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일본, '갈등의 이웃'과 '체제의 우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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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극동대 교수
입력 2019-07-2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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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아베를 규탄하는 한국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경제보복을 둘러싼 한-일 갈등을 거시적, 구조적으로 본다면 이런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일본은 과연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status quo)를 흔들려고 하는가. 만약 그럴 의도가 있다면 이번 갈등에 대한 성격규정이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현상을 깨서 일본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며, 그런 시도가 동북아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톺아봐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 정도는 아닌 듯하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화가 났다고, 아베 총리가 현상유지체제의 근간인 미-일 안보체제를 걷어차기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일본의 경제보복 위협을 과도하게 해석(인식)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상대로부터의 위협을 과소평가해도 문제지만 과대평가해도 문제다. 예컨대 저쪽은 총을 들고 나서려고 하는데, 이쪽은 그 총을 대포로 인식하고 미사일을 준비하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 갈등은 더 큰 갈등을 낳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대응은 두고두고 실망스럽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반일과 친일로 나눠 갈등의 확대재생산에 불을 붙인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꼭 그렇게 했어야 하나.
국가 간의 갈등에 관한 케네스 왈츠(1924–2013)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저 유명한 ‘분석의 세 수준’(three levels of analysis)을 통해 이를 설명하려고 했다. 전쟁(갈등)은 지도자(개인)가 공격성이 있거나, 국가 내부적으로 경제난이나 정치 불안 같은 게 있거나, 그 국가가 속한 국제체제(international system)에 문제가 있을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인, 국가, 국제체제의 세 수준(관점)에서 갈등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한-일 갈등은 국가 차원에서 발화됐다고 할 수 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보복 결정이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국의 두 지도자가 가세한 형국이 되면서 일본 대 한국, 아베 대 문재인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건 체제(국제체제) 차원이다. 동북아 체제라는 큰 틀에서 보면 기존의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는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중심축이다. 그 축이 흔들리는 건 한 미 일,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중재 요청을 받았음을 밝히면서 언젠가는 관여할 의사를 내비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23일 방한한 볼턴 안보보좌관도 트위터를 통해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우리의 핵심 동맹이자 동반자의 지도자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일 사이에 끼인 미국으로서 대놓고 중재를 말하기 어렵겠지만 갈등이 계속되면 체제 유지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나설 거라는 신호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측의 진보, 보수 똑같이 미국의 중재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거다. 대표적 진보매체인 한 신문도 사설(25일자)에서 “한일 갈등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 역시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에 기반한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에 의한 방공식별구역(KADIZ) 도발도 체제의 관점에서 봐야한다. 그것은 좀 거칠게 말하면 중-러-북한에 의한 북방 삼각체제의 부활을 의미한다. 북방 삼각체제가 한-미-일의 남방 삼각체제의 대응태세(readiness)를 시험해보려고 벌인 기획 도발이다. 중·러의 입장에선 한-일 갈등으로 남방 삼각체제의 취약성이 드러난 지금이 그런 시험 도발을 할 적기였을 것이다. 왜 하필 독도였을까? 독도는 한-일 간 영유권 다툼이 있는 곳이다. 독도의 영공을 도발함으로써 한-일 경제갈등에다 군사갈등까지 안겨줘서 그 반응을 보고 싶었을 게다. 러시아는 영공 침범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지만, 그들 국방부는 24일 “(이번 비행이) 러-중의 첫 번째 연합공군 초계비행이고, (앞으로) 러-중의 포괄적 파트너십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번 도발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 준비됐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철 지난 냉전시대의 수첩을 다시 뒤적거리느냐고? 웬 체제 타령이냐고? 맞다. 그런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체제론의 관점은 보수적이라는 것도 맞다. 그럼에도 오늘의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를 흔들려는 측과 지키려는 측의 대결로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나는 한-일 갈등이 고조됐을 때 한 중국전문가에게 물었다. “중국은 지금의 한일 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그는 잘라 말했다. “한·미·일 연합의 와해 가능성”이라고. 바꿔 말하면 ‘동북아에서 미국 밀어내기’ 가능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소중한 자산이다. 미국으로선 삼각협력체제가 있었기에 월남전 이후 아시아보다 유럽과 중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고히 공유하는 이들 세 나라가 있었기에 다른 많은 국가들도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국가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대한 선호)에 휘둘리지 않았다. 일본은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한국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바탕에는 한-미-일 삼각협력체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이 모든 성취를 차버려야 하나.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도 지켜져야 한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이를 흔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를 위해서 한·미·일 3국은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한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의 부재(不在), 북핵 용인 시비를 낳을 수도 있는 과도한 민족의식, 세계의 지도국임을 자임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방위비 부담이나 안기려는 용렬함이 동북아체제에 숭숭 구멍을 낸 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동양적 위계질서 아래서 다시 조공이나 바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싫다면 이쯤에서 싸움을 멈춰야 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아베 총리에게 부탁한다. 부디 크고 넓게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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