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복' 일본언론과 한국언론의 보도스타일 확 다른 까닭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7-17 10:19
# 일본 신문들의 비밀


19년 전의 일이다. 한쪽의 아우성과 한쪽의 침묵. 달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주일 한국대사관의 1등서기관은 구제역이 발생한 뒤 한국과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을 체크하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달 25일 미야자키현에서 의사구제역 가축이 발생했다는 농림수산성의 발표를 짧게 보도한 뒤, 이 질병이 국내 전문기관의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으로 판명됐다는 공식 발표가 있기까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 4일 구제역으로 확인됐다는 공식발표가 나온 뒤에도 6대 일간지 가운데 아사히신문만 1단기사로 보도했을 뿐이다."(2000년 4월 21일자 한겨레, 조원량 1등서기관(농무관)의 기고)

일본의 경우, 92년 만에 발생한 구제역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보도에 인색한 이유가 뭘까. 그들은 왜 이토록 신중한 태도로 일본 정부의 대응만 지켜보고 있었을까. 한국 공직자에겐 이것이 기이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의 신문에는 연일 구제역 관련 보도로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차이의 비밀은 '국익(國益)' 두 글자에 있었다.

우리 언론은 국익에 상관 없이 보도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되어 있는 반면, 일본 언론은 국익과 관련될 경우 지나칠 만큼 조심스럽게 보도하는 관행이 있다. 오죽하면 오마에 겐이치(미국 UCLA) 교수가 일본 신문들을 가리켜 "전부 D급 언론"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신문을 봐도 세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지역신문이고, 본질을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어용신문"(1999년)이라고 비판했을까.

한국언론과 일본언론의 이 같은 차이는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가장 두드러진 뉴스는 '불화수소 대북 수출설'이었다. 지난 11일 산케이신문은 "한국기업이 북한 우호국가로 생물화학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 제조에 쓸 수 있는 물자를 보냈다"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다. 그 전날 후지TV의 보도를 이어받아서 실은 뉴스였다.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가 이토록 허술하기에 수출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일본 측 논리를 세워주는 기사다.

그런데 일본정부에 불리한 뉴스가 곧바로 등장한다. 1996년 초 일본기업이 북한 쌀지원 선박을 이용해 불화나트륨과 불화수소산 50㎏씩을 부정 수출한 것이 적발됐다는 기사를 찾아낸 것이다. 또 2003년 4월에는 핵무기 개발에 쓸 수 있는 부품이 태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밀수출된 것도 드러났다. 일본이 한국을 비판하기 위해서 주장했던 뉴스는 '근거'를 찾지 못한 것이었고, 역으로 일본의 혐의가 드러나게 된 상황이었다. 일본 스스로가 구린 부분을 한국에 덮어씌운 격이 됐다. 이쯤 되자, 산케이는 시치미를 뚝 뗀다.

# 제 발등 찍은 산케이신문 

그 뉴스를 보도했던 산케이를 난감하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 2009년 3월 21일자 산케이에 실린 '소리 없이 다가오는 일본제 핵병기의 위협'이라는 기사를 한국 언론사가 찾아낸 것이다. 일본기업 관계자가 핵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기계를 불법수출하다가 체포됐는데, 이 기계 부품들이 북한 핵개발에 이용된 혐의가 있다고 산케이는 보도하고 있었다. 이 기사로, 산케이는 자국의 수출제재의 정당성을 지원사격하려다 오히려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의 최종행선지가 북한일 가능성을 비치는 주장을 내놓았을 때, 한국 정부는 유감을 표시하며 국제기구를 통해 검증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때 일본 언론들은 일본정부의 반응들을 앞다퉈 내놓는다. 산케이는 외무성 간부의 입을 빌려 "한 나라의 무역 관리 타당성을 국제기구가 판단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힐난했고, 마이니치신문은 한국 측의 검증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한다.

국익 앞에서 이들 언론은 정부 대변에 팔을 걷는 모양새다. 특히 산케이는 일본의 극우신문으로, 우익사관을 주창하는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를 지원하고 있는 언론이다. 그렇지만 이번 무역보복 사태에서 산케이를 제외한 대다수의 일본 신문들이 이번 조치의 무리수를 경계하며 아베 정부의 냉정을 촉구하고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편 또 다른 논란은 '철회' 발언 진위 소동에서 생겨났다. 지난 12일 도쿄 경제산업성의 초라한 별관에서 열린 수출규제 양국실무회의. 일본 측은 "한국으로부터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한국 측은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고 조치의 원상회복, 즉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힌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이 총대를 멨다. 이 신문은 "회의 의사록에서 철회라는 문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한다. 공영방송 NHK 또한 "재차 회의록을 확인했지만 철회를 요구했다는 명확한 발언은 없었다"는 일본 경제산업성 이와마쓰 과장의 발언을 톱뉴스로 내보냈다.

# 국익중심주의의 일본 언론, 진영중심주의 한국 언론 

국익이 걸린 중대한 상황에서 국가의 '혀'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는 언론의 행태는 '언론 자유'에 역행하는 지나친 '일사불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언론을 거느린 나라와 치열하게 씨름해야 하는 쪽이 바로 한국이며, 한국 언론들은 정파나 이념적 진영 논리에 더 충실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익은 개의치 않는 '소신'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무책임한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공지를 보냈다. 산케이의 전략물자 북한 유입 가능성 기사는 5월 17일자 조선일보의 '추정' 보도에 따른 것이었으며 정부가 보도 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왜곡된 내용을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다시 외신발 기사로 확산되어 한국 언론이 받아쓰는 구조였다.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는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가 출연했다. 그는 일본 자민당 기관지에 가까운 데일리신초가 한국의 A일보 기사와 댓글까지 인용해 보도하고 있다고 공개한다. 특히 댓글 내용을 근거로 '일본의 조치에 대해 한국인들이 한국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일보는 자사 보도를 일본어판을 통해 일본에 소개하고 있으며, 자사 기사에 대한 댓글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서비스를 최근에 시작한 바 있다.

이튿날 오전 A일보 사옥 앞에 15개 언론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보도 항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A일보가 일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댓글의 일본어 번역으로 문재인 정부 비판과 일본 두둔 댓글들을 일본인들에게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어서 반한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항의한다.

# 한국언론 정부비판 보도, 일본서 악용?

한국 언론이 국가적인 명운이 걸린 사안에서 일본과 같은 '일사불란'의 대열을 벗어나는 것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일본의 지나친 정부 감싸기가 반(反)언론적인 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문들이 적전분열(敵前分裂)의 양상으로 국가의 일을 그르칠 만큼 지나친 '대열 이탈'을 보이는 것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거나 혹은 우리 측의 과오를 비판할 때에도 일본 정부나 언론에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검토하는 정도의 신중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때가 때인 만큼, 여론 또한 진영언론의 반목(反目)을 줄여 대승적 차원에서 위기 극복에 참여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협소한 외눈에 갇혀 상대국가에 '약점'을 잡히는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발표했을 때,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한국기업들의 일본 이탈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낸 것을 기억하는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9년 전 희토류 트라우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 희토류 압박 사건 때 당한 일, 한국에 재현 

2010년 9월,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인근에서 중국 고깃배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했다.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체포 구속했고 선원들을 조사한다. 중국이 나서서 선장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면서 다른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고위급 접촉을 중단했고 일본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수출 통관도 까다롭게 했고 일본인 관광객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는 강수(强手)를 둔다. 일본은 버텨볼 심산이었으나, 그들을 식겁(食怯)하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불쑥 "중국이 대일본 희토류 수출을 전면 통제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희토류는 휴대폰·반도체·전기차에 쓰이는 물질로, 당시 일본이 90% 이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보도 하루 뒤에 일본은 손을 들었다. 중국인 선장은 바로 석방된다.

혼쭐이 난 일본은 이후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2년 뒤 중국산 수입 비중은 49.3%로 급감했다. 니혼게이자이가 한국기업의 이탈을 말한 대목은 자국이 겪었던 바로 그 경험칙(經驗則)이다. 이 신문은 센카쿠 열도 사건이 1년쯤 지났을 때 이런 얘기를 남기기도 했다.

"자원 압박은 처음엔 효과를 발휘하지만 시장의 역습을 받게 된다. 지구상 어디에선가 반발의 움직임이 나오고 정치적 이용의 의도는 무너진다."

그때 고통 속에서 교훈을 얻어 내놓았을 '바른 소리'가 한국에 가한 무역 압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예언이 될지 모른다.

# 일본과 같아질 필요는 없지만, 언론의 경솔은 피해야 

국가와 언론이 늘 같이 갈 수는 없다. 국가를 비판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굳이 일본의 '국익주의 언론'과 같아지려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양식(良識)과 상식으로 판단할 문제다. 중차대한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 언론의 경솔이 문제가 되는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지, 국가나 정부의 잘못이나 거짓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정부가 갈 길을 제대로 짚어주는 일은 고언(苦言)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평생 국가의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 분투했던 미국인 기자 이지 스톤(1907~1989)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국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 나라엔 곧 재앙이 닥치게 된다."

관리들만 그렇겠는가. 언론 또한 거짓을 유포하고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확신범' 역할을 자주 하지 않던가. 정부의 행위나 판단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의 잣대를 놔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일본이 저지른 역사왜곡처럼 거짓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확신범이 되어선 안 된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일 것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일본의 우파신문인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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