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대통령은 헌법수호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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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입력 2019-09-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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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강의시간에 머리에 헤어롤을 한 학우를 보면서 문득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박전대통령 탄핵선고를 하던 날 당시 이정미재판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의 막중한 책임감에 압도된 탓일까 이재판관이 머리에 헤어롤을 한 채로 출근하는 모습은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작은 실수였지만 그 자체로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이재판관은 주심재판관으로서 탄핵에 해당하는 사유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당시 피청구인인 박대통령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인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였고,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하여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정미재판관이 낭독한 결정문 중에서 아직도 필자의 가슴을 울리는 부분은 “박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며, 이것이 어느 다른 사유보다도 무겁게 다가왔다. 과연 대통령의 헌법수호의 책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헌법상 다양한 권리를 수호하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같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라는 것이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지루해 하면 필자가 농담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규범질서에서 최상위에 있는 것이 헌법으로 알고 있지만 헌법위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뭘까요? 그것은 바로 편법입니다” 학생들은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헌법위에 편법이 있다는 농담을 조국후보자가 이렇게도 리얼하게 현실로 바꾸어 놓을지 몰랐다. 조국후보자의 위선과 표리부동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조국후보자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극도로 분열되고 서로를 공격하면서 상처는 깊어진다.

그러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조후보자의 적격성을 문제 삼고 있다면 대통령은 헌법수호의 책무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모으기는커녕 서로 분열하고 극한 대립으로 일관하는 싸움을 수수방관 하고 심지어 그 중 한 편을 든다면 대통령이 과연 헌법수호의 의지가 있다고 볼 것인가?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무지한 대중을 선동하는 원리로 조롱당한 적도 있지만 국민의 다수가 원한다면 그것이 곳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수호해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무지한 대중이 결코 아니다.

조국후보자가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랜 동안 고민하고 해법을 찾는데 적임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대통령은 지금이야 말로 검찰개혁을 위한 호기이며,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을 지명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조후보자는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 버렸다. 갈라진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국민적 공감대를 회복하는 것은 누구의 책무인가?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를 접고 대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헌법수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길이다.

조후보자 사태는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념보수와 함께 이념진보가 동시에 몰락하는 우리 헌정사의 매우 극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 합리적 토론에서 밀리면 이념보수는 상대방에게 색깔론을 들이 대며 정권을 유지했지만 박전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통해서 급속하게 궤멸했다. 이념보수의 대척점에는 죽창과 적폐로 무장한 이념진보가 있다. 그러나 조국후보자가 보여준 적나라한 모습을 통해서 이념진보 역시 역사적 퇴조의 과정을 겪고 있다. 혹 그가 법무부장관이 되면 개혁전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그와 이념진보는 패배한 것이다.

국민의 대부분은 이제 합리적 보수와 실용적 진보가 건전한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진영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민복을 우선시 하는 정치지형과 정당, 국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다수가 지배하는 기계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질적으로 고양된 다수의 의사가 관철되는 수준 높은 민주주의 말이다. 문대통령이 이 문제를 직시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헌법수호의 책무를 다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 = 김성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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