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눈]일본 경제보복, 아베 수법과 문재인 해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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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7-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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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뉴스]

# "징용 피해자, 일본 법적책임 종료" 판단과 문대통령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문대통령은 8일과 10일에 이어서 세번째로 일본에 메시지를 보냈다. '경고'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 와서 일본이 귀 담아 듣기에는 약효가 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일본은 이번 조치에 대한 자국 피해와 한국의 피해를 오랫 동안 저울질해왔을 뿐 아니라, 시간계획을  치밀하게 짜놓고 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18일이 일본이 제시한 '강제징용 판결 중재위원회 요청' 시한인 만큼, 한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날까지 요청에 대한 답이 없으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전략물자 수출우대국 목록)에서 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해야할 일은, 일본에게 너희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외교 협상에 응하라고 할 일이 아니라, 일본의 태도를 바꿀 외교적 카드를 신속하게 찾아내는 일이다. 

아베가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지닌 대목은,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징용 징병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던 민관공동위원회에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대통령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는 징용 징병 피해자 보상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종결된 것으로 보았다. 그랬던 당사자가, 대통령이 된 뒤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입장을 번복했다는 게 아베의 시각이다. 아베가 '신뢰'를 여러 번 역설하며 보복조치와 연결하는 까닭은, 국가와 대통령을 모두 겨냥한 셈이다. 

# 경제력에서 치고 올라온 한국에 대한 견제의식

일본이 이번 조치를 취한 건 결코 즉흥적인 결단이 아니며, 단순히 한국을 한번 찔러보는 정도의 테스팅이 아니다.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뭔가를 매듭짓고 양국 간의 '관계 서열'을 정리하겠다는 게 아베의 생각이다. 식민지 시대 이후 그들에게는 이 나라가 갑을관계의 '을(乙)'이라는 관점을 내밀히 유지해왔다. 일본으로서는, 최근 경제력 측면에서 거침없이 치고올라와 상당히 접근한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나 있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 '과거 사과와 보상'에 대한 끝없는 연장전이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어온 점이 있다.  아베와 일본의 내면을 읽고 전략을 세워야 최소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지점'을 겨냥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대법원 판결 이후 각 부처가 보복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 아베 총리는 재무성 간부에게 '트럼프 방식'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트럼프 방식이란 미국이 국가 안보와 관련지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여 중국제품에 폭탄 관세를 매긴 그 방식이다.  재무성에서는 일본법상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매기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제동을 건다. 그러나 제재 발표 이후 아베는 일본이 수출한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안보' 문제를 슬쩍 걸었다. 트럼프 방식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한일협정 관련 전문가인 이원덕(국민대) 교수는 15일 "이번 조치는 아베 측근과 경제 산업성 마피아들이 기습작전 하듯 했다"면서 "이 때문에 외무성 쪽에서는 보복조치를 통보받고 몹시 당황했다"는 일본 정부 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충분한 내부 합의와 이해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보복이 결행된 지점은 '아베의 분노'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아베가 과연 트럼프의 용인 없이 결행했을까 

위안부재단의 해산과 강제징용 판결 이후, 아베로서는 불만이 증폭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징용 재판 결과는 일본 국민 상당수가 납득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이었던 점도 기폭제로 작용했다. 코앞에 있는 참의원 선거도 '보복'을 자극했겠지만, 아베 독주의 일본 정치상황이니 표심만을 노린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강력한 여론과 민심을 업으면서 한일 관계의 '고질적'인 속앓이를 이참에 정리하는 일은, 적어도 그로서는 해볼 만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아베의 무역 보복 발표 이후, 일본 내에서 급류처럼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반한(反韓) 기류는, 이 정치가의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인일지도 모른다.

또한 아베는 이런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을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다. 최근 미일(美日) 밀월외교를 이어오면서 아태 안보협력의 핵심상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한국과의 '파행적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미국으로부터 묵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양해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뒤늦게 트럼프 행정부를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했지만 미지근한 반응만을 대하고 돌아왔던 까닭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또한 '보복의 게임'을 오래 준비한 쪽과, 오지게 당하는 쪽의 판단 차이를 부른 '포인트'였다.

'준비한 일본'과 '허찔린 한국'의 싸움은, 일단 우리쪽이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방적 압박과 우리측의 굴복을 겨냥한 일본의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게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협상력과 외교적 카드들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전문가들이 말하는 3가지 길

전문가들은 3가지 정도의 전략을 내놓는다. 첫째는 지난달 19일에 한국 정부가 제안한 한일 기업의 분담 출연을 보완하는 일이다. 민간 기업들끼리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참여해 보상을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징용피해자들과 국내 출연기업 간의 사전협의를 거쳐 피해자 규모와 배상액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소송의 시효를 정하고, 피해자들 사이의 형평성을 산정하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국제사법재판소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제소를 하는 방안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고 법정의 법리가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다. 강제 집행 절차를 보류시키면서 3-4년 시간을 벌 수 있는 방안도 될 수 있다. 국가간 합의로 피해자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 국제적으로 확립된 법리라는 점도 한국 측에겐 유리하다. 

셋째는 일본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느껴 스스로 철회할 때까지 갈등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내비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 경우, 얼마나 장기화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무역 보복 전쟁이 진행될지 예측이 불가능한데다, 그에 따라 양측이 입게될 피해와 부담이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중재나 다른 변수가 등장해 문제가 풀리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시나리오에 쉽게 넣기 어려운 요행수에 가깝다. 서로의 '실력'을 확인시킴으로써 상대를 완벽하게 굴복시키겠다는 의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중에서 하지하(下之下)다. 무엇보다 장기화에 따른 온국민의 고통과 실익없는 명분을 좇는 끝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강대강 대응 방식에는, 그것의 결과가 어떻든간에 한-일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관계 파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험 경고'의 부전지가 달려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겪게될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미래를 위해 어떤 카드를 선택해야 할지, 하루하루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시험대가 아닐 수 없는 시점이다. 우리 정부는, 불안해 하고 있는 국민에게 중차대한 외교적 결정의 세목들을 설명하고 설득할 의무가 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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