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총수' 이재용, 삼성DNA로 또하나의 기적 일으킬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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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06-2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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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트루 노스(true north).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지축(地軸) 상의 진짜 북쪽(眞北)을 의미하는 말이다. 선박이 침로(針路)를 정할 때와 방향 감각을 조정할 때 불가결한 기준치다. 이런 ‘트루 노스’는 기업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 목표로 하는 도달점, 따라야 할 지침을 제시해야 어려운 파고를 뚫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이런 ‘트루 노스’를 찾고 있을까. 최근 이 부회장의 행보를 보면 그가 ‘트루 노스’ 찾기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이 부회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잇달아 만난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다섯번째 만났다. 문 대통령이 삼성을 찾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우리 경제를 살려보자는 양측의 공감 속에 이뤄지는 ‘트루 노스’ 찾기가 아닐까 싶다.

이 부회장은 외국 기업 경영진도 잇달아 만나고 있다. 지난 25일 유럽 최대 통신사 도이치텔레콤의 팀 회트게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을 만나 5G와 차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일본 최대 통신사 NTT도코모를 방문해 5G 분야에서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비전자계열사들도 챙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4일 자신이 최대주주(17.2%)인 삼성물산을 찾아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지분(19.3%)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8.5%)을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 지배력은 삼성물산에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행보는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만든 ‘삼성 DNA’에 바탕한 삼성 고유의 경영 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관리시스템, 인재 제일주의, 글로벌 차원에서의 신산업 전략 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동력은 ‘위기의식’이라는 정신무장으로 볼 수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代) 라인의 ‘위기경영’은 늑대소년 같은 구두선이 아니며, 진정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위기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그 사례를 더듬어 보자.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D램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사내외의 반대가 심했다. ‘3년 내에 실패할 것’이라느니, ‘이병철 회장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패작이 될 것’이라는 등 온갖 부정적 의견이 쏟아졌다. 상식적으로도 기술이 없고 내수시장도 작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일본이 전자기술로 70년대 오일쇼크를 넘기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엔 지금 잘나가고 있는, 평범한 가전제품으로 팔아서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슬로건도 ‘앞서가는 새 기술’에서 ‘풍요로운 미래 기술’로 바꾸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5년간 ‘삼성은 첨단기술의 상징’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45세의 나이로 총수 자리를 맡은 이건희 회장은 휴먼테크를 내세우면서 기술과 힘으로 세계와 겨루겠다고 선언했다. 고객지향형 세계 1등 제품 도전 계획도 발표됐다. 1995년 이후 멀티미디어 삼성전자로 변신했다. 이건희 체제의 키워드는 ‘신경영’이다 이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4개월에 걸쳐 미국, 일본, 독일과 영국 등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글로벌 회의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이 마라톤 회의를 통해 삼성그룹이 살아남아 성장하려면 완전히 변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1995년 반도체가 잘나갈 때 강조한 위기의식은 결국 1997년말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1993년 신경영 발표는 1992년부터 IT를 기반으로 한 신경제(뉴 이코노미)로 미국 경제가 부활하고, 반대로 일본 경제가 버블정점에 섰을 때 나온 것이다. 대전환기를 재빨리 파악해 대처한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삼성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 삼성을 일군 최고 기술경영인인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쓴 ‘초일류로 가는 생각’(2004년),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초격차’(2018년)는 모두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의 요점을 정리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만 5년이 된 지금, 삼성그룹 총수로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이러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약 20년 전 인터넷시대를 내다보고 e-삼성 등 인터넷 전문회사를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도 한창 커가는 상태라 이 부회장의 사업은 삼성그룹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밀리고, 사내 기득권 세력의 파워에 가려져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것이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 평가에 뒷다리를 잡고 있지만 엄밀하게 분석해 보면 그것은 삼성의 DNA에 뿌리를 둔 ‘미완의 성공’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그 당시 이 사업을 당차게 추진했다면 미국과 중국보다 훨씬 앞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용 부회장은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삼성그룹의 리더로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에게는 과거에 막강했던 회장 비서실과 미래전략실도 없다. 세상의 눈은 더 날카로워졌다. 정치도 호의적이지 않다. ‘문명적 패러다임 시프트’로 일컬어지는 제4차 산업혁명은 경영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삼성의 총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현재 처한 안팎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삼성의 총수로서 참모들의 의견을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면서 삼성의 발전을 위한 ‘트루 노스’를 제시하고, 과감한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삼성이 잘나가야 대한민국의 경제도 좋아진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처럼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 좋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용, 삼성물산 구내식당서 점심 (서울=연합뉴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4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옥의 구내식당에서 배식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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