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트럼프 리스크 .....美 '국익갑질' 곳곳 갈등 유발

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 2019-05-17 05:02
 

[곽재원 교수 ]


2015년 7월 1일. 필자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임페리얼 호텔 현관에서 목발을 짚고 들어오는 당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란과의 핵협상을 위해 빈에 온다는 뉴스를 들은 터라 짧은 질문이라도 해볼까 생각했으나 워낙 경비가 삼엄해 서로 웃으며 지나쳤다. 필자는 현대자동차의 세계 경영진단팀의 일원으로 유럽을 방문하면서 이 호텔에 묵고 있었다.

케리 국무장관은 그 한달 전쯤인 5월 31일 역시 이란과의 핵 협상차 프랑스에 갔다가 여유시간에 자전거를 타다가 그만 발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치료차 미국에 이송됐다가 다시 빈에 목발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보름 가까이 이 호텔에 묵으며 마침내 7월 14일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70대 노구의 성치 않은 몸으로 끈질기게 달라붙어 13년에 걸친 이란과의 핵 갈등과 경제제재, 20개월에 걸친 협상을 마무리했다. 빈의 오페라하우스 앞 카라얀 광장에서 열리던 대규모 이란 핵협상 반대 데모는 곧바로 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이 총력을 기울여 연출해낸 역사적 외교 성과다.

2018년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협정에서 탈퇴했다. 석달 후인 8월부터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오바마 정권의 엄청난 노력과 성과를 수포로 만들며 중동산 원유의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새로운 미국과 이란의 두터운 전선이 형성되었다.

2018년 5월 14일.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2019년 3월 25일엔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골란 고원의 이스라엘 영유권 인정을 공식화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이슬람 국가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친이스라엘 외교로 휘발성 높은 반미(反美) 전선이 새로 생겨난 것이다.

2019년 5월 13일. 지난 2016년 6월 제 1탄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중 제재가 이날 제4탄이 발표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은 이제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의 저항도 거세지면서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은 보복관세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미국채권의 매각과 위안화 평가절하 등의 대항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맞춰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타결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보복 합전(合戰)에 따르는 대립격화의 흐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2020년 가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압력을 강화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아론 프리드버그 교수는 그의 저서 ‘대치하는 대국’에서 미국과 중국의 각축을 “반목하는 2개의 정치시스템이 아시아와 세계의 2개의 미래상을 둘러싸고 펼치는 전쟁”이라고 묘사했다.

시진핑이 내세운 세계 지배전략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육지와 바다의 실크로드를 넘어 이제는 5G(차세대 통신망)와 AI(인공지능)를 구사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3개의 실크로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에 슬쩍 가려져있는 대국 패권전쟁의 최전선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도 대치하고 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 편에 서서 러시아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흑해에서도 터키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다.

미국은 패권국의 자리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 기술, 군사 면에서 강력한 글로벌 파워를 계속 지키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화로 세계에 경제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지배력이 다양한 도전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이 세계에서 세력을 확대하면서 라이벌로 등장한데다 미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나라들이 잇달아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후(戰後)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온 국제질서의 틀을 해체하려는 자세마저 보이고 있다. 이른바 ‘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LIO: Liberal International Order)’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점점 위기적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LIO는 법의 지배, 다각주의, 인권, 자유를 원칙으로 하는 국제주의적 질서를 말한다.

일본의 정치평론가인 후나바시 요이치는 이를 “전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한 브레튼우즈체제(GATT→WTO·IMF·세계은행·G7)와 미국 주도의 동맹시스템(NATO·미일동맹), 그리고 국가주권 중시의 국제시스템(유엔·파리협정)의 조합”이라고 요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LIO가 과거처럼 미국의 완벽한 지배아래 있지 않고 느슨해진 것을 오바마 정권의 외교실책 탓으로 돌리고 있다. LIO 아래서 미국의 국익과 국제질서는 합치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LIO를 경시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자세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되면 해체해도 된다는 강경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환태평양 경제협력협정(TPP) 등 다자간 무역협정으로부터 이탈했다. 2017년 지구 온난화대책의 국제협약인 ‘파리 협정’에서 이탈했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고통을 당하겠지만 앞으로 반미 보수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유럽 동맹국으로부터의 신뢰도 손상되었다. 한국과 일본도 미군 주둔비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필립 스테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소리 높여 외칠수록 세계에 듣는 귀가 없어진다”고 경고했다.

신고립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호전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전선(戰線) 확대로 미국과 세계의 혼미는 깊어만 가고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며 역사상 최대의 전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선 확대는 북핵문제를 포함해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냉엄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전개해 나가야한다.
 

트럼프, 이란에 "무슨 짓이든 한다면 엄청나게 고통받을 것" (워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회담에 들어가면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란을 향해 "무슨 짓이든 한다면 엄청나게 고통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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