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질타하고, 왕이 끌어당겼지만…고노 끝내 '무대응'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19-08-21 17:04
한일 베이징 회담, 성과없이 35분만 종료 중재자 자처한 中, 기존 입장 되풀이한 日 日 지소미아 관심 보였지만…갈등 장기화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열린 양자 회담이 끝난 뒤 회담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베이징 특파원단]


한·일 외교장관의 베이징 담판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렬됐다.

중국이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과거 역사 인식에 대한 한·중 양국과 일본 간의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시한과 일본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시행이 임박한 가운데 접점 찾기에 실패하면서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심한 강경화 "무역보복 배제해야" 공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1일 베이징 외곽 휴양지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와 한·일 별도 회담에 잇따라 임했다.

전날 중국 외교부 측이 마련한 환영 만찬까지 합치면 이틀간 세 차례의 대면 기회가 있었지만 갈등 완화를 위한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애초부터 대화할 의지가 없었다고 보일 정도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된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데 반해 한·일 회담은 35분 만에 끝났다.

서로 준비해 온 말만 하고 나온 두 사람은 별다른 언급 없이 회담장을 떠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은 일본이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데 대해 재차 유감을 표명하고 해당 조치의 철회를 촉구했다"며 "고노 외무상은 자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강제징용 문제와 양국에 거주하는 자국 국민의 안전 등에 대해서도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공세에 나섰다.

강 장관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토대가 된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 환경이 확고히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을 각국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무역 보복 조치를 배제하고 역내 무역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한 일본의 수출 규제 등 경제 보복을 겨냥한 발언이다.

고노 외무상은 "한·중·일 3국은 이웃나라인 만큼 양자 간 관계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있다"는 정도로 맞대응을 자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부터)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3국 외교장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베이징 특파원단]


◆슬쩍 한국 편든 中, 중재자 역할 '글쎄'

이번 회의 주최국인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수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전날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국무위원은 강 장관에게 "갈등이 잘 해결돼야 동북아시아 발전에 좋다"며 "중국이 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3국 외교장관 회의 때는 더욱 구체적인 언급이 나왔다.

왕 국무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한·일 관계의 어려움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3국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진행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친구들은 '이심전심'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장심비심(將心比心·자기 마음을 타인의 마음과 비교하다)'이라는 말이 있다"며 "양국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배려하며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왕 국무위원은 회의 전 기념 촬영 때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의 손을 잡아끌며 서로 가깝게 해주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과거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편을 드는 듯한 표현도 등장했다.

왕 국무위원은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3국 협력의 정치적 기초"라고 강조했고, 강 장관도 "과거 3국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바처럼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반면 고노 외무상은 "미래지향적으로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며 '역사'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중국 측에 중재를 부탁한 적은 없다"면서도 "주최국으로서는 (역사 문제에 대해) 좀 세게 얘기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회담 결렬로 한·일 갈등이 추가로 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 오는 24일까지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소미아 폐기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설 한국의 대응 카드로 거론돼 왔다.

고노 외무상은 강 장관과의 회담 때 지소미아 연장에 대한 한국 측 의견을 묻는 등 관심을 보였지만 갈등 완화를 위한 카드를 내놓지는 않았다.

28일에는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가 실제로 시행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외교 당국 간 대화는 이어지겠지만 수출 규제 당국 간의 대화 복원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라며 "결국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라 갈등이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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