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현장을 가다(上)] 청주에 드리운 반도체 불황 그림자 "회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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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백준무·임애신 기자
입력 2019-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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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경제 견인 SK하이닉스 '주춤'…불경기 여파 번지는 중

  • "저녁 손님 뚝 끊기고 매출 20~30% 감소" 업주들 아우성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는 국내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마냥 좋을 것만 같던 반도체 시장은 그러나 올해 들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20일 IHS마킷에 따르면 당초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2.9%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최근 7.4% 하락하는 것으로 전망이 바뀌었다. 이 예상대로라면 2009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아주경제 편집부]

이처럼 반도체 시장이 어려워진 것은 수요 감소세와 함께 재고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D램, 낸드플래시,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MPU) 등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반도체 시장이 축소되면서 거시경제 지표들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 수출은 1327억 달러로 지난해 1분기 대비 8.5% 감소했다. 반도체는 21.4% 감소하며 컴퓨터(-33.7%)에 이어 두번째로 수출 감소폭이 컸다.

일각에서 3분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당장 다이내믹한 변화가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들이 견인하던 지역 경기 또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본지는 반도체 사업장이 몰려 있는 지역의 경기를 알아보기 위해 국내 대형사업장 네 곳을 직접 둘러봤다. 실제 현장에 가 본 결과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걱정과 우려의 시선은 현실이었다. 이를 총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해본다.

◆청주 외곽도로, '2순환로'서 'SK로'로 개명한 사연

충북 청주시 북쪽 외곽, 서청주교 사거리부터 송절 삼거리를 잇는 왕복 6차선 도로의 이름은 'SK로(路)'다. 인근 산업단지에 소재한 업체 임직원들의 출퇴근, 산단 물류 수송 등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2015년 착공에 들어갈 때만 해도 '2순환로'라는 명칭이 붙었으나 이듬해 지금의 도로명으로 확정됐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이 어린 이름이다.
 

충북 청주시 북쪽 외곽에 자리한 'SK로'. [사진=백준무 기자]

현재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6800여명에 달한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1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청주시에 납부한 법인지방소득세는 전체 소득세의 70%가 넘는 1818억원이다. "SK하이닉스가 청주를 먹여살린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청주시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주시의 최근 5년간 지역내총생산(GRDP) 연평균 성장률은 22.1%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업황 악화로 부진을 겪으면서, 여파가 도시 전체로 조금씩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연결기준 매출 6조7727억원, 영업이익 1조366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22.3%, 68.7% 감소한 '어닝쇼크' 수준이다.
 

지난달 23일 찾아본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 제3공장 정문. [사진=백준무 기자]

◆"저녁 손님 뚝 끊기고 회식 사라졌다"… 업주들 한숨만

지난달 23일 낮 12시.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거대한 회색 건물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흥덕구에 위치한 SK하이닉스 제3공장 직원들이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25도까지 치솟은 때이른 초여름 날씨에 손부채질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공장이 위치한 복대동 식당가도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업주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이곳에서 5년째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다른 동네에 비하면 공장과 가까워서 그나마 숨은 쉬고 산다"면서도 "점심 매출은 그나마 고정적인 편이지만, 저녁이 되면 예약 손님이나 술 손님은 뚝 끊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SK하이닉스나 LG화학 같은 인근 대기업 공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이 동네에 고깃집들이 많이 들어왔다"며 "요즘 들어선 장사가 안 되니까 맞은편 가게가 '6900원'을 써붙이면 '5900원'으로 맞불을 놓는다. 상도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의 말처럼, 이 지역 상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깃집들 중 일부는 가게 외관에 경쟁적으로 그램당 가격을 안내하는 팻말을 내걸고 있었다.

횟집을 운영하는 B씨는 "작년 11월부터 연말 경기가 완전히 박살났다"며 "SK하이닉스 직원들이 회식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느냐"며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다수의 업주들은 "최근 들어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20~30%는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불경기 부채질 지적도

SK하이닉스도 불황의 칼바람 앞에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다.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직후 회사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1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업계 경쟁 심화로 모든 제품에서 가격 하락폭이 컸다"며 청주 M15 공장의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웨이퍼 투입량을 10% 줄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설투자에 있어서도 전년에 비해 32% 감소한 3조1570억원에 그쳤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웨이퍼 투입 감소는 3D 낸드 초기 제품인 2세대(36단)와 3세대(48단)를 줄이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하반기부터 72단과 96단 4D 낸드 생산 비중을 본격적으로 늘리게 되면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연간 출하 증가율)는 늘어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어떨까. 최상천 청주상공회의소 사업본부장은 "출하량 자체가 대폭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력사들의 경우 체감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단가 인하 압력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지역 관계자들은 낸드 위주로 생산하는 청주공장의 특성상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의 여파가 더욱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불경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청주 시민들 또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택시기사 최모씨는 "작년만 해도 기숙사에서 공장까지 700~800m에 불과한 거리를 택시 타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는데, 올해 들어서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해가 저물고 SK하이닉스 직원들이 회식 때 즐겨찾는 봉명동 상권으로 이동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행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다수 식당 업주들이 입구에 기댄 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사가 어떠냐"고 묻자 고깃집을 운영 중인 중년 여성은 "보다시피…"라며 말끝을 흐렸다. 10개가 넘는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새 공장을 짓는 인부들도 있어서 장사가 잘된 것 같다"며 "이 시간에 이렇게 손님이 없는 가게가 아닌데 회식 예약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근처의 노래방을 찾았다. 휘황하게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 무색하게도 객실 중 단 한곳에서만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나마도 충북대 학생들이 찾은 것이라고 노래방 업주는 하소연했다. 그는 "송년회, 신년회, 회식이 다 사라진 것 같다"며 "빨리 장사를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SK하이닉스 인근 봉명동 상가 일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진=백준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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