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일본 관료들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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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06-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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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일본 관료들의 여름은 바쁘기로 정평이 나있다. 경제소설가 시로야마 사부로(城山三郞)가 1975년에 내놓은 소설 <관료들의 여름>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본이 고도 성장기에 진입하기 시작한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패전 국가를 일으키고 풍요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관료들의 좌절과 분투를 그리고 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관료들도 거대한 ‘이익집단’이라는 인식이 퍼져 그 평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 어느 조직보다 믿음을 주고 있다. 오늘날 일본 관료들의 여름은 1950~60년대처럼 여전히 바쁘다.

일본 관료들의 여름은 백서(白書) 발표로 시작된다.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백서는 연간 50여종에 이른다. 백서는 “일본 중앙성청(省廳)의 편집에 의한 간행물 중 정치사회경제의 실태 및 정부시책의 현상(現狀)을 국민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는 문서”로 정의된다. 일본 부처들은 대다수의 백서를 5~7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놓는다.

‘백서는 관료문학’이란 말도 있다. 관료들의 정책철학과 추진실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백서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재정백서(경제백서), 통상백서, 에너지백서, 과학기술백서, 제조기반백서(모노쓰쿠리백서), 환경백서, 후생노동백서, 삼림임업백서, 국토교통백서, 관광백서, 방위백서는 정부간행물센터에서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로 등재되고 있다.

이런 백서들이 나올 때쯤 관료들은 진땀나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하반기에 발표하는 주요 정책·전략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리에 직접 보고되며, 의회 설득 자료가 되는 그야말로 정권의 얼굴이자 무기가 된다.

일본 정부 부처들이 몰려있는 ‘가스미 가세키’의 올해 여름은 한층 바쁠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이번 여름에 아베노믹스의 결정판인 ‘성장전략’을 내놓으라고 강력히 주문했기 때문이다. 일본 관료들은 ‘성장전략’에 담을 내용을 놓고 고심하고 있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06~2007년 1차 집권 뒤 지난 2012년 12월부터 다시 집권해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21년 9월까지 임기를 채우면 역대 최장 총리가 된다. 지난주 이토 히로부미(2720일)를 제치고 역대 3위에 올랐다. 아베 총리의 역대 최장 타이틀은 7월 참의원 선거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하는 것은 일본의 우수한 관료들이다. 아베노믹스를 끌고 가는 큰 줄기는 일본의 관료들이 주도하는 ‘미래투자회의’다. 아베내각은 2016년 9월 제4차 산업혁명을 포함한 일본의 국가 성장전략을 민관협력 아래 수립하기 위한 미래투자회의를 일본경제재생본부 산하에 설치했다. 미래투자회의는 미래투자 확대를 위한 성장전략과 구조개혁 가속화를 꾀하기 위해 종전의 ‘산업경쟁력회의’와 ‘미래투자를 위한 관민대화’를 통합해 출범한 성장전략의 사령탑이다. 미래투자회의는 총리 주재로 2016년 9월 12일 첫 회의 이래 지난 6월 5일까지 28회에 걸쳐 열렸다. 미래투자회의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의원들이 제언하면 정부의 관련부서가 이를 토대로 즉각 대안을 만들고 이를 장관이 밝히는 것이다. 장관은 현역 국회의원인 만큼 총리와의 소통이 긴밀하다. 크게는 정치주도의 행정부 운영이지만 실제로는 관료들에 대부분을 맡기는 모습이다.

예컨대 민간위원인 다케나카 헤이조 전 경제부총리가 ‘제4차 산업혁명 추진에 불가결한 4개 정책’으로서 빅데이터 활용을 추진할 사령탑 설치, 규제 샌드박스 설치, 사회인의 재교육, 연구개발을 위한 대학자산 활용 등을 제안하자 곧바로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 IT담당장관이 대안을 내놓았다.

고노 마코토 도쿄대 총장은 ‘산학관민의 동시개혁을 구동시키는 대학’, ‘쓰쿠바(과학단지)와 도쿄대를 잇는 이노베이션 회랑 구상’을 내놓았고 ,정부는 이에 맞춰 ‘이노베이션 에코시스템 구축을 위한 지식집약형사회의 투자전략’으로 호응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15일 제27회 미래투자회의에서 “이번 여름 성장전략을 내놓기 위해 지금까지 9회에 걸쳐 분야별로 논의를 해왔다”며 “제4차 산업혁명을 최대한 살려서 나라의 생산성 향상, 강력한 경제성장을 위해 경제사회 시스템 전체에 걸친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인재·기술을 꼭 껴안고 있는 폐쇄성을 버리고 개방형·연계형의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구조 변혁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6월 5일 28회 회의에서 성장전략 실행 계획안에 ‘소사이어티 5.0’ 실현을 담을 것을 재차 강조했다. ‘소사이어티 5.0’은 최근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등 제4차 산업혁명의 이노베이션을 모든 산업과 생활에 적용하는 사회를 말한다. 아베 총리는 구체적으로 디지털 시장의 룰(제도) 정비도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인생 100세 시대를 대비한 전세대형 사회보장 개혁을 아베노믹스의 종착역으로 잡고 있다.

일본 관료들의 여름은 아베 총리가 주문한 성장전략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래투자회의의 주무부서인 ‘내각관방 일본경제재생종합사무국’ 선도 아래 성장전략 실행계획과 성장전략 로드맵을 짜고 있다. 총리실과 관료들이 성장 전략이야말로 ‘아베노믹스의 엔진’이라는 뚜렷한 공감대를 갖고 있는 모습이 주목된다.

아베 정권은 관료들의 치밀한 뒷받침 아래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 하의 한국 관료들의 올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세종시에 머물며 침착하게 일을 하라는 총리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종시와 서울을 분주히 오가며 소모적인 일상을 여름 내내 거듭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관료의 괴리(디커플링)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어공’은 ‘늘공’을 믿지 않고, ‘늘공’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어공’들의 명령에 전문가 집단인 ‘늘공’들이 순종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기획보다는 사업 프로젝트 관리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권과 관료의 괴리로 국가 차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포함한 국가성장전략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관료들의 여름은 한가한 휴가철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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