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겨눈 '오지랖2탄'...北권정근 담화문과 김정은의 진심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9-06-28 17:56

방명록 작성하는 시진핑 바라보는 김정은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북중 우의탑 기념관에서 참배 후 기념관을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바라보고 있다. 2019.6.21 [CCTV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4월 김정은의 '오지랖1탄'을 상기해보면

지난 4월1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뗐다.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면서도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대화의 끈을 흘려놓았다.

그 뒤에 남한을 겨냥해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다.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남북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특히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북미협상의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듯한 말이었다. 

졸지에 '오지랖 넓은 대통령'으로 조롱을 당한 문재인대통령은 이틀 뒤인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굳이 오지랖 발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점잖게 입장을 밝힌다. "우리가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역할에 맞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주도해왔다"고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할 일과 역할에 맞게 주도했다고 반론을 폈다.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교류에 나서달라는 김정은의 강력한 주문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연이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온 흐름으로 보면 '오지랖 발언'의 수위는 뒤통수를 맞는 듯한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문대통령이 워싱턴까지 달려가 트럼프를 만나 '180초 짜리 회담'을 한 직후가 아닌가. 북미대화의 접점을 어떻게든 찾아내기 위해 '굿이너프딜'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개발해 중재를 했다가 단호히 퇴짜 맞은 일을 생각한다면, 김위원장의 발언은 차갑고 가혹한 것이었다.

# 다시 터져나온 '오지랖 2탄'의 당혹감

발언 수위 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복안(腹案)의 일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었다. 그가 겨냥한 것은 미국과의 핵딜을 통해 북한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이며, 남한은 오직 그 일을 위해 '활용'할 보조재일 뿐이라는 관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비핵화와 한반도 분단 극복은 또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분단 극복의 종착역이 통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북한의 생각이 어디쯤부터 동상이몽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각성'케 해주는 말이, 김정은 위원장의 저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김정은 발언을, 중국 마오쩌둥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정도의 전술적 공세로 양해하고 넘어간 듯 했다.

그러나, 그건 꺼진 불이 아니었다. 김정은의 생각은 당시 즉흥적인 섭섭함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간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방북 등 외교활동으로 '세(勢)'를 불리고 친서 교환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김정은은, 오사카 G20정상회의에서 또다시 북미대화의 촉진자 역할에 팔걷고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2탄'을 쏘아 붙였다. 직접 나선 것은 아니고, 그의 복심으로 활약해온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인 권정근의 입을 빌어서였다.

권정근은 27일 발표한 담화문(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남한당국자들'을 지목하면서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듯한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고 경멸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권정근 담화문 전문을 가감없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 '권정근 담화문'을 다시 읽어보면 

"최근 미국이 말로는 북미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 미국이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하여 북미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서 이미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 천명하신 바와 같이 북미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이다.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들이 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한 당국자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지금 남한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 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여론을 돌리고 있다.

북미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북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한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북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북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북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인만큼 남한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남한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남한 당국의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19년 6월27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권정근

 

[2014년에 유엔총회에 참석한 북한 주 유엔 대표부 김성참사와 권정근참사(오른쪽).]




# 권정근은 누구(1) - '김정은 유엔 형사재판소 회부' 막은 사람 


외무성 미국국장 권정근은 어떤 인물인가. 그의 얼굴과 이름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14년 10월22일 뉴욕 본부에서였다.

당시 유엔총회는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국제 형사재판소에 회부하기로 결의했고, 그 결의안을 안보리에 보낸다. 인권, 사회, 경제 문제를 주로 다루는 유엔 제3위원회는 이 결의안을 심사했는데, 이 때 주 유엔 북한대표부 참사관이었던 김성과 권정근이 활약을 펼친다. 쿠바대표부를 설득하여 김정은 건을 삭제한 개정안을 내도록 작업을 한 것이다. 쿠바 개정안은 표결에 올라갔지만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비동맹 국가들이 총회 표결에 기권하는 '성과'를 얻었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3년에 걸쳐 이 문제가 논의됐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는 불발됐다. 김성 참사관은 2011년에 부임하여, 북한 인권 문제 압박이 거세지던 2015년에 교체된다. 권정근 참사관은 2014년에 부임하여 2016년께까지 근무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권정근은 김정은위원장이 국제적인 ‘곤경’에 처할 위기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임무를 잘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은 듯 하다.

2018년 11월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폼페이오 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대북 경제제재는 그들이 핵 프로그램을 제거했다는 점을 우리가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는 소리를 했다. 그때 북한에서는 권정근이 등장해 되받아친다.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었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요구를 제대로 가려듣지 못하고 어떤 태도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하게 행동하면 지난 4월 채택한 경제건설 총집중노선에 다른 한 가지가 추가돼 ‘병진’이란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병진’이란 핵과 경제를 함께 주력하는 노선을 의미한다. 즉 핵개발에 다시 나서겠다는 소리였다. 상당히 위험한 수위의 발언이었지만, ‘연구소장’ 직위의 대응인지라, 별로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가 북한 대미외교의 실무책임자인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라는 사실은 우연히 알려졌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27일)을 앞두고 있던 2월 14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행사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개한 북측 참석자 중에 권정근이 있었다. 이때 새로운 직함(미국담당 국장)이 붙어있었다. 미국담당 국장은 최선희가 외무상 부상에 오르기 전에 맡았던 직책이기도 하다. 

# 권정근은 누구(2) "김정은 독재자"라 말한 폼페이오 갈아치워라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두 달 뒤인 4월에 그는 다시 폼페이오 장관과 맞붙는다. 북미 비핵화협상의 미국측 실무 총책임자였던 폼페이오가 김정은을 독재자로 지칭하자, 권정근이 나서서 협상 총책임자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 상대로 나서기를 바란다. 하노이 수뇌회담의 교훈에 비추어 보아도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가곤 했다. 폼페이오가 회담에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

권정근은 이날 “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관계가 여전히 좋고, 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점을 거듭 강조해온 것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권정근이 폼페이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은 세계가 그를 기억하게 만든 뉴스였다.

이런 이력을 거쳐서, 그는 다시 북미회담 조율 과정에서 미국과 남한을 동시에 맹타하는 담화문을 내놓는다. 주 유엔 북한대표부에서 글로벌 여론과 싸우며 체계를 세웠을 방어논리를 바탕으로 ‘싸움닭’ 역할을 도맡아온 셈이다. 이같은 ‘권정근의 공격’ 뒤에는, 잘 정리된 김정은의 뜻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담화문이, 시정연설에서 문대통령을 겨냥했던 ‘오지랖’의 시즌2라고 보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담화문과 관련해 이런 해설들을 내놓고 있다. 

# 전문가들은 '권정근 담화문'을 어떻게 보나

“북한은 지금 당장 한국을 끼울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시정연설에서 밝혔던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임재천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북한은 현재 미국에 공을 넘겨놓고 태도변화와 건설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으로 여기고 있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협상카드 내용을 한국이 미리 말하고 있어서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북한은 노딜로 끝난 하노이회담을 계기로 협상시스템과 내용과 전략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협상 이전에 정지작업을 하겠다는 입장일 것이다.“(홍민 통일연구원 북한 연구실장)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평화 구축에 있어서 우리는 중재자이자 촉진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사자이다. 정부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문성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실장)

과연 그럴까. 권정근의 발언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의미심장하다는 게 문제다. 그의 말 속에는,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전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북미회담에 대한 김정은의 ‘빅 시나리오’가 숨어있다. 우선 북한이 미국에 내놓아야할 카드(예를 들면 문대통령이 영벽 핵시설 폐기를 언급한 것)를 남한이 선수치고 있는데 대한 불쾌감 때문에 이런 격한 담화문이 나왔다는 분석은 비교적 소박하고 즉흥적인 견해로 읽힌다. 담화문은 4가지의 음미할 만한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 '권정근 담화문'에 담긴 김정은의 본심 4가지 

첫째 미국에 대한 나름의 압박이다. ‘쌍방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다. 이 말은 단계적인 비핵화와 단계적인 제재완화의 교환이란 입장을 재천명하는 것이며, 트럼프가 이 대목에서 유연한 제안을 연내에 제시해달라는 주문이다. ‘거듭되는 경고’는, 비핵화의 역방향인 핵무장으로 가는 선택을 뜻한다. 위의 말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은 더이상 물러서지 않으며, 핵 보유를 강화해 자신들만의 길을 가겠다는 ‘선’을 그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이 김정은의 생각이다. 하노이에서도 타협할 수 없었던 그 포인트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말이다.

둘째 남한의 북미대화 지원에 대한 명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남한 당국자들’이라고 했지만, 문재인정부 더 정확하게는 문대통령을 겨냥한다. ‘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것이나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 대화가 진행되는 듯한 여론을’ 만들고 있는 것이란 비판은, 중재자-촉진자 역할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그 의도가 남북평화라는 큰 비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뼈있는’ 말이다. 즉 북한 문제를 남한의 총선과 같은 정치에 활용하려고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고 있다. 문대통령의 평화의지를 불순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이 가차없는 관점은, 북한이 남북이 최근에 진전했다고 믿고 있는 평화무드를 얼마나 냉혹하게 읽어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런 생각은, 지난번 연두교서에선 보이지 않았던 관점이다. 이 점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셋째 북미대화의 북한 주도성 강조의 측면이다. 우리 정부는 결과론적으로 ‘한반도 평화로 가는 프로세스’로 북미정상회담을 인식해왔고, 이 회담이 사실상 우리가 ‘당사자’라고 믿어왔다. 위의 문성문 실장의 말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점을 상당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라고 밝히고 ‘북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한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고 주장한 것이 그 대목이다. 북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은 바로 한국전쟁이다. 남한과 북한이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그 전쟁이, 실은 미국과 북한이 싸운 전쟁이었으며 그 적대의식을 해결하는 차원에서의 협상이라는 것이다. 대북제재와 핵무기에 대한 논의를 그 전쟁사의 연장으로 읽어내는 이 관점은, 남한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김정은의 복심(腹心)일 것이다. 북미대화는 2:1의 대화가 아니라 오직 북한과 미국간의 협상이라는 이 ‘포인트’는, 우리의 중재자/촉진자 자임(自任)이 저들에게 얼마나 어이없이 느껴지는 것인지를 되짚게 하는 점이기도 하다.

넷째,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북미대화의 진전은 남북한의 평화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오직 김정은 위원장의 뛰어난 ‘영도력’이 이뤄낸 성취라고 북한은 믿고 있다. 3대에 걸친 지도자들 중에서 이같은 진전을 이뤄낸 경우는 초유의 일이기에 그 성취는 북한 사회 내부의 리더십에 결정적인 동인(動因)이 된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북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해 나가고 있다’는 발언이, 그 점을 밝힌 것이다. 적대국가였지만 세계 최강의 국가로 군림하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과 ‘친분’을 갖추고 대등한 관계로 협상을 하는 지도자의 위상은, 김정은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것을 남한이 거들어주겠다고 ‘힘’을 나누자 하니, 북측은 눈치없는 행위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북미회담은, 김정은의 ‘전리품’이다. 그걸 대놓고 건드리는 건 북한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남한내부의 정치적인 계산까지 읽고있다면, 그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의욕을 곱게만 보기는 힘들 수 있다. 남북 사이에 물밑대화나 교류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이 못마땅한 이유도, 북미대화의 공로를 함부로 분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정근의 발언을 제대로 읽는 것은, 향후의 정부 역할 설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이 문재인대통령의 언행이나 과욕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회담이 지닌 상징성들을 훼손할 수 있기에 물러서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을 망각한 태도나, 혹은 남측 대통령을 조롱하고 남한의 이용가치가 사라졌음을 알려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 북미협상은 북한에게 '평화'보다 '정상국가 밑천'마련이다 

북미협상을,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위대한 구상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읽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콩깍지일지도 모른다. 김정은 위원장은 다만, 자신들이 비축해온 핵무기를 ‘협상 무기’로 바꿔,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국가개혁의 밑천을 마련하겠다는 나름의 계산으로 제재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서서히 베팅 테이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들끓을 수 밖에 없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게 그에겐 우선이다. 남쪽의 선심에 기대서 남북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더 '불안'할지도 모른다. 국력의 기울기는 남북평화 혹은 통일의 결과를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인들 왜 모르겠는가. 그 점을 먼저 인식의 기틀로 삼아야 남북관계가 정상적인 궤도로 향할 수 있다. 제2의 ‘오지랖 반격’으로 불릴 만한 권정근담화문에는, 뜻밖에 본질적인 물음이 숨어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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