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소비자보호] 알고도 당하는 '그놈 목소리'…형식적인 당국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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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근 기자
입력 2019-07-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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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피해액 4440억… 전년 대비 83% 급증

  • 매년 늘어… '전화가로채기' 등 수법도 지능화

  • 스스로 조심해라?… 전 금융권 시스템화 절실

자료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데일리동방] '나는 아니겠지…' 자영업자 A(52)씨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스피싱 피해 뉴스를 볼 때마다 "당장 전화를 끊어야지, 왜 알고도 당하냐"며 본인은 문제없다고 과신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축은행 박모 대리 입니다. 저리로 대환대출 가능하신 고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상냥한 음성 뒤로 '대출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는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박 대리는 "기존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보이스피싱을 직감한 A씨는 전화를 끊었다.

확인을 위해 해당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방금 통화한 박 대리의 목소리를 듣고선 안심했다. 곧장 수 천 만원을 입금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약속된 대출승인 연락은 오지 않았다. 뒤늦게 지급정지를 했지만 이미 박 대리는 잠적한 뒤였다.

◆ 지난해 역대 최대 피해… 범죄수법도 갈수록 지능화

8일 금융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4만8700여명, 피해액만 444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발생한 피해자 3만900여명, 피해액 2431억원에 비해 각각 57.6%, 82.7% 급증했다.

최근 3년 간 피해자와 피해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일 평균 130여명이, 12억여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 상당수가 자금사정이 어렵고 정보에 취약한 서민들이다.

특히 A씨의 사례처럼 낮은 금리 대출로 현혹시킨 뒤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대출빙자형' 피해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또 '전화가로채기' 앱 등 악성 프로그램을 활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피해도 발생했다.

게다가 신규통장개설이 어려워진 점을 들어 '현금전단알바 모집' 등 통장대여자를 모집하는 수법 등 갈수록 범죄수법이 지능화되고 있다. 원격조종 앱을 이용한 사기수법도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주부 B(47)씨는 '안마의자 279만원 결제. 해외 사용이 정상적으로 승인됨'이란 허위 결제문자를 받았다. 사기 일당이 보낸 일종의 미끼였다. B씨는 문자로 안내된 가짜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을 가장한 일당은 "명의가 도용됐으니 경찰에 대리 신고하겠다"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곧 사이버수사대 경찰을 사칭한 자가 "사기사건에 연루됐으니 혐의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재산 확인에 협조하라"는 말을 건넸다. 일당은 B씨에게 원격조종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OTP번호까지 알려준 B씨를 농락한 사기범들은 계좌잔액 수 천 만원을 모두 대포통장으로 이체한 후 잠적했다. 이뿐 아니라 졸지에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몰려 재판까지 받게 된 경우도 있다.

C(37·여)씨는 지난해 10월 '물품 판매대금을 대신 전달해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기재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사기범의 요구대로 C씨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며칠 후 C씨는 자신의 계좌로 1000만원이 입급된 걸 확인 후 아르바이트 수당 10만원을 제외한 990만원을 사기범이 알려준 계좌로 일부 송금했다. 나머지는 직접 인출해 일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다음달 은행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은 C씨는 기겁했다.

본인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돼 지급정지 됐다는 내용이었다. 본의 아니게 보이스피싱 사기에 연루된 C씨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피해자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재판까지 받는 중이다.

사기범들에게 속아 전 재산 수 억원을 날린 사례는 더욱 안타깝다. 직장인 D(34)씨는 지난해 7월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사기범으로부터 "국제 마약사건에 연루됐으니 검찰로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당은 재차 "말을 못 믿겠으면 대검찰청 홈페이지에서 영장을 확인하라"며 D씨를 기망했다. 혹시나 했지만 알려준 인터넷사이트를 검색해 자신의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자신에게 실제로 영장이 발부돼 있었다. 물론 허위로 조작된 서류였다.

사기범의 말을 믿은 D씨는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또 다른 사기범의 계좌로 전 재산 수 억원을 이체했다. 며칠이 지나도 환급이 되지 않자 금감원에 확인 전화를 걸었고, 그제서야 속았다는 걸 알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규·저금리 전환대출 등 전형적인 수법 외에도 SNS, 모바일 메신저 등을 이용해 지인임을 사칭하며 금전 요청하기, 현금전달 재택알바와 가상화폐·상품권 구매대행 알바 등 모집과정에서의 피싱 등 새로운 수법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당할 판… 그래도 당국은 "조심하라"

당국은 현재 '그놈 목소리 3Go!'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의심하고! 전화끊고! 확인하고!'를 내세운다. 보이스피싱에 당하지 않기 위한 대처법도 알려주고 있다. 

△금융거래정보 요구는 일절 응대하지 말 것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면 100% 보이스피싱 △개인·금융거래정보를 미리 알고 접근하는 경우도 확인 △피해를 당하면 신속히 지급정지 요청 △유출된 금융거래정보는 즉시 폐기 △예금통장·현금(체크)카드 양도 금지 등이다. 

그래도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놈 목소리'에 현혹되고 있을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신종 사기수법이 늘면서 올해는 지난해 피해규모를 뛰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금융사태에 준하는 6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캠페인 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기 역부족이다. 수법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서민들 심리를 악용하는 범죄자의 교묘함이 충격을 더한다. 역대 최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자 전 금융권에서 대책이 요구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현재까지 발표된 정부의 대책을 보면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며 "경찰 중심의 수사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데, 반대로 범죄에 동원되는 디지털기기들은 고도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언제까지 국민에게 조심하라, 유의하라고만 할 지 모르겠다"며 "보이스피싱이 전자금융사기인 만큼 전자금융시스템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정금액 이상 또는 의심되는 거래를 자동으로 거를 수 있는 시스템, 입금계좌 검증시스템 등의 도입을 주문했다. 또 피해자는 물론 사안에 따라 금융기관에도 책임을 묻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게 조남희 원장의 의견이다.

금감원 선임국장 출신인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도 같은 입장이다. 조성목 원장이 금감원 재직 당시 실제 범죄자들은 "금감원 조 과장입니다"라고 사칭하며 사기를 쳤었다. 그가 보이스피싱 대응 총괄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조성목 원장은 "자칭 보이싱피싱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인 적발에 나서 직전년도에 비해 범죄건수를 획기적으로 줄였었다"며 "퇴직하고 나니 예전 그대로 범죄가 들끓고, 상상을 초월한 형태의 피해가 발생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이어 "피해 예방교육을 하더라도 수강생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전달력을 높여야 한다"며 "사기도 쳐 본 놈이 친다고, 가령 보이스피싱에 실제 가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강연자로 내세우거나 범죄자들이 쓰는 전화에 악성코드를 심어주는 등 발상의 전한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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