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이 전하는 '난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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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기자
입력 2019-06-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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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매년 6월20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세계 난민의 날인데요.

이번 인터뷰는 지난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이하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2019서울국제도서전 행사에서 한석준 아나운서와 2014년부터 5년간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해온 배우 정우성 씨의 난민에 대한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정우성 씨는 최근 그간 세계 각국의 난민들을 만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아 에세이집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했습니다.

배우로서 바쁘게 활동하는 중에도 매년 빠짐없이 난민촌을 방문했고, 지난해 제주 예맨 난민 이슈로 불거진 국내의 격한 논쟁 속에서도 굽힘없이 소신 발언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정우성 씨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


Q 지난 5월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 난민을 만나고 왔다고. 2017년 12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어땠나요?

A. 그곳의 온도가 40도인데다 습도가 너무 높아서 (막사에) 들어가서 앉는 순간 계속해서 땀이 흘러요.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임시 캠프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는 한 어머니가 보여 말씀을 나눴어요. 그 이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 수소문해서 그 분을 만났는데, 처음보다는 조금 안정된 것 같았어요.

제가 하도 비 오듯이 땀을 흘리니까 그 분이 저를 보며 웃으시더라고요. 저는 그곳에 잠깐 간 것이지만, 계속 거기서 생활하는 노약자, 장애인, 어린아이들이 어떤 환경과 기후를 견디면서 지내는지 영상(저의 방글라데시 난민촌 방문 현장을 담은 짧은 영상)을 보면서 짐작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들은 왜 난민촌으로 내몰린 것인가요?

A. 모든 난민은 분쟁, 전쟁 상태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가족과 본인의 안전을 위해 자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에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혹은 자의에 의해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로힝야 난민의 경우는 어떤가요?

A. 로힝야 민족은 제국주의의 폭정에 의해 버려진 민족이에요.

긴 시간 동안 미얀마에 살면서 그 나라를 조국으로 믿고 생활했는데, 역사적 악연에 의해서 미얀마의 국민으로 인정을 못 받고 있어요.

많은 난민은 전쟁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에요.

미얀마 정부의 정치적 입장도 정리돼야 해서 국제사회의 도움과 조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많은 경우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분쟁과 전쟁에 휘말리게 된거에요. 우리 대한민국이 근대사회를 거치면서 겪은 아픔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그런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국민의 힘으로 이겨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평소 난민을 먼 나라 얘기로 생각했는데, 작년 예맨 난민들이 제주도로 오면서 난민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 같다. 당시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등의 무서운 얘기도 많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분들이 현재는 대부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서 (제주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건 임시적 체류일 뿐이에요.

그분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3개월에서 1년 동안의 체류 허가이고 언어적 제약도 있어서 취업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실제로 얼마나 (취업이) 가능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 분들의 기초생활을 지원하는 거라고 오해하고 계신 분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체류 허가가 주어진 것일 뿐, 그들이 자력으로 생존해야 합니다. 

그들 역시 동정을 받기보다 자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재건해 나가길 바라지만, 생계가 녹록치 않은 현실이에요.

Q. 그 이슈를 계기로 유엔난민기구 후원금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A. 그렇습니다. (웃음) 어떻게 보면 좀 자극적인 뉴스나 정보에 의해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난민에 대한 후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차분히 늘어난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 국민이 얼만큼의 온정을 갖고 있냐 하면, 개인 후원금이 세계 2위에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개개인의 의지는 굉장히 크고 따뜻한 국민들이라는 것은 틀림없어요.
 

[사진= 연합뉴스 제공]


​Q 당시 난민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하면서 온라인에 악플도 많이 달렸고, 비판도 받았는데 배우로서 그런 악플과 비난을 받는 것이 무섭거나 놀라지는 않았나요?

A. 놀라긴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어요. 반대의 목소리가 어떤 이유로, 어떤 관점으로 전달되는지 알기 위해서 온라인에서 여러 매체의 댓글을 차분히 봤죠.

그 중에는 마음을 딱 닫고 배타적인 성향을 갖고 움직이는 집단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난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데 ‘정말 이게 사실인가’하는 순수한 우려를 갖고 계신 것 같았어요.

그런 분들께 좀 더 정한 정보를 전달해 드리는 게 이 담론을 좀 더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겠다고 생각해서 차분히 접근하려 했어요.

제가 배우이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많이 걱정하기도 했지만, 친선대사로서는 그들이 어떤 역사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인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같은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성향마다 각자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저도 두려워요.

그러나 난민 전체를 범죄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봐요. 오히려 고국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알기 때문에 좀 더 자신이 정신차리고 살다가 나중에 고국에 평화가 오면 자존감을 지키고 돌아가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현재 제주에 있는 예맨 난민 중 어떤 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있고, 오히려 버스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고스란히 경찰서에 가져다 준 사례도 있었거든요.

그들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면 자신들 공동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있어요.

또 그들은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고, 생계나 아이들의 교육 등도 보장이 안 돼 있어서 오히려 그들이 생계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내가 본 곳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의 출간기념 사인회에서 사인을 받고 있는 기자 ]

Q 이번에 <내가 본 곳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하셨는데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됐나요?

A. (난민 지원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키고 강요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애초에 친선대사 활동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 활동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내면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난민 이슈가 뜨겁게 지나가고 나서 올해 책을 내게 됐어요. (난민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 찬성하는 사람 모두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그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게 우리 사회의 담론이 성숙해지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런 맥락에서 ‘얘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고 가볍게 쓱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책을 쓰면서 어떤 것이 제일 어려웠나요?

A.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이 절박해도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감정적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동안 난민캠프에서 경험한 것들이 스스로도 정리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Q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A. 그건 독자 분들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고 덮을 때 각자 느끼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다른 생각의 돌출을 바라고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이것입니다’라고 규정짓고 쓰지는 않았어요.

저는 친선대사를 맡고 있다 보니 여러분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기회를 갖고 난민촌에 가는 것이고, 거기서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전달했을 때 여러분이 느끼는 이해와 감정은 온전히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처음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가 된 것이 2014년이었는데, 이렇게 오래할 줄 알고 있었나요?

A. 그 때도 될 수 있으면 오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연한 결심이었지, 실제로 이렇게 오래 이어질지는 몰랐어요.

5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5년은 채웠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사진= 연합뉴스 제공]


Q 해마다 빠짐없이 난민촌을 방문하고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명감이나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A. 사명감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들도 같은 인간이지 않나”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보고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해마다 더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난민촌을 방문하면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어른들은 어두우면서도 굳은 얼굴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볼수록 인간이라는 존재, 우리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보게 됐어요.

Q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의 철학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5년 전의 정우성과 지금의 정우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늘 감사해요. 그 전에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를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난민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누리는 이 사소한 일상에서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더욱 깨닫게 됐어요. 시시각각의 값어치, 우리가 맺는 관계의 값어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늘 감사하게 된 거 같아요.

Q 앞으로 몇 년 더 친선대사로 활동할 생각인가요?

A. 글쎄요. 유엔난민기구에서 이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할 것 같아요. (웃음) 아직은 그만둬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고 건강도 괜찮고, 일년에 한 두 번 난민촌에 갈 수 있는 여력도 되요.

​Q 기타 다른 계획은 없나요?

A. 친선대사로서는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서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다녀온 미션을 잘 정리해야 하고, 그 다음엔 서서히 다음 캠프 행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죠.

Q. 마지막으로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읽게 될 수많은 미래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A. 일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결정하라고 보여드리는 책이 아니니 편하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난민 문제 안에는 현실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의 큰 고민도 들어 있어요.

난민을 바라볼 때 당장 물질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일차원적인 이해보다는 지구상에 난민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불합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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