면서 모든 형태의 간접 흡연 피해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선전의 결심'을 과시했다"고 선전했다.

선전시는 국경절(중국의 건국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부터 개정된 '흡연 규제 조례' 시행에 나섰다.

전자담배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 게 가장 큰 변화다. 금연 구역도 확대됐다. 실내 사무 공간과 실내 공공장소, 대중 교통수단 내 흡연이 금지됐다.

또 버스 터미널 및 정류장, 기차역, 공항 등의 경우 출입구 밖 5m 이내에서 흡연하면 단속 대상이다.

학교·공원·병원 내와 관광지·체육관 출입구 밖 대기 공간 및 매표소 인근에서의 흡연도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뜻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잠깐 정차할 때나 공항 출입구를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담배를 꺼내 무는 게 습관화돼 있던 중국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벌금을 징수하는 방식도 훨씬 엄격해졌다. 기존에는 흡연자가 시설 관리자의 제지나 설득에 응하지 않을 때 벌금을 매길 수 있었지만 새 조례는 발견 즉시 벌금 고지서를 발급할 수 있다.

금연 장소에서 흡연을 하면 현장에서 50위안을 징수하고, 이를 거부하면 200위안을 내야 한다. 법 집행을 방해할 경우 500위안으로 더 오른다.

흡연이 이뤄진 시설이나 업소에는 경고 조치를 하고, 이후 같은 상황이 재발하면 최고 3만 위안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선전은 지난해부터 '담배 없는 도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강력한 규제를 통해 내년까지 흡연율(15세 이상 기준)을 20% 미만으로 낮추는 게 목표다.

지난해 선전의 흡연율은 22.3%로 중국 전체 평균(26.6%)보다 4% 포인트 이상 낮다.

◆선전에 글로벌 매너 정착 시도

중국은 지난 8월 선전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까지 경제력과 질적 발전 면에서 세계 선두권에 서고, 2035년에는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모범 사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장기적으로 선전을 홍콩의 대체재로 삼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선전이 홍콩을 뛰어넘으려면 경제적 측면의 경쟁 우위 외에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매너를 갖출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선전은 상주 인구 평균 연령이 33세에 불과하다.

베이징 등 오래된 도시와 비교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무단 횡단을 일삼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등 시민의식의 부재로 느껴질 만한 중국인 특유의 생활 습관도 덜한 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기에 용이하다.

다만 강압적인 방식만으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중도덕 등에 대한 자발적인 의식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감시기술로 시민의식 제고 '모순적'

선전시는 흡연 규제와 더불어 운전 중 휴대폰을 조작하는 행위도 적극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선전시 공안국은 다음달 1일부터 운전 중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 300위안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종전에는 휴대폰 및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조작할 때만 단속했지만, 앞으로는 휴대폰이 고정된 상태에서 조작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선전 시내 택시 기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택시의 경우 영수증 발행과 내비게이션 조작, 이어폰을 사용한 전화 통화 등은 정차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선전시 공안국 관계자는 "지난해 선전시 내 교통사고 사망자 중 29.7%가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변을 당했다"고 지적한 뒤 "직접 단속, 신고 보상제와 함께 무인 단속 시스템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 소식을 접한 선전의 한 소식통은 "공안이 직접 의지를 내비친 만큼 단속 건수가 급증할 것 같다"며 "중국의 감시 카메라 기술력과 선전 내 카메라 밀도를 감안하면 단속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영국의 IT 컨설팅 업체 컴패리테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전은 인구 1000명당 폐쇄회로(CC)TV 설치 대수가 159.09대로 충칭(168.03대)에 이어 중국에서 둘째로 많았다.

전 세계에서 감시 카메라가 가장 많은 도시 10곳 중 8곳이 중국 도시다. 선전의 CCTV 대수는 홍콩(6.71대)의 24배에 달한다.

중국은 2억대의 CCTV를 운용하는 감시 사회다. 일각에서는 내년까지 중국 내 CCTV가 3억대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안면인식과 인공지능(AI)이 결합된 감시 기술로 시민의식 제고를 도모하는 건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 등 상당수 대도시에는 무단 횡단이나 불법 주차를 단속하기 위한 안면인식 단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CCTV가 무단 횡단하는 시민을 포착해 대형 스크린에 얼굴을 띄우는 식이다. 선전에서도 CCTV로 무단 횡단자를 단속해 벌금 500위안을 부과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쓰레기 분리 수거 의무화를 시작한 상하이는 무단 투기를 단속하는 데 감시 카메라를 활용한다.

지난해 선전에서 만난 직장인 우젠웨이(吳建威)씨는 "IT 도시인 선전은 일상생활 중 안면인식 시스템을 흔하게 접할 수 있어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며 "법규 위반이나 범죄 발생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안면인식 장비가 설치된 아파트에 살고, CCTV로 감시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며, 안면인식 기술로 신분 확인 뒤 대출 심사를 진행하는 모바일 소액 대출 앱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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