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 베네수엘라.쿠바 '두 토끼몰이' ..왜 안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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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10-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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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북한에서 생존법 찾나

 

[이수완 논설위원]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반미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경제 봉쇄를 강화하고 군부 쿠데타까지 획책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자 쿠바에 대한 고강도 압박에 나서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이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쿠바라는 그의 든든한 '뒷배' 가 버티고 있다는 미국의 판단 때문이다. 쿠바와 오랜 적대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의 길로 나섰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은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통한 미국의 뒷마당(backyard) 관리이다. 중남미의 반미 정권을 와해시키고 더 나아가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도 축소시킨다는 목표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략은 통할까?

중남미의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쿠바 사회주의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20년 전 우고 차베스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간의 관계는 급발전하기 시작했다. 차베스는 원유생산으로 벌어들인 부(富)를 가난한 사람에게 배분하는 퍼주기식 정책을 추진하며 '빈민의 영웅'으로 불렸다. 1999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당시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사회주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쿠바에 원유 지원을 약속한다. 대신 수만 명의 의료진과 교사, 스포츠 지도자를 쿠바로부터 받아들여 이들이 베네수엘라 빈민가나 농촌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파견된 인력 중 상당수는 차베스 정권을 지키는 정보요원이나 군(軍) 자문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양국 간의 교류 협력은 차베스가 사망하고 그의 후계자인 마두로 정권이 들어선 2013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베네수엘라가 겪은 경제위기가 가히 재앙 수준으로 치닫게 되자 쿠바의 경제도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쿠바는 자국 원유 수요의 2/3 정도를 베네수엘라로부터 충당해왔지만, 최근 미국의 봉쇄 조치로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 공급이 막히면서 쿠바의 에너지 난은 극심해지고 있다.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기 위한 차량들로 긴 줄이 서있고, 공장 가동, 학교 수업, 대중 교통 서비스 분야 등 여러 분야에서 연료 부족 사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생산을 감축하거나 중단하는 공장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빵을 굽기 위해 전기오븐 대신 장작불이 사용되고 있다.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이 대폭 줄자 마차가 거리마다 등장하고 트랙터 대신 소가 농사일에 투입되는 모습은 이젠 흔한 풍경이다. 지금 쿠바인들은 '특별한 시기' (The Special Period)로 불리던 1991~1995년의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고 있다. 1959년 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들어선 이후 쿠바 경제는 원유와 농약 등 소련의 원조를 바탕으로 작동했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급속히 붕괴된다. 심각한 연료 부족으로 차량 운행은 거의 중단되고 시민들은 자전거나 도보로 출퇴근을 했다. 식량부족으로 많은 국민들은 영양실조와 질병에 걸렸고 길거리 고양이와 개까지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또 경제난을 피해 수만 명의 쿠바인이 조악한 뗏목을 타고 미국으로 대거 건너 가면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쿠바의 '특별한 시기'는 1990년대 식량이 부족해 수많은 아사자를 냈던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도 일맥 상통한다. 

미국은 지난 5월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내세워 군부 쿠데타를 시도해 정권 탈취에 나섰지만 수포로 돌아가자, 그 원인으로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군부의 충성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는 2만 여명의 쿠바 '안보요원'의 보이지 않는 활약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쿠바는 베네수엘라에 군대를 파견한 적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지만,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쿠바 정보 요원들이 폭력과 인권 유린 사태를 조장하고 베네수엘라 군부 지도자들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미국은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추진해온 화해 정책을 취소하고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원을 이유로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왔다. 지난 18일 미 상무부는 자국 기업들이 쿠바 국영 항공사와 맺은 항공기 임대차 계약을 취소하고, 앞으로 추가계획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쿠바의 돈줄인 관광업을 겨냥한 조치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미국과 쿠바를 오가는 크루즈선 운항도 중단했고, 개인과 단체여행 조건도 강화했다. 미국은 지난 9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와 자녀 4명 등에 대해 자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또 베네수엘라 석유를 쿠바로 운송한 파나마 등의 해운업체 4곳을 제재했다. 마두로 정권에 대한 일련의 제재에 이어 쿠바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두 정권을 함께 고사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의 '자금줄'인 국영 석유회사 PDVSA에 제재를 가했다. 이로 인해 미국 회사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더라도 돈을 송금할 수 없게 되었다. 또 PDVSA의 미국 자회사인 CITGO의 경우에는 모회사에 자금 송금이 불가능하게 됐다. 사실상 오일 금수조치(엠바고)이다. 또 4월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원유를 수송하는 쿠바의 국영회사 쿠바메탈레스(Cubanetales)도 제재에 포함되었다. 미국발 제재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외국 국적의 선박을 통해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 공급을 받는 등 제재망을 피해오고 있으나 심각한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에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전면금수조치(엠바고)'를 단행했다. 미국과 배네수엘라의 모든 무역거래가 중단되고 미국내 베네수엘라 정부의 자산이 동결되었다.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도 포함되어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에너지 분야 합작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기업도 겨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와 자녀 4명 등에 대해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가 단행됐다. 또 베네수엘라 석유를 쿠바로 운송한 파나마 등의 해운업체 4곳을 제재했다.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연결고리를 끊어 두 정권을 함께 고사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49년간 국가평의회장(대통령 격)을 맡던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혁명 동지이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쿠바는 국가주도형 경제를 민간으로 과감히 이양하기 시작했다. 현재 쿠바 근로자의 13%는 민영 식당, 렌터카, 숙박업소 등 주로 관광업과 관련된 민간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다. 미국과 쿠바는 오바마 대통령의 화해 정책에 힘입어 2015년 국교를 회복했다. 그러나 '오바마 업적 지우기'에 나선 트럼프는 양국 관계를 국교 정상화 이전으로 되돌리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 사는 가족을 위해 달러를 송금하는 것도 분기당 최대 1000달러(약 120만원)로 제한시켰다. 이러한 고강도 제재는 마두로 정권에 대한 쿠바의 지원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의도다. 또 내년 대선에서 경합주인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많은 쿠바계 유권자를 겨냥한 것이다. 쿠바계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쿠바 공산정권을 피해 망명을 온 이들이다. 

지난 8월 마두로 정권에 대한 전면금수조치를 발표하면서 당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한 미국의 동시 압박이 두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장담했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1962년부터 실시된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지만 쿠바의 공산 정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쿠바 정부는 현재 미국의 베네수엘라 금수조치로 인한 에너지와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가격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에 국민들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미구엘 디아즈-카넬 쿠바 대통령은 최근 쿠바를 방문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를 논의했다. 트럼프의 압박은 쿠바가 러시아와 군사와 안보 에너지 농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제재 압박 전략은 '허리띠 졸라매기'가 일상화 된 쿠바에 별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오히려 반미 감정만 더 부추기고 중남미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노리는 러시아와 중국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정치 불안과 경제파탄으로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수백만명이 새로운 삶을 위해 고국을 탈출했다. 유엔의 예측으로 올해 말까지 530만명 규모의 '국민 엑소더스'가 우려되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그냥 남의 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제재강화는 마두로 정권의 퇴진을 앞당기기보다는 베네수엘라 난민의 숫자만 더욱 늘어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국제사회의 퇴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의 '유훈통치'를 이어가는 마두로 대통령은 끈질기게 자리를 버티고 있다.  미국의 온갖 공작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버팀목인 군부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차베스와 달리 군 출신이 아닌 마두로는 집권 후 정권 유지를 위해 군을 돈으로 회유해 사조직화 했다. 또 군을 일사불란한 하나의 조직이 아닌 여러 조각으로 갈라 놓아 군과 장성들이 단결된 행동에 나서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임시 대통령으로 내세운 과이도 국회의장이 군을 장악해 정권 교체를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설상 과이도 국회의장이 반정부 투쟁이나 미국 등 외세 개입을 통해 집권하더라도, 군 조직을 정상화하는 과정은 베네수엘라 민주화 과정의 가장 큰 암초임에 틀림없다. 군사 개입 옵션은 일단 접은 듯 하지만 경제 봉쇄 등 최대의 압박을 가해 베네수엘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반응은 갈수록 미온적이다. 내년 대통령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가 야당 후보로부터 베네수엘라 문제가 또 하나의 외교정책 실패 케이스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외적으로 마두로 정권은 미국의 압박과 고사작전에 맞서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전통적인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밀착 관계도 눈에 띈다. 지난 8월에는 평양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이 개관됐다. 9월에는 마두로 정권의 2인자인 디오스다도 카베오 제헌의회 의장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마두로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의 한 야권인사는 마두로가 북한에 망명을 타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서방의 지속적인 고립 전략과 경제 제재 속에서도 북한의 독재 정권은 3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다. 마두로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할 것이다.


 

쿠바 대통령에 선출된 디아스카넬 의장 (아바나 로이터=연합뉴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0일(현지시간) 쿠바 국회인 전국인민권력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의원들의 축하 박수를 받고 있다. 쿠바는 1976년 이후 이날 처음으로 국가 원수로서의 대통령직을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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